돈, 사람, 아이템을 창업의 3대 요소라고 한다. 창업자는 돈과 사람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템을 사업화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잘 운영하고 관리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 적재적소의 사람이 있어야 하고 필요한 돈을 적기에 조달해야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장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서 매출이 일어나야 기업은 생존할 수 있다. 세 가지 요소를 충족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예상치 못한 환율, 금리 등의 대내외 변수가 어려움을 준다. 창업자는 홀로 이러한 상황을 이고 지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외로운 길을 가는 것이다.
눈물로 답변이 돌아왔다. 처음 본 그녀의 얼굴은 지쳐있었고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힘이 들어 보인다’라고 무심코 던진 나의 한마디에 참고 있던 그녀의 감정에 당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사회복지사 출신의 여성 창업자는 자신의 제품이 대박은 아니어도 이렇게 반응이 없을 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시제품의 판매가 저조하다 보니 의욕이 상실한 것 같다. 풀 죽은 모습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화제를 바꾸어 제품을 개발하게 된 배경과 동기를 물었을 때, 종전과 달리 눈은 반짝였고 목소리는 씩씩해졌다. 기억의 저편에 있는 처음의 열정을 다시 불러낸 것 같았다. 희망의 끝자락을 움켜쥐며 미소를 띠는 얼굴에 ’ 힘내라 ‘ 는 흔한 말 이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지난해 여름,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3차에 걸쳐 선발된 창업자들은 정부의 사업화 지원금을 받고, 교육과 전담 교수의 코칭을 받으며 창업 아이템을 사업화하고 있었다.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얼마나 잘 팔릴지, 냉철한 자본주의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열정과 노력을 갈아 넣는 것뿐이었다. 업무로 맡게 된 39명의 창업자 명단을 보았다. 이 중에서 흔히 말하는 대박 날 제품, 성공할 싹수가 있는 창업자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해졌다. 곡식이 한창 익어가는 어느 8월 몇몇 창업자들을 만났었고 맨 처음 만난 창업자가 그녀였다.
괜한 질문에 곤욕을 치렀기에 감정적인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그다음 창업자를 만났다. 대학생 창업자였다. 3학년 생으로 현재는 사업을 위해 휴학한 상태라고 한다. 착실한 모범생 같은 친구였다. 노인 요양병원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령사회인 작금의 상황에 잘 맞는 아이템이었다. 풋풋한 외모와 달리 사업 아이템은 잘 익어가는 사과처럼 느껴졌다. 창업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아이템으로 창업 경진대회도 나갔었다고 한다.
공부해야 할 때 휴학까지 하고 사업에 뛰어든 대학생 창업자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젊은 날, 그 친구의 나이에 창업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 창업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월급쟁이 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아서인지 사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IMF 이전이라 경기가 나쁘지 않아 공채시험으로 수 백 명 입사했던 시절이었기에 어떻게든 직장에만 들어가려 했을 뿐이다. 사업이란 그렇게 들어간 직장생활에서 경험을 쌓고 자신감이 생기면 모아둔 돈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운 좋게 중소기업 지원기관에 입사했다. 기업을 평가해서 자금을 지원하거나, 수출, 컨설팅, 연수 등의 지원업무를 통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사업을 해본 적이 없고 생각도 안 해본 입장에서 기업과 대표자를 평가한다는 것이 맹인모상(盲人摸象)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매뉴얼과 규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 바빴다. 눈앞에 떨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서류의 뒤편에 있는 중소기업의 애환을 알아채지 못했다.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된 것은 신입사원의 티를 벗어난 시기였다. 업무로 수차례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느닷없이 일 년에 며칠 쉬냐고 물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샐러리맨으로 공휴일이면 다 쉬어 왔기에 특별히 며칠을 쉬는지 계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자신은 작년에 크리스마스날 하루 쉬었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 인간이 그럴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처음부터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받을 돈을 받지 못하자 전 대표가 기업을 인수해 가라고 해서 지금의 기업을 인수했다고 한다. 졸지에 사장이 된 셈이다. 사장이 되면 직원들을 부리고 폼이 날 줄 알았는데 빛 좋은 개살구였다. 금형 설계에서부터 영업, 대금 회수 등 일일이 다 챙기다 보니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름 억울했었는지, 편하게 보이는 내가 부러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소연이 담긴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에 '사장님 나빠요'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금요일 11시 폭소클럽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했던 유행어였다. 처음에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동남아 노동자의 시각에서 부조리한 노동 현장의 모습을 풍자하더니 점차 우리의 문화를 풍자하며 항상 끝에 '누가 나빠요' 라고 했다. 우리는 익숙해 그러려니 한 모습이었지만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이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그 대표와의 대화 이후 '사장님 나빠요' 라는 말에 공감보다는 애환이 느껴져 예전만큼 웃지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중소기업 대표자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젊은 청년 창업가들이 앞으로 이런 어려움을 잘 이겨낼지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창업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이 29.1%(대한상의, 2020년 기준)라고 한다. 5년 만에 10개 기업 중 약 3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통계인데, 통계는 일반화되어 마치 법칙처럼 느껴진다. 인간이 만든 숫자와 논리가 부메랑이 되어 창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똬리를 틀게 한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업의 신생아라 할 수 있는 창업기업 수는 증가하고 있어 다행이다. 인구의 신생아는 감소해서 인구절벽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지만, 창업의 증가는 일자리 창출과 생산활동 증가로 경제의 활력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일자리가 줄어 어쩔 수 없이 청년들이 창업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경험 부족해서 오는 위기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젊은이의 창업을 마냥 권장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중소기업 지원업무를 하고 있지만, 사업이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까운 사람이 창업한다면 말리고 싶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은 고귀하다. 남 눈치 안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겠다는 도전 정신의 창업자들을 보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일 년에 하루밖에 쉬지 못하고 제품개발에 눈물을 쏟아붓는 그들의 열정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나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