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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Dec 04. 2023

나이 들며 느끼는 새삼스러움

'초보 노인입니다'을 읽고

 계단 위의 노부부는 위태롭게 보였다. 급경사로 된 도서관 계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조심성을 불러일으킨다. 부부는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서로를 부축하기에 계단의 디딤판은 좁았다. 각자 올라가는 것이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 가파른 인생의 길은 결국 혼자 넘는 것임을 보여주는 듯 난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오르고 있었다.

      

 계단과 씨름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의 끝에서 나도 조만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이 멈춰졌다. 두려움보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임을 알리듯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순간, 지인이 소개해 준 ‘초보 노인입니다.’라는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온 이유가 떠올랐다.      


 책 제목을 듣고 선뜩 책에 손이 가지질 않았다. 제목을 통해 노인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일 것이라 여겼고, 굳이 벌써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부모님이 고집이 세지며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난감할 때가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면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느끼는 것인지 혹시 그런 내용이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슬그머니 책을 들었다.      


 책은 실버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겪었던 작가의 생활을 글로 옮겼다. 실버아파트에 입주하여 그곳에서 만난 노인들, 작가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였다. 실버타운, 실버아파트라는 말을 들었기에 혹시 나중에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관리비가 궁금해졌다.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아파트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50만 원가량의 관리비와 인당 식비 24만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부부가 입주한다면 대략 월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니 매월 일정한 소득원이 없으면 언감생심이다.  

   

 나이 들어 밥 하기 힘들고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곳은 노인들만의 천국처럼 보였다. 서예, 체스, 마작, 탁구, 골프, 사우나 등 각종 커뮤니티,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젊은이들의 괄시나 눈치 없이 노년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거기다 병원이나 약국 등 의료시설이 아파트와 연결되어 있어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      


 작가는 60세 중반이 안된 나이로 노인이라고 불리기에는 애매한 나이에 그곳에 입주했다. 노인들만 산다고 하지만 실버아파트도 여느 아파트처럼 각자의 공간에 살 것이기에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입주 첫날부터 사방에 은발의 노인들로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부적응은 시작되었다. 노인들의 불편한 모습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면서 다정한 노부부의 모습마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웃하는 거주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갔다.     


 몇 년 전 장모님과 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였다. ‘애들은 우는 모습도 예쁜데, 어째 노인들은 웃는 모습도 안 예쁜지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식당도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이 하는 곳은 가기 싫다고 하셨다.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음식집이 더 맛이 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갔던 고깃집은 젊은 직원이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젊은 사장과 직원들은 빠릿빠릿하게 서빙하고 있었고 가지고 온 고기나 채소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는 곳은 노후화된 구도심 지역의 재개발 아파트로 젊은 사람들이 제법 입주했다. 주변의 오래된 집들은 그 세월만큼 노인들을 안고 있었다. 산책길이나 도서관에 가면 노인들을 자주 본다. 나 역시 나이 들어가지만, 노인들이 많은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작가나 장모님과 같이 그들의 불편한 모습, 늙고 볼품없어지는 모습이 조만간 나에게 찾아올 것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것 같다.


 입주 후 작가는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트레이닝복이나 수면 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그곳의 노인 중에는 옷이나 얼굴을 꾸미며 지내는 분들도 꽤 있었다. 꾸밈없이 편하게 입고 다니는 작가의 옷차림을 보고 선배 노인들은 ‘늙음을 앞당기지 말라’, 지금이 가장 젊을 때라며 젊음을 누릴 것을 충고한다.     


 옷차림도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넥타이며 구두, 시계를 깔맞춤 하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깔끔하고 말쑥한 옷차림이 신뢰감을 주는 것으로 인식하던 때였다. 차츰 나이 들면서 격식을 차리는 옷차림이 귀찮아지고, 관심이 많던 시계마저 거추장스러워졌다. 점차 그런 것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다리미로 다려 입는 것도 귀찮아져 구김 없는 셔츠와 바지를 찾게 되었다. 지금이 가장 젊을 때인데 나 역시 작가처럼 늙음을 앞당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예쁘게 다니는 모습에 작가 부부는 꽃부부라 부르며 부러워한다. 어느 날 꽃부부의 남편이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는 갓난아기가 되어버렸다. 금실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할머니 혼자서 살림을 일으켰기에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정이나 그리움은 없었다. 그런데도 홀로 남겨진 것이 충격이었나 보다. 간혹 주변에 혼자되신 분들을 보면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남모를 충격을 버티며 살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분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작가는 노인층에 들어서는 자신을 초보 노인이라고 하며 주변의 노인들이 겪는 불편한 거동, 치매, 투병 생활, 젊은 날의 회한, 죽음, 혼자된 삶을 이야기한다. 조용하고 여유 있는 그들만의 공간에서 노년을 즐기는 노인 군상이 부러웠지만, 나이 들어 사회나 가족에 분리되어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편리한 세상의 이면에는 외롭고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노래로는 위안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도서관 계단 위의 부부가 궁금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왔을 때 이미 자리에 없었으니 잘 올라와 도서관내 어디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계단의 난간을 사이에 두고 각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함께 하지만 언제나 둘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느끼며, 자다가 갑자기 등을 긁어 달라는 아내의 부탁에 짜증 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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