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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리아 May 29. 2023

신규간호사

동료

“애벌레가 세상이 끝났다고 느낄 때, 비로소 나비가 되는 것이다”

Proverb



병원에 막 입사한 “신규간호사”를 생각해 보자.


간호대학에 입학하여 4년 동안 이론 공부에 더해 실습 1,000시간을 채워 국가고시까지 합격했는데도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실질적인 간호 일과 배운 것의 괴리가 상당하다. 

일단 *카운팅부터 시작해 볼까? 간호 공부를 하며 몇 번 들었던 기구들의 이름이 머릿속으로 휙휙 지나간다. 하지만 그 어떤 교수님도 이 기구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관해 출제한 적이 없고, 국가고시에도 이런 자잘한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아이리스…. 옛날 드라마 이름인가 싶지만, 옆에서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나도 빠르게 이것저것 설명 중이다. 집중해야 한다. 수첩에는 들은 것과 기억해야 할 것들, 공부해야 할 것들이 중구난방으로 한가득 적혔다. 환자에게 들어갈 약을 확인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이름 맞추기 게임 같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간호기록과 간호 진단, 수행 등을 기계적으로 입력하는데 인계를 들을 시간이 돼버렸다. 나머지는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해준다고 하신다.

감사하다고 했다. 

간호 실습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인계는 아무리 들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가 않는다. 의학 용어는 많이 외웠으니 그건 알겠다. 근데 전체적인 내용이 이해가 안 간다. 환자를 한 명이라도 제대로 파악했는지 싶다. 인계가 끝나고 병실을 전체적으로 도는 ***라운딩을 한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두 손 무겁게 ****바이탈기, *****인젝 트레이를 쥐여 주고 따라오라고 하신다. 수액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열나는 것 같은 사람은 열도 재고, 이상 있는 환자는 혈압도 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제 정맥주사를 놓는다고 한다. 선배님이 연습은 좀 해봤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곳에 연고가 없어 제대로 연습해보지 못했다. 실습 때 같은 조 오빠 팔에 딱 한 번 해봤는데 그것마저 실패했었다. 이제는 실전이다. 손 소독하고, 개방형 질문으로 환자 확인을 일일이 하며 수액과 주사제를 연결했다. 2시간 가까이 걸린 듯하다. 선배 간호사가 표정이 안 좋은 상태로 다음부턴 더 빨리해야 한다고 그런다.

이젠 혈압과 당을 재는 시간이다. 이건 그래도 실습할 때 해봐서 능숙하다. 그래도 환자가 50명 가까이 돼서 1시간 넘게 걸렸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약을 챙겨 환자들에게 나눠준다.

목이 너무 마르다.

중간에 드레싱을 하고 갔는지 ******드레싱카가 엉망이다. 정리라는 단어를 모르는 인턴들이 쓰레기통에 기구고 뭐고 죄다 쑤셔 박아 놓은 것을 뒤집어엎었다. 고름이 묻은 거즈, 붕대, 그 사이로 보이는 기구들을 건져내어 설거지한다. 설거지는 할 줄 알아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점심 인젝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인데 옆에서 알려주시는 것들도 다 외워야 한다. 수첩이 몇 장이나 넘어갔는지 세볼 틈도 없다. 중간중간 '이렇게 하는 게 다음 사람 생각하는 거예요.' 하시는데…. 지금 내가 다음 사람을 챙길 여유가 있기는 한지 의문이다. 어쨌든 하라고 하시니 해야 한다.

12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다. 드디어 앉는다. 밥을 퍼서 자리에 앉기는 했는데 멍하니 있다가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의 식사 속도에 놀란다.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다. 빨리 수저질을 해야 한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점심을 먹고 병동에 내려오니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열 있던 사람의 체온을 다시 재야 하고, 혈압 높았던 사람, 검사 끝나고 온 사람 등등 다시 가서 살펴볼 사람이 수두룩하다. 옆에서 내 담당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다 하고 오면 점심 주사 놓으러 가죠.” 하신다. 점심 주사까지 정신없이 끝내고 오니까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있다.

“환자 리스트 인계 종이 원래 선생님이 뽑아야 하는데 오늘은 제가 뽑아놨어요. 이것도 선생님이 해야 돼요.” 하시는데 오늘 나 대신에 선생님이 해주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선배님은 선배님 나름대로 바쁘게 일을 하시는 것이 분명한데 일이 익숙해서 그런지 한없이 여유로워 보인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교대 시간이 다가와 인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점심때 환자에게 달았던 항생제나 꼬마병들을 수거하고, 중간중간 다른 중간챠지선생님들이 시킨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내 일은 안 끝났는데 인계가 끝났다. 퇴근하자고 하시는 수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이것만 마무리 짓고 가겠다고 했다. 근데 일이 마무리가 잘 안 된다. “너 안 가냐?” 하는 어떤 연차가 꽤 있는 듯한 선생님의 말이 들리고 나서야 업무가 끝을 보였다.

선생님들께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하고 병동을 빠져나오는데 오늘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마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갔다. 일단 화장실을 먼저 가야 할 것 같다.


간호사에게 '당신의 동료는 안녕한가요?' 하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 것 같은가? 대부분의 간호사가 동료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본인의 입사 동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병원에서 일한 시간이 길지 않은 이상 동료라는 부류에 선배 간호사는 감히 끼워 넣을 수 없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후배 간호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신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신규가 막 병원에 입사했을 때 놓인 위와 같은 상황이 거짓말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략한 일이 상당히 많다. 중간에 수술도 보내야 하고, 검사도 진행해야 하고, 소변량 등 기록은 기본이고, *******유치도뇨나 ********석션, 관장 같은 간호 술기가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에 따라서는 드레싱을 간호사가 해야 할 수도 있다. 실상은 위의 기록보다 훨씬 바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앉아서 명령하는 사람들은 바쁘지 않으냐? 그것도 아니다. 그분들도 물 못 마시고 일하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왜 간호사는 동료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생명을 다룬다는 중대한 책임 의식 때문이 정녕 맞을까? 아니면 의사가 간호사를 꾸짖는 것이 연차에 따라 내려온 것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텃세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인 걸까?

나의 이 모든 물음표를 너무 싫어하진 말길 바란다. 이 물음표들은 온전히 간호사의 직업환경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함에 기인한 것이니 말이다.


서로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기초적인 이유는 ‘신뢰’가 없어서라고 예측해 본다.

연차가 있는 간호사와 신규간호사 사이에는 신뢰가 없다. 그런데 이는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신규간호사는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혈압과 혈당을 재는 것은 간호조무사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실습 때도 해왔기에 익숙하겠지만, 실제로 적용하는 간호 술기는 전혀 다른 말이다. 물론 간호대학에서 간호 절차에 대해서 다 배우고, 시험까지 보았을 테지만 이것을 실제로 적용하기란 참 쉽지 않다. 이제 막 입사했다는 긴장감, (아직) 무섭게 하지 않으셨지만 무서운 선배 간호사 선생님, 옆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환자, 실제 사람에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술기…. 신규간호사에게는 이 모든 것이 압박이 되어 다가온다. 병원에서는 실수할 수 있다는 작은 너그러움이 용납되지 않아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신규간호사가 실수했을 때 너그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을 담아 꾸짖기보다 실수만 담백하게 지적해 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신뢰’는 비단 연차 있는 간호사가 신규간호사에게 없는 것뿐 아니라 그 반대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신규간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연차 있는 간호사들은 앉아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이것 또한 서로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주로 신규간호사의 병원 적응을 위한 팁들을 이야기하겠지만 궁극적으로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일하는 간호사로서, 연차가 많든 적든 서로를 이해함으로 보다 효율적이고, 나아가 조금이라도 평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일할 수 있길 기도해 본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간호사도 결국은 사람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반대 입장인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모두가 알고 있었으면 한다. 어떤 신규간호사든 시간과 경험을 쌓으면 능숙한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어느 일이든 그렇겠지만 처음은 누구나 힘든 법임을 기억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분에게 하루를 이겨낼 작은 힘을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운팅(Counting): 병동에 비치된 물품을 세는 일을 뜻하며 소독기구, 간호술기에 필요한 물품, 응급 시 사용할 물품 등의 개수가 비축해야 하는 물품 개수와 맞는지 파악한다.

**아이리스(Iris): Scissor보다 날이 작은 수술 및 소독용 기구

***라운딩(Rounding): 병동 순회

****바이탈기: 바이탈(Vital) 기계. 활력징후 측정을 위한 물품으로 혈압계, 체온계, 필요시 옥시미터(Oxymeter,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포함된다. 

*****인젝(Inject): 주사, 트레이(Tray): 철제 바구니

******드레싱 카(Dressing Car): 소독용 카. 소독 물품이 진열된 이동식 트레이

*******유치도뇨: 소변줄 삽입을 위한 간호 술기

********석션(Suction): 가래 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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