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내 고막에 탁 닿는다. 큰 아이가 중등 라이프 스타트 라인을 끊은 지 이틀째 만이다.
들뜸으로 가득 찬 2월 말이었다. 아이는 반 배정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친한 친구 딱 한 명만이라도 같은 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남자 아이라 그럴 마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꽤나 긴장되는 일인 듯했다. 반 배정 결과가 나오자마자 친한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곧 몇몇 친구들에게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농구 멤버 중 한 명과 같은 반이 되었고, 아이는 연신 '예스'와 '다행이다'를 외쳤다. EVA 소재의 하얀색 실내화 대신 삼선 쓰레빠를 실내화로 신는, 진정한 '급식이'로서의 자부심이 뿜뿜 하던 요 며칠이었다.
"임파선염이네요."
의사 선생님은 마치 탁구공 반 쪽이 들어있는 것 마냥 부풀어 오른 아이의 왼쪽 턱 아래를 쳐다보셨다. 아이 턱에 살짝 손을 가져다대니, 통증 때문에 아이의 미간은 팍 짜부라지고 고개는 파르르 흔들렸다.
"이 정도면 항생제 며칠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니깐 컨디션 조절 잘하고요. 아이들이 3월에 굉장한 에너지를 쓴답니다."
"잘 먹이고 잘 재우겠습니다."
내 대답은 그리 하였고, 정말 그럴 마음이었다. 하지만 약국에서 약을 받아 나오자손도 대지 못한 아이의 수학 숙제가 떠올랐다.
A형이다 B형이다 독감이 난리를 칠 때도, 세탁실에 있는 세탁기가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한파가 휘몰아칠 때도 아이들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지난겨울을 잘 보냈었다.
퇴사를 하고 아이들과 온전히 보낸 첫 방학이었기에 더 잘 먹이려고 애썼다. 바나나와 우유를 갈아 하루 세 번 아이들 턱에 갖다 대었다. 방학이면 지겹도록 먹어야 했던 카레밥-볶음밥-짜장밥-유부초밥-삼각김밥의점심 메뉴 굴레도 끊어냈다. 열심히 굽고 지지고 삶고 끓이고 볶아댔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렇게 보내본 방학이 처음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할만했다. 내가 늘 동경하던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쉬는' 방학이었다.
하지만 새 학교에서 새 학년을 시작하는 큰 아이에게는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나 보다. 초등 40분 수업 6-6-5-6-6교시와 중등 45분 수업 6-7-6-7-6의 임팩트 차이는 컸다. 거기다 저녁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 수학 학원 일정을 더하니 10시 반이나 되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잠을 이겨내는 힘이 없는 남편과 나의 DNA를 물려받은 아이는 차라리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설치는 타입이지만, 새벽 기상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새벽 영어 공부는 글렀다. 학습자의 컨디션이 엉망이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담임 선생님께 보건실 위치를 여쭤봤지만, 말씀하신 2층에서 도저히 보건실을 찾지 못했다는 아이 주머니에 점심약과 함께 타이레놀도 한 정 같이 넣었다.
"오늘은 보건실이 어디 있는지 꼭 잘 찾아봐."
다행히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한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내화 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3월에는 세상의 모든 1학년들이 한 번씩 아프대. 적응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깐."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응원했다. 적응이라는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함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아니. 아이보다 더 설레고 더 긴장하면서, 겉으로는 덤덤하고 센 척하는 '초짜 중 1 아이 엄마'인 나를 향한 몸짓이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