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공성사 보러 성당에 간 녀석들 중 하나만, 그것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돌아오다니. 무슨 일인가.
“성당에 도착하니깐 성가를 부르고 있어서 고해성사를 안 주시는 줄 알고.”
둘째가 알 수 없는 말을 들어놓는다.
“미사가 다 끝나고 고해소 앞에 서 있어야 알 수 있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뭐가 그게 아닌데?”
서재에 있던 남편이 커피잔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사무실에 가서 여쭤봤더니 오늘 고해성사 안 주신다고 하시던데요?”
“그럼 성사를 안 보더라도 형이랑 같이 집에 와야지 이 밤에 왜 너 혼자 들어와?”
밤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는 걸 매우 싫어하는 남편.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뛰어오느라 얼굴이 벌게진 둘째는 남편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내가 전화해 볼게요.”
성당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일정상 미사 전에만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단다. 둘째 말이 맞다. 첫째에게 전화했다. 이 녀석은 왜 또 전화를 안 받아.
“엄마. 저 성사 다 봤어요. 그런데 걔는 어디로 뛰어간 거래요?”
첫째의 콜백이다.
“너네 성당 갈 때 같이 가긴 한 거니?”
“아니요.”
그럼 그렇지. 10대 중반의 형제가 이야기하며 나란히 걸어갈 거라는 나의 상상은 그저 헛된 것. 첫째가 전달해 준 상황은 이러했다. 집을 나가자마자 둘째가 먼저 간다며 뛰어감. 본인이 성당에 도착하니 갑자기 먼저 집에 간다며 다시 뛰쳐나가는 동생을 보면서 뭔 상황인가 몰라 당황. 본인은 미사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해성사 보고 지금 집으로 가는 중.
상황을 전해 들은 남편의 목소리는 이미 가라앉은 거실의 공기보다 더 낮게 깔린다.
“너는 이 밤에 혼자 길거리를 막 뛰어다녀도 된다고 생각하니?”
“아니요.”
“아빠가 분명히 형이랑 같이 성당 가라고 했으면 둘이서 함께 다녀야지. 넌 위험하게 왜 혼자 다니니? 너희 둘은 나가면 남남이니?”
둘째는 말이 없었다.
“엎드려뻗쳐!”
둘째는 막 자대배치받은 이등병이 되어 잽싸게 자세를 잡는다.
“너는 어린이 미사 후에 드리는 판공성사도 안 드렸어, 오늘도 성사를 못 드려. 내일부터 부활대축일까지는 성사도 안 주시는데 넌 그럼 어떻게 할 거니?”
내 목소리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려는 차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한 첫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너는 동생 안 챙기고 왜 너 혼자 다니는거니? 너는 동생이 혼자 뛰어가면 같이 가자고도 이야기 안 하니?”
남편의 물음에 이 녀석도 답이 없다.
“너 동생한테 전화했어?”
“아니요”
“너희는 바깥에 나가면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 말도 안 하니? 너희가 남이니?”
서로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형제는 사고 친 이등병과 이를 방조한 일병이 되어 함께 얼차려를 받는다.
좀처럼 같이 걷지 않는 형제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두 남자. 별일 아닌 일에 투닥투닥. 큰 녀석은 둘째를 진심을 다해 놀려대고, 둘째는 온 마음을 다해 짜증을 내고 형을 이겨먹는다. 게임 혹은 농구할 때나 한마음이 될까나. 저게 싸우는 건지, 같이 노는 것인지 당최 구분할 수 없는 그 모호한 경계를 자주 목격하는 것.나에겐 대부분 이해가 되지 않고, 자주 당황스럽다.
웃으며 시작했는데 화내면서 끝이 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 Created @ Bing
‘형은 동생을 잘 챙기고, 동생은 형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형제애의 기본 정신이라고 믿는 남편이 충분히 화날 상황이었다. 거기다 서로에게 철저히 무관심했으니 큰 소리 안 난 게 다행.
남편과 도련님의 과거. 하는 일도, 라이프 스타일도, 가치관도 조금씩 달랐던 두 형제. 남편은 시동생을 걱정과 못 미더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시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별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서로 목소리 높여 싸우는 일도 없었다. 오순도순 좋은 사이의 형제가 아닌 그저 평범한 형제.
몇 해 전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두 형제는 달라졌다. 집안 대소사를 서로 챙기면서,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두 형제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커져갔고, 그 사랑은 차고 흘러넘쳐 형제애가 되었으니. 비로소 그들은 ‘의좋은 형제’가 되었다.
남편과 시동생의 분위기가 대충 이러하다는 거다. Created @ Bing
두 놈 중 한 명이 어디서 얻어맞고 들어오면, 그제야 두 주먹 불끈 쥐고 서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지. 내가 늙어 죽고 내 남편이 홀아비가 되어야 형제애가 가시권에 들어올런지.
사춘기에 갓 입문한 두 남자 사람들에게 부모과 원하는 형태의 ‘형제애’를구현하라는 것은 불가능할 터. 투닥투닥 형제의 일상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티격태격 교차하다 보면 어느새 형제애라는 옷감이 완성될 것이라, 여자인 엄마는 그렇게 오해하고, 또 믿고 싶을 뿐이다.
같이 얼차려를 받고 있는 이 시간이 그들에게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 될지, 서로에게 원망을 던지는 시간일지, 추억이 될 시간일지는 잘 모르겠다. 형제라는 인연으로 만난 저 두 남자. 각자 알아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 그 결정적인 순간에는 등을 맞대어 기대고 의지할 수 있길. 그런 마음이 '형제애'이길 이 엄마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