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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Dec 05. 2023

이런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키우는 건 아니니깐


아이들을 키우다 종종 이건 그냥 '운'이다 하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다. 내가 막 애쓰고 노력한다고 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아이의 기질, 나의 성향, 그리고 우리 가족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되어버린'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첫째는 아침형 인간이다. 가급적 아침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정해진 아침 공부를 하고, 간밤에 들어온 NBA 뉴스를 확인하고, 아침을 먹고 책을 좀 보다가 등교를 한다. 이렇게 글로 써 놓으니 참 성실한 어린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밤에 잠이 와서 뭘 못하는 아이"이다. 피곤하면 저녁 7시부터 자기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잔다. 저녁 공부를 하자 치면 하품부터 하고 본다. 초저녁부터 눈을 비비면서 비몽사몽 하니 가끔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른 친구들은 학원에 다녀와서 늦은 저녁을 먹고 본격적으로 학원숙제로 정신없이 바쁠 시간에, 첫째는 9시 30분을 겨우 넘기고 기절해서 잠든다.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 건 생각이 안 나고, 친구들 다 공부하는 시간에 이렇게 태평하게 자는 아이가 가끔 걱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일찍 자면 키라도 쑥쑥 커야 할 텐데 아직 꼬꼬마 멤버로 활동 중이니, 또래보다 작은 키에 더하는 걱정은 옵션이다.



둘째는 사교성이 좋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즈음에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형아들이 노는 걸 좀 지켜보다가, 어느새 같이 같은 멤버인양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멤버라도 못 찾는 날이면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했기에 언제나 출동 대기 준비 중인 소방대원 같은 마음이었다. 둘째 덕분에 나도 한때는 날다람쥐처럼 미끄럼틀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술래잡기에 진심을 담았으며, 그네 밀기로 팔 근육을 단련하던 여자였다.



나가서 가서 노는 것도 꼭 멤버를 맞춰서 논다. 가끔 친구들과 약속 잡느라 해야 할 숙제도 다 안 마치고 마음이 붕붕 떠서 난리를 피운다. 같이 놀고 싶은 친구나 형아들과 연락이 안 되면 왜 전화를 안 받냐며 굉장히 갑갑해한다. 오후 3시에 농구하기로 약속을 잡으면 2시 30분부터 나가려고 부릉부릉 시동 걸기 일쑤다. 굉장한 사교성이다 싶다가도, 소셜에 대한 욕구가 과한 게 아닌가  걱정이 기도 한다.





내가 뭐 아침형 인간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나은 것도 아니고, 꼭 멤버를 맞춰서 놀이터에 가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를 기르고 싶어서 기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아이로 태어나고, 그런 아이를 내 스타일대로 키우고, 또 이런 환경 속에서 키우다 보니 지금 아이의 모습이 형성된 것이다. 밤에  잠이 와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앉혀놓고 밤늦게까지 숙제를 시키지 못하는 것이고, 하루에 한 번은 나가서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에게 차분히 앉아서 혼자 노는 시간을 가지라고 백만 번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런 부모를 만나고 싶어서 만난 게 아니다.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 둘째는 실외에서 잠자는 걸 굉장히 불편해하는 남편을 조르고 졸라 겨우 글램핑 한 번을 다녀온 게 다다. 본인이 원하는 건 미리미리 챙겨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첫째는 매번 깜빡깜빡하는 엄마 때문에 '그거 다 챙겼냐'라고 열두 번 더 물어봐야 하는 고충이 있다.




아침형 인간에겐 아침부터 설치게 하고, 소셜형 인간에겐 주말에 꼭 친구들을 만나게 해 주자.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르치며, 내 욕심과 취향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가끔 되돌아보자. 아이 입장에서는 이해도, 공감도 안 되는 엉뚱한 곳에 나 혼자 주파수 쏘아대지 말자. 내 의도를 잘 알아주지 못했느니, 내 말을 듣지 않느니 하며 괜히 짜증 내지 말고.  

@unsplash


잊지 말자.   

나도 이런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키우는 건 아니듯이

아이도 나 같은 부모 만나고 싶어서 만난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 하기 싫지만 효도하는 마음으로 근근이 해내는 아이의 많은 애씀에 칭찬을 쏟아부어야겠다. 그러면 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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