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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Apr 19. 2024

오늘도 제발 '보통' 혹은 '좋음'이길

나의 소중한 아침 산책을 위한 간절한 기도

요 며칠 미세먼지 농도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아침 산책은커녕 외출도 가급적 자제해야 하는 하늘이다. 남편 서재에서 바라보면 옆 동네 산이 보이는데,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으면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는 어김없이 나쁨이다.  


흠. 절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


하루 종일 문을 열지 못하고 환기를 못하는 점이 제일 힘들다. 아무리 주방 후드를 돌려도 음식 냄새가 하루종일 집안을 맴돌고, 차 오르는 습도 때문에 꿉꿉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언제쯤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이 될지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째려본다. 걷기 운동은커녕, 나가서 산책을 못하니 속은 더부룩하고 뱃살은 늘어간다. 몸은 갑갑한데 외출할 때 마스크도 써야 하니 갑갑증은 따따블이 된다.



미세 먼지 농도가 높아지는 날에는 전기를 더 많이 쓰게 된다. 신축 아파트에는 집 전체에 공기청정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하는데, 25년 구축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소문만 들었지 구경 한번 못 해봤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공기 청정기와 씰링팬을 쌍으로 돌리며 끈끈하고 습한 공기를 애써 순환시켜 본다.



외출하고 나서 돌아오면 온 식구들은 그 길로 바로 샤워를 하고, 평소보다 더 많은 옷과 수건이 빨랫감으로 나온다. 물을 계속 틀면 습기가 차니, 설거지 거리는 모아서 식기세척기를 돌린다. 미세먼지 때문에 겪어야 하는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평소보다 더 많은 전기와 에너지를 쓰게 되는 어리석은 아이러니에 빠진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미세 먼지 농도부터 확인한다. 다행이다.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 수치도 보통이다. 이럴 때 어서 산책을 가야 한다.

“김기타! 미세먼지 없어. 자전거 타러 나가도 되겠어!”

아침잠이 많은 둘째 녀석이 웬일로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나온다. 요 며칠 동안 자전거에 손도 못 대봤는데 본인도 지금이다 싶었는지 평소와 다르게 바지런히 움직인다.



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쌀쌀하고, 청명한 봄 아침답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먼저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봄날의 아침 바람. 깨끗하게 흐르는 아파트 옆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작은 공원들.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가로수들. 가볍게 올라갈 수 있는 동네 뒷산.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소소한 자연의 흔적에서 오늘 하루를 시작할 작은 에너지를 충전시킨다. 인생 별거 있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잠도 깨고,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지 이것저것 생각도 하다가, 아무도 없는 산책길 사진 하나 남기는 것. 이것들이야 말로 디 작고, 의심 없는 확실한 행복 아니겠는가.

평화로운 공원의 아침 풍경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화살기도에 소소한 진심을 담는다. 올봄에는 덜 짙은 황사와 약하디 약한 미세먼지만 몰아쳐오게 해 주세요.

이 평범하고 당연한 아침 산책이 계속되게 해 주세요.


저의 아침 산책을 허락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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