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선물
쿵~!
튼실한 밤나무 한 그루, 중동이 쩍 부러지는가 싶더니 그냥 내 눈앞에서 자빠져버린다. 태풍, 폭풍.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방으로 바람 지켜보기, 바람 속에 담겨 그냥 있기. 이층 베란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몰려드는 바람과 맞서 본다. 엎어질 듯 쏟아져 들어와 주저앉는 바람의 힘을 맞받으며 서 있어 보았다. 몸통이 휠 듯하다. 더이상 태풍의 요구에 따라 내 모습을 바꿀 수도 내 감각을 편히 유지할 수도 없다. 도망치고 만다, 끙끙대며 문을 닫는다. 다른 것들을 흔들어서 맘껏 제 형체를 드러내는 바람. 자유자재 한 바탕 맘껏 살아 보는 바람, 가차없이 자신을 휘몰고 다니는 바람을 기쁘게 본다. 장하다, 참으로 장대하다.
깎여나간 길가 언덕에 얽힌 뿌리 드러낸 키다리 참나무 우듬지들이 다급하고 위태롭다.
저리 휘청대면서도 나무 전체의 흔들림이 둔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빽빽히 들어선 다른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인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깊고 넓은 뿌리로 버티고 있는걸까.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힘차게 제 길 가는 인간 하나 새삼 발견한 듯.
내가 보지 않았을 때도 나무는 그렇게 제 시간을 만들어갔던 거였다.
따끔하다, 태풍보다 크다.
저 아랫집 수숫대들을 보라.
금세 쓰러질 듯 눕다가 탱그르르 돌며 일어나 몸서리친다.
통째로 가슴에 화인을 찍는 광경.
손가락-뼈마디 같은 뿌리로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무한 흔들림을 심줄처럼 버팅기는 몸-수수!
강요배의 '마파람'이
제주를 훑은 바람이 사방으로 요동친다.
10년차 농군이 잘 키운 수숫대들이 자못 장엄하게,
심장처럼 붉고 단단한 이삭을 달고
태풍에 기꺼이 휩쓸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인,
매혹하는 농작물.
자연이자 배경이며 제 이름 가진 것,
한 부부의 결실로 현전하는 감동! 오오ㅡ
그대, 수수들!
끝내 꺾였으나 여전히 매달린 튼실한 이삭 서넛이
우리 울타리 안으로 완전 기울었다.
여보! 저것 봐~ 우리 울안에 떨어질 거야.
내일 아침에 얼른 주워 와.
으흐흐 천 냥 꾸러미 수수 이삭이 우리 마당으로 드러눕기를.
훔치는 거야?
태풍의 선물이야. 두근두근
태풍이 자니 나도 졸립다
그러나 참나무처럼 완전히 누울 순 없다
수수들처럼 쉴 수 없다
나는 살그머니 발바닥에 힘을 준다
강요배 <마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