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의 이름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마당가 경계석을 따라 불쑥 자란 잔디가 눈에 띈다. 예초기가 닿지 못한 부분이라서 그런가 보다. 꽃가위로 조금씩 깎다 보니 40분이 훌쩍, 가위 쥔 손아귀를 펼 수가 없다. 아프고 저리다. 어렵게 손을 펴는데 퍽 딱딱해진 손끝이 도드라진다. 손가락 마디들은 부은 게 아니라 이미 굵어진 게 틀림없다. 낯설고 밉고 보기 싫다. 과연 시골집을 감당할 수 있을지 다시 걱정된다. 내손을 도구로 맘껏 사용할 수 있을까. 걸리적거림 없이 모든 나를 사용할 수 있을까. 보는 것과 사는 것이 다름을 누구나 머리로 알고 말도 하지만 살아보지 않고는 결코 아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시골집을 다시 계산해야 할 날이 오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하늘과 흙과 마당의 꽃들, 바람이 넘실대는 2층과 상추와 탐스럽게 치솟은 오리엔탈그린과 정들 수 있을 것 같은 강아지들과... 안 돼. 아직 과꽃은 심지도 못했는데...맘이 뜨거워진다, 꼬물거린다. 여기는 영원히 내집이야. 벌떡 일어나 어깨를 펴고 밭으로 간다.
열무 싹을 보았다.
작아도 완전하다. 수많은 하늘이 열렸다.
손바닥 크기로 시작한 채소밭이 살곰살곰 달 반 사이에 꽤 넓어졌다.
아침마다 즐겨 밭을 돌보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몸맘이 건강한 사람임을 알겠다. 그래서
불안을 깔고 앉은 나를 잘 견뎌주었음을 알겠다. 한편
내 불안은 그의 어떤 부분을 두드려 깨웠을까.
새로운 땅에서 우리는 서로를 좀 더 두드리고 열 수 있을까.
즐겁게 견디며 조금 더 잘 살고 많이 살 수 있으리라.
연못가를 걷다가 엉겅퀴 몇 포기를 마주한다.
힘찬 대궁에 날카로이 잎을 세우고 절대권력의 위용으로 존경심을 일으킨다.
두려움 없이 하늘을 뚫을 듯 곧추 자란 엉겅퀴를 차마 뽑지 못한다.
고귀한 보라색 왕관의 대관식이 끝났어도 그것이 차지한 자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기품있게 꽃자리를 지키는 홀씨들이 화려하게 세상으로 나갈 걸 상상하니
그들의 파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잔치의 주인도 초대받은 손님도 아니므로 조용히 물러났다.
내 땅은 이미 엉겅퀴의 이름으로 영원히 그들의 땅임을 안다.
바람 따라 날아오를 엄청난 홀씨마다 싹이 터서 그들의 영토를 넓힐 내년,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잡초’를 뽑아야 할 것인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없었던 것들이 생겨난다, 있다.
내가 없었을 때도 늘 존재했던 것을 보고 만지고 듣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세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들을 이제야 만난다.
누군가 이전에 머금었던 맛을 이제야 느껴볼 참이다.
작으나 큰 시작이다.
흙을 경험하지 않으면 삶이 아니거나, 사람이 아니거나!
열아홉 달 농부의 금언.
♣ 나의 아내 릴리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코네티컷 주에 있는 우리집의 아름다운 화원이다. 화원은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우리 화원의 아름다움은 25년에 걸친 끊임없는 노력과 생각, 그리고 육체적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스캇 팩 『영혼의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