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들을래

내 말에 내가 닿을 듯

by 박경이


바람 낮고 부드러운 날 이층 데크에서 해바라기 하다가 누워 책을 연다. 몇 줄 읽기도 전에 활자들이 굼틀꿈틀, 하나씩 소리로 바뀐다. 톡. 톡. 토톡. 밤톨 떨어지는 소리 따라 글자는 날아간다. 생각도 잦아들고 다른 소리가 겹쳐온다. 작은 가지들이 딱딱, 점찍는 듯한 소리 위로 멀리 새소리 실리고 가느다란 바람 소리도 두세 겹. 바싹 마른 잎새들의 흔들림, 뒷밭에 일하는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호미 소리? 삽인가, 저건 곡괭이겠구나. 나뭇가지, 풀덩이 던지는 소리. 눈앞에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지며 떨어지는 것을 듣는다. 후둑 틱. 화르르 짜륵찌륵 꽈아꽈아 끼르르 찰찰 꿔꿔꾸어~~ 나는 발딱 일어나 앉는다.


갑자기 밤나무 언덕으로 몰려오르는 새들의 합창

큰 무리를 지었다가 나뉘며 다시 모이고

멀리 가까이 여기 쪼고 저기 쪼고

이놈 저 녀석 스치며 포르르 에고고

연갈색 작은 몸 팔랑대며 휘리릭 날아오르네

가지 사이 날갯짓 위로 노랑노랑 햇볕살 나르네

무리에서 빠진 나는 조금 서운하고 살짝 궁금하다

찰랑차르르쌀쌀싸찌릉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찰랑찰랑

찼다가 비우며 옮겨가는 소리들... 보는 듯 닿는 듯


소리 보따리에서 풀려 나와 눈을 뜨니 서쪽으로 두세 발짝을 더 뗀 햇빛이 밤나무 사이로 부서진다. 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이로구나. 홀림. 여기저기 곳곳에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이 닮은 가을 풍경이 색깔로 빛으로 소리로 함께 어울려 차른차른 곱디고운 띠를 둘러준다. 아하하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차에 난데없는 소리에 화들짝, 꿕꿩 쭈루루 꿩, 화르륵. 꿩이다! 장끼다, 화려하다! 바로 몇 미터 코앞,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오호, 정말로 꿩은 꿩. 꿩. 하는구나. 세상에, 이런 소리가 있구나. 무수한 자연의 소리. 알 수도 없고 호명할 수도 없어서 가끔 불안을 일으키기도 하는 소리들. 아직 이 시골집은 내게 다정하고 친절한 곳이 아닌 거야. 그렇지만 이제 시작인걸. 갈수록 구별하고 나누고 판단하지 않을 테다.


감각에 매달리지 않게 될 거다

무분별지無分別智를 갖게 될지도 몰라

아아, 닥치고 들을래, 조용히 들을래

음악처럼 흐르게 할래 그냥 둘래

팔랑대는 책장마다 부서진 활자들이 해를 향해 오르자 내 숨소리도 보인다

이제 내 안에서 내 소리도 날 듯, 울리는 소리 들릴 듯

내 말에 내가 닿을 듯, 나를 만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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