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의 단단한 연대
"처서 지나면 모든 식물이 생장을 멈춘다고 하죠~"
지화자, 할렐루야! 라디오는 정말로 좋은 것이여.
구체적인 의미가 시간으로 농축된 그 위대한 문장은 막강한 위로며 감동이었다.
풀과 힘겨루기 사랑에 지쳐 우리집 강아지에게 도움을 청하던 내게 광명으로 쏟아지는 말이었다.
소리야 엄마 좀 도와줘, 바쁘면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데 너는 개잖니. 유서깊은 진돗개 수컷이잖아.
늘어진 개팔자를 부러워하며 징징대던 초짜 농부는 처서 이후로 풀뽑기를 멈추었다.
절기와는 그다지 상관없이 살았으므로 부끄러움을 동반한 놀라움은 정말 컸다.
이후 실눈을 뜨고 매섭게 지켜본즉 처서 지났어도 자라긴 했지만 말이다.
한창 때는 지났음이 명백해졌으므로 전혀 겁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서 한참 지나고도 힘차게 뻗어나는 잔디!
가을 햇살에 여물어 단단함을 더하는 걸 보면서
잔디 위로 탱크가 지나가도 괜찮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가늘고 단단하며 날카롭게 이어지는 마디위로 새잎을 돋우며 거침없이 전진하는 잔디.
직진하는 동시에 실뿌리를 내리며 마디마다 좌우로 새로운 촉을 전개시킨다.
경외감으로 만져본 바늘 같은 촉들은 뾰족함에 매끄러움조차 더했다.
담쟁이처럼 발자국을 남기지도 않고 흙과 밀착하여 연결망을 짜는 잔디.
땅과의 단단한 연대, 그 위에서 우리가 쉬며 노래했구나!
대단한 잔디를 거듭 뵙는다.
나도 잔디처럼 나아가야 했던 거다, 여린 듯 강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누볐어야 했다, 잔디처럼 거침없이!
잔디의 그 촘촘한 관계를 뚫고 풀이 난다, 잔디 닮은 풀이 난다.
틈을 만들어 자신을 드러낸다, 힘찬 미소로 곧게 서서 나를 마주본다.
부추 사이에는 부추 닮은 풀이 난다, 비슷해도 다르니 신기하고 재밌다.
닮은 녀석더러 엉큼하게 숨어있는 강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차마 뽑기가 미안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전혀 아님에도 망설이고 떨렸다.
이젠 아니다. 요놈! 쑥 뽑는다.
이름을 모른다고 미안해할 것도 없었다.
녀석들이 떨며 움츠리는 게 보인다.
이제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건 내가 아니야.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거침없이, 단호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