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얼굴에 서명할 수 있었던
- <똥무더기 위의 욥> 알브레히트 뒤러. 슈테델미술관. 프랑크푸르트
- <웃는 렘브란트: 제욱시스로서의 자화상> 렘브란트. 발라프리카르츠미술관. 쾰른
욥의 아내가 물을 끼얹고 있다
똥냄새가 거슬리지 않는다 해도
뒤러가 아니면 불가능한 그림, 제목이다
상처입은 욥, 도무지 알 수 없는 절망의 끝자리
신에게 패대기쳐진 욥, 그 기호해독의 불가능성은
종종 렘브란트를 불러온다
내게 렘브란트는 자주 욥과 함께 있다
아내와 두 차례 사별한 렘브란트
아들들이 죽고
딸들이 죽고
파산까지 했으나
불멸로 남은 그도
욥이었다 그는
인간을 관통하는 행위와 사유의 고갱이를
그것의 존재에 대해 강렬하게 주장하며 보여준다
그 삶의 핵심 장면을 증언하듯 그렸으니
고통스러운 동시에 성스러운 것, 지극히 아름다운 것
그것, 생의 불가해성을 우리에게 들이민다
모든 긍정성의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한 나머지
승복도 거부도 못하는 자들은 오직 부인하는 그것
인간에 가까워 보이는 예수에게
우러나는 신성을 입혔음은 렘브란트가
오래 신을 품고 함께 머물렀음이다
그 전념과 헌신, 고통의 정화
자신의 엷은 웃음 속으로 사라지는
자화상을 남길 수 있었던가
지우면서 드러내는, 번역을 우회하는
신의 자취를 따를 수 있었던 것인가
우리에게 왜 신이 필요한지
우리가 왜 신 없이 말할 수 없는지
신을 죽였으나 왜 신은 계속되어야 하는지
뒤러는 욥을 통해 렘브란트를 계속 소환한다
62세에 그린 웃는 자화상은
생의 모든 영욕을 겪고 말갛게 남은 얼굴이다
조금씩 빨려들듯 눈을 뗄 수 없다
온전히 건조된 체념이자 달관의 경지에서
자신을 남김없이 비우는 한 겹 웃음
너는 어떻게 살래
웃음 속으로 곧 사라질 것 같은 질문이 온다
네 얼굴만이 너야 그건 인간문서야
모두 얼굴에 기록되더군, 난 서명도 했지
마침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네
나는 가네, 잘~ 살아 보게나
그는 백에 가까운 자화상으로 자서전을 썼다
속일 수 없는 자신의 눈-시선을 맞받을 수 있었기에
자신을 지워가는 웃음이 가능했으리
떠나려는 그와 함께 곧 사라질 그의 미소는
신과 화해하고 부를 되찾는 욥의 영광을 향해
렘브란트 자신의 몸으로 내보이는 대답이다
자신의 얼굴에 서명할 수 있었던 사람, 렘브란트
허허롭고 우울하지만 되쏘이는 빛의 불멸성
렘브란트를 위한 변명인 동시에 나를 위한 바람
나의 이 횡설수설을 고호는 비유로 농축시킨다
‘이빨 빠진 늙은 사자의 웃음’
생을 뒤집어 횡단한 자로서 최대의 웃음이자
그 흔적으로서 최소 웃음이다
모든 의미가 중지된 틈으로 드러나는 존재의 맨얼굴
키에르케고르라면 미친(狂) 웃음이라 할 것이다
물론 미친(至) 거다
웃는 사자이며 미친 사자
뒤에 오는 자들을 살맛나게 하는 고수들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