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조용한 혁명

by 박경이

어서 와요, 어서 오세요, 어서 와~~~

환대를 담은 참 아름다운 말이다.

오래 전 본교무실보다 규모가 작은 학년 교무실을 사용하던 이삼 년 동안은, 이 말들을 무척 많이 했다. 교무실 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이나 선생님들과 '어서 오세요'로 눈 마주치고 빙긋 웃으며 시작되는 만남이 참 좋았다. 당시 잡상인이라고 불렸던 분들은 그 인삿말에 종종 머쓱해 하는 한편 볼일로 오신 학부모님들은 특히 좋아하셨다.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문간에서 기웃거리기에 어서 오세요,에 더하여 어떻게 오셨어요?를 상냥하게 날렸는데도 어리둥절, 머뭇머뭇하시는 걸 보고 뭘 도와드릴까요?,가 나올 참인데 휙 가버린 일이 있었다. 잘못 오셨는가 했더니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이었다. 학년 초였으니 뭐.


나의 ‘어서 오세요’는 시골집 이사 후부터 빛을 잃어갔다. 대문기둥에 초인종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두드렸다. 대문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울 빼고는 자주 현관도 열려있는 데다가 개들까지 짖질 않으니 말이다. 버선발로 달려나가 어서 오세요,를 외치지만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중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자주 방문하면서부터 어서 오세요,를 누구세요?,로 바꿀 때가 되었음을 확실히 알았고, 나는 바꾸었다.

내 집에 온 사람을 환영하기 전에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야 하다니. 쯧! 아파트에 살 때도 우아하게 거절하는 말을 찾느라 머리를 써야했는데, 그들은 문을 열 때마다 단정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갈등하게 만들지 않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거절한 다음 눈앞에서 문을 닫는 건 서글픈 일이었다. 나로부터 비인간적 면을 끌어내는 그들을 탓하는 한편 그들의 태도나 신념에 대해 조금씩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군복무를 거부하고 기꺼이 옥살이를 택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벽에 부딪쳐야 했다. 권력자 아들의 병역회피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병역거부라니? 종교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옥살이를 선택하다니! 군복무라는 ‘신성한’ 의무와 관련하여 논란은커녕 무슨 사색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여호와의 증인, 그들은 인간 신념의 증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침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가 가능해지고 병역의무자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거부자의 대체복무 허용까지 거론되면서 오랜 무저항운동은 결실을 보았다. 물방울들이 바위를 뚫고 산을 옮겼구나 싶었다. 불멸의 진리라고 믿었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도 보게 되었으니, 30년 넘도록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감옥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던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었다. 혁명에 알맞은 때란 없으며 관여된 자 외에는 혁명임을 알지도 못한다. 혁명은 엄청난 희생위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니 조용한 혁명이란 말도 모순이다. 그들의 오랜 고통과 소리없는 외침에 대해 차마 말할 수 없는 무능과 말하고 싶지 않은 내 완고함의 변명일 뿐. 완전히 좋은 것은 없다.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가 주로 인생의 선택이며 정치며 제도지만, 더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변화는 곧 우리 사회의 가능성일 터이다.


갈수록 그들과 마주하는 일이 덜 부담스러워졌다. 종교적 대화는 거절하되 자연스레 전도지를 받으며 앞으로는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했다. 마당에서 만나게 될 때면 웃으며 어서 오세요, 홍보지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머잖아 파라솔 아래 초대하여 차 한 잔 대접할 수도 있겠구나, 했는데 점점 발길이 뜸하더니 우체통에서 홍보지를 꺼낼 일도 없어졌다. 서로의 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지난해 끝, 비종교적 병역거부자 1호가 탄생하여 대체복무 배치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친 선택만이 진정한 선택이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뜻을 불현듯 알아채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두려움 속에 떨면서, 어둠 속에 빛을 보며 조금씩 길어 올리는 인간의 용기,를 가만히 느껴보았다. ‘좋은’과 ‘나라’가 손잡고 동사로 변하고 수행사가 되는 순간에 머물러 보았더랬다. 그들 덕분에 나와 많은 사람들은 조금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부분에선가 우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으니. 삶이란 그렇게 남을 보며 걷되 결국 나로 돌아오며 가장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는 길이 아닐는지.


새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순하고 게으르다

주황노랑 붉은 색들 초록 얹은 풍경風景, 바람과 볕.

뜰, 국화꽃잎 사이로 가을 햇살 간지럽다

깨알 같은 빛알갱이 톡 톡, 팔랑팔랑 나뭇잎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색과 소리 가득한 집

방귀소리, 웃음소리, 웍웍, 냐~옹~발자국, 마당에 마른잎 구르네

노랫소리, 목소리,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어서 와요.



*교도소에 배치, 3년 대체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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