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문 열자 아침 바람이 퍽 싸늘하다. 도로 들어가 더운 물 가지고 나오는데 뽕띠가 눈을 핥아 먹고 있다. 순식간에 내 속이 써늘, 아이스크림 먹은 거라고 생각한다. 밥 냄새 맡고 마구 달려들던 소리는 엉덩짝 한 대 맞고서야 의젓하게 앉는다. 가르치지 못한 탓인 걸 어쩌겠나. 집짓는 동안 가을볕과 그늘 따라 둘이 놀게 내버려 두었으니 기본생활태도를 익힐 기회를 놓친 셈이다. 저대로 더디게 배울 거라고 믿지만 가끔 미련스럽고 못나 보일 때면 짠하다. 요즘 소리 살찌우느라 사료보다 밥을 먹이는 중, 동태찌개 국물에 남은 밥 말아서 낮에 소리를 주고 나는 감자를 쪘다.
탁 터진 작은 절벽 사이
포슬포슬 반짝이는 살.
가느다란 흙냄새를 남기며
사라지는 살은 진정한 비밀이다.
계속해서 고이는 침, 오오, 나의 마들렌!
차를 우린다, 금빛 녹색이 번진다.
부엌 뒤편 출입문 틈새로 바람이 든다 싶더니 요 며칠은 제법 왕바람이다. 나도 문풍지를 발라야겠다. 가을 깊어 가면 엄마는 창호지 문을 다시 발랐더랬다. 묵은 것을 고루 떼어내고 새로 잘라 맞춰 바른 다음 물을 거듭 뿜어가며 말리기까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미닫이문은 더러 떼어내서 그늘에 세워 말렸는데 말린다면서 왜 물을 뿌리는지 이상했고 그렇게 마를수록 단단한 게 또 신기했다. 손잡이 주변에는 곱게 마른 코스모스나 과꽃을 넣어 창호지가 두 겹이었고 종종 삼베나 모시조각을 붙이기도 했다. 참 멋스러이 팽팽하던 그 부분조차 결국 구멍이 나고 마는 것은 더욱 신기했다. 손가락들이 살짝 닿았을 뿐인데 어느새 그렇게 닳는 걸까, 뚫어지지 직전 내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넓힌 적이 있긴 하지만. 참말 신비로운 일들이었다.
그리고 남은 창호지를 잘라 문틈마다 문풍지로 붙인 다음, 북쪽 창 외벽에는 비닐도 쳤다. 엄마는 그렇게 해놓고 마음 놓였겠지. 숟가락으로 동글동글 시멘트 가루 바르던 부뚜막, 맨들맨들했더랬어. 한끝이 초승달로 사라진 숟가락은 얇고 날렵한 연장이 되어갔지. 엄마는 그것도 보기 좋았을까. 숟가락과 함께 닳은 건 없을까.
부엌 모서리에 쌓인 연탄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엄마도 줄어든다는 걸 알기 시작한 건 열 살 넘어서였을 거다. 남은 연탄을 세던 엄마의 뒷모습. 연탄이 있던 벽에 연탄은 없고 그것들이 기대어 남긴 검은 세로줄만 계속 이어질 때 발끝부터 치어오르는 가느다란 한숨도 쉬었겠지.
“엄마, 내가 이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연탄 100장씩 사줄게.”
내가 이렇게 말했다는데 그건 내가 엄마에게 한 ‘새벽의 약속’일지도 모른다.
둘째를 낳은 나를 돌보느라 두세 달 엄마가 와서 계실 때 우리집은 연탄 세 개짜리 보일러가 설치된 연립주택이었다. 연탄을 자주 갈아야 했음에도 엄마는 마디게 타들어가는 연탄을 살피며 갈아주는 게 재밌다고 했다. 가득 쌓인 연탄 보는 게 재미난다고 했다. 비자마자 채워지는 연탄의 검은 줄들, 비면 곧 채워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음은 엄마에게 대단한 풍요였던가. 그렇다면 나는 약속을 지킨 걸까. 지키지 못하고 기억도 못하는 다른 약속은 무엇일까.
아이들과 시를 공부할 때 안도현의 ‘연탄재’는 자주 엄마를 불렀고 엄마의 연탄재는 곧장 응답하며 달려왔다. 엄마의 발바닥 밑에서 부서지던 연탄재의 가느다란 온기가 자동으로 상기되면서 내 고갱이에 붙은 기호 하나의 의미를 깊이 길어올린 거다. 알뜰히 잘 태운 연탄의 재,를 마당길 팬 곳에 밟아 다지던 엄마, 여름 웅덩이를 메우고 겨울 미끄러운 길 위로 고루 소중하게 삶의 바닥을 깔던 엄마가 보였다. 잔주름처럼 밀려와 퍼지는 슬픔 뒤로 말간 기쁨이 보였다.
단단함과 온기로 많은 이들에게 발바닥으로부터의 삶을 가능케 도왔던 연탄재,의 섬유질을 떠올리면서 내 발도 따뜻해질 때, 나는 시어詩語가, 시가 때로 얼마나 폭력적일 정도로 사람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우리의 변화와 이동을 요구하는지 가만히 느껴보았더랬다. 왜 세상에 시인이 있어야 하는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멀리 있는 것들을 연결하며 표현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명명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끼리 강렬하고 질기게 서로를 부르며 의지하고 살게 하는, 시는 힘이고 밥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과 시를 외우고 노래했다.
연탄재는 다시 탄광마을 아이의 시 ‘아버지 얼굴 예쁘네요’를 불러왔고 그것은 청라 탄광촌, 내가 만난 첫 아이들과 광부아버지, 석탄 줍던 엄마들을 생각나게 했다. 또 ‘빌리 엘리어트’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파업하던 동료들에게 등을 돌리고 결연히 지하로 하강하던 아버지와 무대에서 비상하는 빌리, 그 극명한 대조를 어찌 잊을까. 아버지의 검은 보석에서 자아낸 빌리의 눈부신 깃털,의 아름다움에 아이들과 영화를 볼 때마다 자주 몸통이 저렸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구비구비 생에 강제되는 선택에 의해 다시 선택당하며 살았던 그 삶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다. 엄마는 고통과 분노와 절망을 어떻게 압축하여 주머니에 넣고 잠궈버릴 수 있었던가. 어떻게 원망하는 엄마, 탓하는 엄마로 기억되지 않을까. 말하지 않고 소리내지 않는 식으로 울었다면, 침묵으로 외쳤으며 자신을 탓함으로써 남을 탓했다면, 왜 그리도 고통스런 방식을 택했던 걸까.
엄마를 풀어야 나를 풀겠구나. 대체표상을 번역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먼저 풀어야 할 것이다. 자신에 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알아야 사랑할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 그것이 운명을 움직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며 최적의 나를 만드는 일이다. 기쁘지 않은가. 내 안의 매듭들 가운데 내가 묶은 것은 없으나 내가 풀 수 없는 것 역시 없다. 나를 풀 사람은 나 뿐, 오직 내가 나를 가르치는 시간이다. 혼자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오직 자기 자신으로부터/자기 혼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 말고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것은 살아있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는 생명체에게는 불가능하면서도 필수적인 기묘한 참여다.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것은 죽음과 마주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지니고 정의로울 수 있다.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 진태원역. 그린비. 10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