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숙이 왔다, 풋고추 다져 부친 굴전 두 장 먹더니 보름달처럼 훤하다.
맛있어요~ 요리도 잘 하시는 줄 몰랐어요.
흐흥, 요즘 아주 재밌어, 얼마나 갈지 몰라도.
계속 가세요, 자주 와서 얻어먹게요.
그려, 먹여주마, 아무 때나 오기만 해.
정말요? 아이고 너무 좋아요.
몇 번이나 오겠어, 벌써 말로 충분히 먹였다. 사람은 말을 먹는 거다.
커피 향기 속에서 숙이 눈이 반짝반짝 나조차 총기가 난다.
숙아, 요새 나 있잖아, 시력이 좋아졌어, 전혀 침침하지 않아.
책 안 읽어서 그런 거죠, 맞죠? 풀 뽑느라 책 읽을 시간 없을 것 아녜요.
맞아~! 책 안 읽어 그렇구나! 그러니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해. 아하하
애들 공부도 시키면 안 되겠네, 중요한 눈을 아껴야지.
공부도 안 시키고 아껴요? 머리도 아끼고 쓰지 말고? 아하하하
으흐흐 그럼그럼, 뭐든 안 쓰고 오로지 아끼는 거야.
애들 공부를 왜 시켜, 공부하고 싶게 은밀히 조종만 해야지.
속 터져서 어떻게 그래요, 그게 제일 힘들죠. 하하하
그럼 그냥 냅두는 게 짱이야. 우리 수다는 어때, 이것도 좀 아낄까.
아니, 안 돼요. 이건 아낄 필요 없어요.
아끼면 병나지. 그럼 병도 아끼자구, 나지 않게.
병을 아끼는 지름길은 수다를 따라가는 길이니까.
좋아요, 수다는 풀고 병은 아끼고 오호호
이왕이면 적확한 단어와 명료한 문장을 사용하는 고급 수다 어때?
아하, 뭐예요~ 너무 멋지다~~ 으흐흘낄낄
숙이 가자마자 현이 왔다. 시험기간이 맞긴 맞구나. 감독하느라 긴장하고 평가로 바쁘지만 대낮에 학교를 벗어나 숨통을 트고 숨길을 고를 시간이다. 정작 귀한 사람들, 선생님들을 아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런데 놀라운 뇌의 편집기능은 사람이 바뀌어도 수다의 나아갈 길을 거침없이 열고 닦는다. 보름달보다 더 훤한 순희는 반달 보면서 초승달처럼 웃다 갔다. 하루 두 개 먹는다는 구름과자 가운데 하나를 우리 이층에서 달 보며 아주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그 한 개가 너무 맛있어서 남은 하나는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하며 갔다. 수다가 잘 흘러 거침없는 말길을 낸 덕분이며 목소리가 살아난 덕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기뻤다. 그러자 이해불가였던 어느 부부의 대화가 불쑥 솟구치듯 선명한 그림처럼 열린다.
담배 좀 나가서 피워요.
그건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 거야. 그것만큼은 안 돼.
뜻하는 바가 너무나 명료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보다 담배를 더 사랑한다고 명확하게 말한 건가! 설마, 아내와 담배는 비교대상이 아닌걸. 세계대전도 가능할 상황인데 눈 한 번 흘기고 끝냈다는 대화다. 대화가 맞긴 하고? 그렇다, 담배가 자신의 속깊은 친구임을 무지 폭력적으로 호소한 남편을 정말로 ‘봐준’ 거다. 담배랑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이 듣지 못하는 무슨 귀를 가졌길래 그리 통하는지 아내는 알았던 게 아니겠는가. '무지막지한' 말 아닌 말에 고속으로 말길을 내고 의미를 낚아올린 아내야말로 담배를 능가하는 친구였음이 증명되었으니 엄청 수준 높은 대화였던 셈이다.
그러니 담배와 대화하는 애연가들을 미개인이나 죄인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한 줄기 담배연기를 비난하면서 정치꾼의 막말은 꿀꺽 삼키는 사람들이 나는 괴물같다. 담뱃값을 와락 올려서 그들의 찰떡 친구를 뺏은 건 정말 비겁했다. 올려야 할 건 부자들의 세금이며 법관의 정의감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야. 그러면 담배보다 좋은 친구들이 도처에서 웃으며 부르고 살맛나는 삶의 조건과 배경이 더 가능해질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 남편이 아내에게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을까. ‘미안해, 당신은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사람이야, 나를 참아줘서 고마워.’ 말은 숨거나 우회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슬슬 나가서 피우다가 끊게 될 거다. 이 부부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하하 남의 노래를 누가 알겠는가마는!
설명될 수 있는 인과로 연속되는 탄탄한 삶만 살 수 있으면 편할 것이다. 지고지선으로 열려있는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 것들은 결코 없음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말해도 말해 지지 못한 말들이 남는 까닭이며 말 스스로 삼가 저를 아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달처럼 둥실 뜨는 말만 했을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높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는 중이라고 믿는다. 이미 우리 모두는 각자 나 이상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이하로 살기도 하면서. 딱 맞는 나란 없는 거니까.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공백의 자리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길을 내면서 나와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게 삶이니까. 사람을 멸시하고 세상을 더럽히는 비열한 말들을 지적하고 닦아내면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서로 신발끈을 묶어 주면서 인간답게 아름답게. 그래서 생은 통째로 비밀이고 기적인지도 모른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