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고 일 못하는 며느리

쥑인다!

by 박경이

이런!

반찬거리가 없다

냉장고에 머리를 넣고 필사적으로 뒤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남은 것들을 모아 비비는 것은 매우 쓸쓸한 일이다


한 개 갸름한 명란을 찾아 칼집을 넣는다

시들한 파와 곰팡이 마늘, 풋고추의 극히 일부를 곱게 다져 올린다

오직 명란 한 덩어리를 정성스레 쪄낸다

고춧가루 살금, 통깨 솔솔, 참기름 또르르

상추 깔린 접시는 꽃받침이다


명란 알알이 젊은 바다를 휘젓고 해류를 거스른다

힘차게 길어 올린 이야기를 듣는다, 꿈에 홀랑 반한다

역설의 생각자르기와 반어의 통렬함으로 먹는다

은유라고 들먹였다가는 폴 리쾨르선생께 모진 소리를 들을 터

사유를 강제하지 못하면 은유가 아니거나 이미 죽은 거라고 혼날 터

쥑인다!

완벽하다, 유일한 은유.


오후에 케잌 들고 엄니 뵈러 갔던 남편이 쑥을 가지고 왔다. 씻다 보니 검불이 몇 개 없다, 열 번을 씻어도 나오는데.

“여보~ 어쩜 흙도 검불도 이리 없지. 곱게도 캐셨네.”


발작처럼 터지는 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게으르고 일 못하는 며느리 씻고 씻으며 지랄할까 봐.”


튀어나온 내 대답에 어깨가 결리도록 웃었다.

가벼워진 몸에 힘이 차오르는 것 같다. 한 치의 거짓도 흔들림도 없는 적확한 명명이 기쁨을 폭발시켰나 보다. 조금의 위장도 필요하지 않으니 웃음으로 비워낸 공간에 새힘이 고이는가 보다. 신난다. 이거야말로 쥑인다! 은유 따위 없어도 괜찮아.


데쳐서 씻노라니 걸음걸음 쑥향이 진동한다. 쑥국을 끓이고 한 덩이는 얼린다. 낼 아침 부침개용으로 한 주먹 고추장된장에 살짝 무쳐 재운다. 잔뜩 먹어야지, 엄니표 보약. 나 좀 더 어른 된 것 같다. 내 이름을 내 목소리로 당당히 부르게 되려나 보다. 폐가 간지간질, 스스로 흔들고 부수며 달라지려나 보다.


다르지 않다면 왜 저마다 이름이 필요하겠어.

쑥으로 간을 해독하고 횡격막을 활짝 열어 자유를 줘.

내 숨을 내가 쉬어야지.

그래 지금 양성원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듣고 있지?

3번 A major 2악장으로 휘말려들지? 소용돌이!

심장 살짝 안쪽을 문지르잖아 아아, 거기도 현이 있었구나.

언제나 나를 연주하는 거였어.

내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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