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야, 기적이지
1
번개 쳤는데 일곱이 다 모였다. 목요일마다 학교 앞에서 점심으로 칼국수 먹다가 시작된 목칼 모임, 20년이 눈앞이다. 새로 잘 꾸민 전통찻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분위기가 우중충하다. 옛 살림살이들과 화분을 그저 늘어놓았을 뿐이다. 안목은커녕 정신 사납고 너저분한 느낌조차 든다. 내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통차만 아니라 커피도 아무 맛이 없다. 내 생각일 뿐,이겠지, 했는데 다들 찻잔 쥐는 손길이 뜸한 걸로 보아 비슷한 느낌인가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맛있고 점점 맛있어진다. 우리끼리 맛을 우려내고 재미를 퍼올린다. 별 것 아닌 말이며 소소한 화제와 사건에 자잘한 생각과 느낌으로 엮어내는 수닷발 올올이 쫄깃쫄깃하며 웃음이 퐁퐁이다. 익살에 과장으로 말발 넘치는 사람도 없다. 서로 폼잡지 않고 체도 없으며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 채로 대략 섞이고 잘 어울린다. 누가 의견을 내면 선뜻 동의하고 타협하며 불평하지 않으니 순하고 맑다. 한라산도 가고 초밥도 만들고 전시회도 다닌다. 대장이 없어서 모두 대장인가 하면 대장 같지 않은 대장들이어서 금세 물러나고 수용한다. 5.18추모공원도 가고 공연도 보고 찜질 주머니도 만든다. 가만히 세워주고 미소로 쓸어주며 끄덕끄덕 서로를 만드니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난다. 우리집에서 보리수도 따고 독서토론도 하고 쑥도 캔다. 각자에게 불필요한 무게를 부과하지 않기에 얄팍한 자존심 따위는 애당초 없다. 어쩌다 맥주도 한두 잔. 알맞음과 적당함을 아는 사람들, 발견되고 싶지도 않고 발견될 필요도 없는 삶의 달인들.
일상이 뭔지 알고 누리는 친구들, 오래 나랑 놀아줘서 참말 고맙다.
소중함으로는 으뜸인지라 그림자처럼 붙어있기에
미처 몰라 뵙는 일상, 이제 좀 보인다
배반을 당해 봐야 진저리치며 손에 넣으려 하는 그것
돌아오는 길에 체리 샀다, 일상이다
아직 조금 비싸니 더 맛있다, 일상의 즐거움
엄니 좋아하시는 체리 갖다드려야지
일상의 기쁨, 나는 조금씩 더 나로 산다
2
딸래미가 집에 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후배들이랑 시내에서 만나 저녁 먹고 온단다. 딸래미 기다리며 하루가 더 길고 넉넉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째 너무 늦는다, 하는 참에 연락이 왔다. 시내버스 놓친 김에 더 놀고 택시 타겠단다. 대한민국, 밤, 택시, 그것도 술 먹은, 여자애! 그, 그것도 시골집. 일단 누웠으나 맘이 편할 리 없다. 그러나 편하기로 한다. 불안을 일으킬 까닭이 없다. 잘 놀고 오겠지.
부르르~ 으응? 드디어 차소리가 들린 것 같다, 벌떡. 현관으로 불빛 들이비치자 문이 열리며 딸이 들어온다. 엄마~ 나 집주소를 몰라서, ㅇㅇ중학교까지 가면 제가 길을 알아요, 하니까 기사님이 이 밤중에 거기 왜 가냐고 묻는 거야. 부모님 계신 우리집이예요, 했지.
아이고, 그 기사님이야말로 놀랐겠네. ㅎㅎ하하 한밤중에 술 먹고 촌구석으로 가는 네가 무서웠겠어.
그런가? 아하하 그렇다~ 히히히 말하고 보니 정말 우습네.
흐흐, 얼그레이 한 잔 마셔라.
삶을 능가하는 일상의 재미, 내가 보이고 남이 보인다
내가 보이는 동시에 남이 보이면서 진짜 내가 되어 간다
관계 속을 누비는 마음이 없다면 삶이랄 것도 없다
3
딸래미가 렌즈를 두고 갔다.
작은 도자기 접시에서 나란히 나를 쳐다보는
투명한 눈동자 두 개와 마주한다.
일부러 두고 간 거야, 엄마 보려고.
아무렴, 많이 봐두려고, 영원히 나누려고.
일상이 바로 영원이야.
기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