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살, 술에 빠지다

거짓의 진실을 알아채다

by 박경이

1

집안 누군가의 결혼식 날이었다. 나중에 큰언니에게 물어보니 아버지가 일곱 남매라 비슷한 나이의 사촌들이 많아서 잘 모르겠단다. 계속 조르니까 곰곰 따져보더니 첫째 작은 아버지의 둘째 딸인 상경 언니 같단다. 내 일곱 살 가을 언저리에 있었던 혼인잔치라면 그 언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거는 엄마한테 여쭤봤어야지. 종종 생각했다면서 살아계실 때 왜 안 물어봤어?”

“몰라.”

모른다. 언니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 거다. 생각만 몇 번,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미루다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결국 물어보지 못한 게 어디 한두 가지겠나. 왤까, 왜 그리도 묻기 힘들었을까. 무서웠던 기억을 되살리기가 싫어서 꼭꼭 묻어두는 거라고 단순명료하게,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생각했을 뿐.


혼인날, 아이에게 한없이 넓은 마당, 여럿의 천막들 아래 깔린 가마니와 짚방석들, 크고작은 밥상들... 넉넉한 밥과 축복의 마음으로 생기 넘치는 장면, 말 그대로 잔칫날이다. 파란 하늘을 휘돌아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그것에 묻어 코를 자극하는 갖은 음식 냄새, 흥겨운 노랫소리, 떠들썩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리며 퐁퐁 떠오르곤 했다. 당연히 아이의 머리 속에서 나중의 경험과 바람이 재구성한 풍경일 것이다. 술독에 빠졌다,라는 사실과 함께 고통도 묻어버린 무의식 가운데 겨우 생명을 얻은 상상력이 덧칠한 아름다운 풍경화. 내가 예식장이 아니라 마당에서 전통혼례를 올린 것도 어쩌면 그 때 그 자리의 정서적 풍성함이 깊은 인상으로 자리잡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민주화의 열망과 함께 우리의 것에 대한 관심이 문화운동으로 일어나던 시대, 참여와 실천을 넘어 그러한 근원적 그리움이 있지 않았을까. 강렬한 공포는 잊은 채.


2

그날 단술은 참 맛있었다. 우리 고장에서 단술이라고 불렀던 것이 식혜와 어떻게 다른지 아니면 같은 건지는 모르겠다. 달달하여 술을 못 먹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먹어도 되는 술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면 얼마나 예쁜 우리말인지. 빛깔도 막걸리랑 비슷하다. 그러니 그게 문제였던 거다. 나는 잔치상 한 쪽에 앉아 단술을 홀짝홀짝, 먹을수록 맛있다. 밥알갱이는 가라앉히고 국물만 살살 입술을 핥아가며 자꾸 먹었을 거다. 올챙이배가 되었으나 더 먹고 싶다, 엄마가 어딨지, 누구에게 달라고 하나. 단술은 어디에 있는 걸까. 가만히 보니 집 뒤편에서 가져오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그쪽으로 드나들며 병이며 바가지에 뭔가 담아 나르고 있는 것 같다. 두리번거리며 앉아 엄마와 숙모, 아주머니들을 지켜보던 나는 가만히 일어나서 단술을 찾으러 갔다.


아, 댓돌을 꺾어 집 뒤란으로 나가니 커다란 항아리들이 무수하다. 주로 내 키보다 높이 줄지어 앉은 항아리들이 성벽 같다. 이게 모두 단술 항아리일까, 어디선가 큼큼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술 냄새. 뿌연 술, 막걸리라고 부르는 것, 아저씨들이 단술보다 좋아하는 것. 어떤 독에 단술이 들었을까. 앞줄 가운데 커다란 독 위로 팔을 뻗어 가장자리를 붙들고 힘을 주어 깡총 뛰었다. 글쎄 근처에 돌이나 벽돌 같은 게 있었을까, 작은 항아리가 있어 그걸 딛기라도 했을까, 알 수 없지. 바둥바둥 달라붙어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몸이 휘청 팔이 꺾이면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컴컴, 흔들, 첨벙!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야야~, 아가 아가...”

나는 항아리 안으로부터 끌어내졌다.

“얘가 뉘집 애지?”

그건 단술이 아니었다.

“아이고~ 큰집 딸래미 아이가, 막내. 그 그 이름 뭣고...”

그건 술독이었다.

“형님~ 이리 오소~~”

높고 큰 말소리가 다급하게 오갔고 발자국이 부산스러웠을 터이다.

“야가 왜 여기 있노, 왜 빠진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고.”

경이~~”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확 안심했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괜찮다, 애는 괜찮다.”

“애가 왜 술을 먹을라 했나?”

“무슨 술을. 단술 찾으러 온 거 아닌가?”

“갸 장사네. 달라고 하지, 저리 쪼만한 게 저보다 큰 독을 우짤라꼬?”


걱정과 추측과 안도의 말들이 소란히 오가는 중에 어이없는 웃음도 종종 터졌을 게다. 깰듯말듯 꼬르륵 까무룩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온몸이 따갑고 써늘히 떨리며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막걸리에 잠겼다가 밖으로 ‘꺼내진’ 이후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울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 팔다리, 내 몸은 도대체 어떤 상태로 접혀 있었을까. 지독하게 꿉꿉하고 싫었던 막연한 느낌만 조금씩 떠오르다 사라졌더랬다.


3

나중에 들은 말로는 얼핏 독 안으로 사라지는 내 꼬리를 본 숙모가 쫒아오며 사람들을 불렀다는 것. 그 술독에는 막걸리가 반이 안 되게 차있었다는 것. 신기하게도 아이가 다친 데는 없다는 것. 그리고 놀란 숙모들과 사람들이 항아리 주변에 붙어선 광경이 볼만했다는 거다.

이 사건도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취소, 그런 일 없음. 잊고 싶어서 스스로 지워버렸을 터. 성장하면서 가끔 한 번씩 떠올랐지만 빠진 건 내가 아니다. 항아리에 빠진 어떤 아이를 구경하는 걸 내가 멀찍이서 보는 정지된 장면으로 획 지나고 끝이었다. 감정이 버썩 메마른, 이해도 움직임도 불가능한 공포의 꿈장면 같은. 덮개기억 속의 아이는 아마 그 항아리 옆에서 단술을 맛나게 먹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수십 년이 지난 어느날 문득 떠올랐을 때, 부인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내 것 같지 않았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무렇지도 않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보다. 거짓의 진실이다. 심리적 진실은 거짓을 포함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일곱 살 내가 술독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다. 내가 건강하게 회복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3년간의 깁스를 드디어 벗어던지고 보통 아이처럼 호기심과 탐구심에 식욕을 가졌다는 뜻이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뭐 다친 데도 없으니 말이다. 키가 작을 뿐. 작으면 뭐 어때, 다음해에 나는 1학년이 될 텐데. 다른 아이들과 함께.


“경이, 키가 작네~ ”

“어린애가 술독에 빠져서 그런가.”

“술에 쩔어서 크겠나.”

“발효해서 나중에 크는 거 아니가?”

“알콜에 완전 소독했으니 나중에 아픈 데는 없을끼다.”


언니오빠가 걱정 반으로 놀렸고 동네 어른들도 빙그레 웃으며 종종 그랬지만 관심받는 재미였을까, 기분이 나쁠 듯 말 듯. 뭔가 특별한, 남과 다른 느낌으로 끝. 그래서 그런가 난 아픈 데가 없다! 병원에 안 가면 된다. 우리 몸은 수시로 변화중,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어떤 상태는 곧 없어진다. 자잘한 ‘불건강’은 그냥 데리고 산다. 참, 대학 새내기 음주 첫걸음부터 내가 소주파였던 이유, 막걸리를 전혀 못 먹는 까닭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야 알았다. 이렇게 단순한 답을 이제 찾다니, 단순함 이면의 복잡함, 사물의 양면성! 단순해 보이는 것은 항상 복잡함을 포함하며 복잡해 보이는 것일수록 단순함을 지닌다. 어쨌거나 이젠 포도주가 좋다. 스스로 잘 익어가는 와인 한두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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