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길바닥에 자빠지다

웅숭깊은 시간의 맛

by 박경이

1

대학 1학년 초, 하숙집과 자취집이 가까운 탓에 저마다 과는 달라도 대여섯 명이 자주 어울렸더랬다. 그러던 어느날 주말마다 하이킹 다녀오자는 말에 의기투합하여 자전거포에서 빌린 자전거로 연습을 시작했고, 이미 탈 줄 아는 남자애 둘이 못타는 애들을 가르치면서 나름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 바람에 뜻밖에 자전거를 배우게 된 나는 지지부진 애를 먹었는데 흔들흔들 몇 번 만에 페달을 밟으며 구르는 미숙이가 정말 부러웠다. 땅에 한 발을 디딘 채 살짝 기울어진 자전거를 잡고는 다른 발로 페달을 밟는 동시에 앉아서 균형을 잡으면서 달려가기,가 내게는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다. 끝내 나는 돌이나 도로의 턱처럼 약간의 높이가 있는 사물에 왼발을 올리고 똑바로 앉아 균형을 잡은 다음에야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마침내 바퀴를 굴리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대단했다. 너무 신나게 페달을 밟다가 퍽, 도랑에 박히듯 넘어졌을 때도 구정물 냄새가 나는 줄 몰랐다. 신기했다. 무서움보다 내가 뭔가를 했다는 느낌이 먼저 온 걸 보면 그 성취감은 소리 없이 날 따라다녔을 거다. 자전거 위에서는 세상이 더 커보였고 내 세계도 넓어진 것 같았다. 겁이 많은 내가 그렇게라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건 영훈이 덕택이다.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았던 손을 놓고도 칭찬까지 하며 미숙이랑 천연스레 따라왔으니 말이다. 사범대학 신입생 때부터 그들은 이미 좋은 선생님이었던 거다.


다섯이 처음 달려간 곳은 논산. 내 다리가 만들어 내는 동력으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달리며 열어젖히는 공간에서 시간이 발생되는 것 같았다. 쉬었다가 새로 출발할 때마다 왼발을 딛고 오를 뭔가를 찾는 일은 내게 달려있는 혹처럼 걸리적거렸다. 그러나 일단 페달을 밟고 속도가 붙으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신날뿐이었다. 가을 들판 따라 포장도 시원찮은 국도를 달리며 나를 확장시키는 기쁨은 대단했다. 온전히 내가 만드는 내것이었다.


두 번째는 부여, 신명에 자신감이 더하여 달렸을 테다. 고란사 대웅전을 돌던 중에 누가 부르기나 하는 듯 뒤쪽 벽에 얼굴을 대었을 때 깊은 데서부터 전해오던 시간의 냄새,는 다정한 목소리 같았다. 기둥에 기대어 온전히 쉬면서 숨길을 고를 때의 편안함, 시공간의 켜들 가운데 붙들린 듯한 기이함... 기쁨과 감탄을 지니고 돌아설 때의 은은한 두근거림. 그리고 신나게 달려 내려오던 고란사 진입로 비탈길에서의 급강하, 하늘로 치솟아오를 듯한 엄청난 쾌감을 일순간에 덮어버리던 엄청난 공포.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곤두박질치며 뒤집힐 것만 같았던 순간의 두려움으로 빳빳했던 1초, 숨골 주위가 굳어버렸던! 멈출 수도 없다, 모두 달리고 있으니 친구들에게 말할 틈도 없다, 달리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 내 자전거는 내가 몰고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그냥 내가 타고 달려야 한다. 괜찮다, 아아 괜찮다, 무섭지 않다... 공포는 결국 힘으로 바뀌고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때 내 몸은 알았을까. 페달 밟는 기계가 되어 달리던 길, 버스가 휙휙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덜컥덜컥, 그리고 어느 순간 털썩, 나와 자전거는 ‘패대기쳐졌다’. 끽~~~ 버스의 정차 소리와 함께 커다란 말소리들이 날아와 귀를 때렸다. “이게 뒈지려고 환장을 했나?” “너나 죽을 것이지 왜 남까지...” “이걸 워쩐댜~” “기사양반, 고만해유~ 학상이 다쳤구먼.” “아가, 괜찮은 겨?” 아주머니들의 목소리는 아뜩히 좁은 굴을 뚫고 비쳐드는 햇빛 같았다. 살아있음에 대한 인증, 죽지 않았음에 교묘한 승리감을 부르는 작고도 강렬한 위로. 하아...


2

맞다, 그런 일이 있었다. 왜 이 끔찍한 기억은 지금에야 성큼 다가오는가. 물론 이미 두어 번 슬쩍 열리듯 닫혀버린 적은 있다. 그래, 그렇게 나는 자전거와 함께 가차없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더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던 친구들이 달려왔고, 어찌 움직였는지 모르겠으나 시멘트 의자 놓인 정류장에 탄천이란 지명이 보였다. 그걸로 내 하이킹은 끝났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싸이클링, 더 이상 자전거는 없었다.


나를 기어코 길바닥에 내리꽂게 만든 생의 명령.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쏟아지는 해석 불가능한 기호들... 트라우마적 사건이었다. 그 공포의 기록이 아직도 내 몸에 남았던가. 그걸 풀려고, 이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서 이제 와서 내가 자전거를 다시 불러낸 걸까. 그날 이후 40여 년 묵은 자전거 요정이 나를 기억하고 화해를 청한 거라고 동화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흐흐. 이제 더이상 쓸모없는 삶의 무게는 내려놓으라고, 그 이면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자유,하라고.


나는 고란사의 향냄새를 그 웅숭깊은 시간의 맛을 잊지 못한다. 사르르 밀리는 동시에 땡기던 미세한 열림이자 떨림, 어떤 승복감이라 해도 좋을 평온함. 기묘하게 낯설고도 친밀한 느낌. 이후 절에 가면 나는 살그머니 뒤로 돌아가 벽에 기대어 시간을 더듬었더랬다. 정신분석 공부를 하면서 프로이트의 중요한 개념인 언캐니uncanny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고란사가 떠올랐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내게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이해를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전거타기에 두 번 빠진 셈이다. 죽어서 한 번, 살아서 한 번. 죽음의 순간들을 되새김으로써 남아있는 나,를 오직 나,로 충분히 살아볼 때이다. 해독解毒의 시간, 해독解讀되는 기호들. 모든 사건은 나를 설명하는 무수한 기호를 갖고 있다. 사건들이 나를 만들었으니 당연하다. 그 기호를 풀어나가는 삶의 현재형으로서 지금 다시 빠진 자전거. 이제 나는 곧장 올라탈 수 있다! 왼발을 올릴 디딤돌 없이 타고 있음을 알아챘다. 어라? 언제 그렇게 되었지? 넘어지고 다치기를 거듭하는 사이에 나도 몰래 그것 없이 페달을 밟고 있던 것이다. 발전이다, 고칠 것을 고치고 버릴 것을 버린다. 군더더기 획 하나를 지워버렸다. 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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