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빠지다
1
끝을 둥글린 하얀 칼라가 빛나는 검정 교복 윗도리와 바지를 입고 맨 앞줄에 선 키 작은 단발머리 여자아이. 부산동신국민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날 아이는 작은 눈을 크게 뜨고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곧게 내린 팔을 손가락까지 쫙 편 채 양쪽 옆구리에 바투 붙이고 서서 정면 학교건물 위에 날리는 태극기에 감동하면서. 그러나 햇빛에 부신 눈은 크게 떠도 금방 작아지고 눈꺼풀은 빛에 찔리기나 한 듯 사르르 떨며 찔끔 시큼 눈물을 짜냈다. 옷핀 찔러 가슴에 달고 온 하얀 손수건은 눈물 때문에 필요한 것임을 알았다. 바짝 세운 고개는 눈에 그늘을 주기 위해서 자꾸 오른쪽으로 그리고 조금 앞으로 기울여야 했다.
햇빛을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였고 이후 조회는 점점 즐겁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고개를 바로 들라고 지적하지 않기를 바랄 뿐. 그리고 교장샘의 말씀이 짧기를. 그래서 흐린 월요일 아침이 좋았다. 조회중에 흐려질 때는 더 좋았다. 원망할 수도 없는 햇빛을 향해 항의하듯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드는 순간 슥~ 그늘을 만드는 구름 한 장의 놀라운 힘, 그 반가움이란!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거나, 내 생각이나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때면 조회시간이 떠오르게 된 것 말이다. 고정된 자리에서 도무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햇빛. 강한 실망감. 그렇게 햇빛은 신맛임을 알아챈 아이가 나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그렇지만 월요일 아침에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것은 싫지 않았다. 검정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복닥이던 거의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해바라기처럼 얼굴을 들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자리를 딛고 서서 나름대로 빛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굳이 그 까닭을 설명하자면 말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쭉 편 몸에 바람을 담아 아주 조금 커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마다 마음으로 제 이름을 부르며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자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우물에 빠진 것은 그렇게 당당히 국민학교 1학년이 되었던 여름이었다. 사실 우물안으로 고꾸라졌다는 표현이 알맞지만 그건 초라함에 서글픔을 더하는 것이어서 쓰고 싶지 않다. ‘꼴아박았다’ 하고 웃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나도 몰래 따라붙는 아픔이 너무 크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 그냥 빠졌다고 하자. 폼은 중요한 것, 삶이란 게 결국 폼을, 모양 또는 형태를 잘 만들어가는 일이니까.
2
우리집 바로 뒷편에 자그마한 우물이 있었다. 뒤란 언덕 아래 바투 붙어 있었는데 우물턱도 없다시피 해서 어른은 앉아서 팔만 뻗으면 바로 물을 뜰 수 있었다. 언덕 아래 자잘한 풀꽃이며 드리운 나뭇가지, 집과 언덕 사이 공간으로 지나가는 바람이며 스치는 햇살과 더불어 평화롭고 비밀스러운 곳에 자리한 예쁜 우물이었다. 그러니 소설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여인네들이 정화수에 촛불 켜고 뭔가를 빌기에 딱 맞는 곳이기도 했다. 엄마가 그러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좁고 아늑하여 기도하기 좋은 장소였는데. 더욱이나 맑기 짝이 없는 우물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중에 소설이나 연속극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우리 엄마는 자신의 의무를 하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왜 엄마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네들처럼 빌지 않았을까. 엄마는 다른 집처럼 돈 벌어 오는 아버지도 없어서 빌 것이 더 많았을 텐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라는 사람은 소수였음을 이젠 알지만 그땐 몰랐으니까. 아버지란 원래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현상’이거나 역할일 뿐, 주로 부재하는 자리임을 이젠 잘 알지만 말이다. 엄마가 새벽에 나가지 않았겠냐고? 그래서 내가 보지 못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잠귀 밝은 나 몰래 엄마가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행이다, 엄마가 빌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었다. 커갈수록 나는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그러하지 않았던 내 엄마를 멋지게 생각했다. 딸의 가슴에 불쌍한 엄마로 남거나 애절한 수동적 모습으로 새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바로 세운 내 엄마로 남아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우리 엄마는 그런 소설적 장치 같은 정형화로 얄팍한 거룩함을 얻으며 대체해 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게 아닌지. 기도의 말 자체를 폐기시켜야 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닌가 싶어 몸통이 쩍 갈라질 것 같을 때도 더러 있었다. 너무나 강렬하여 1초의 번개로 사라지고 마는 통증의 급습!
3
엄마가 한 팔을 길게 뻗어 바닥을 긁듯이 물을 풀 때면 우물에 고인 물이 적다는 뜻이다. 가끔은 정말 바닥을 긁는 바가지 소리가 쉰 목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팔에 바가지 길이를 더한 것이 이 우물의 깊이인 셈이다. 깊이가 아니라 두께를 느끼게끔 차오르는 투명한 물의 신비로운 부피. 엄마가 돌과 나무, 양철로 주변을 다듬고 뚜껑을 얹어 오래 정들이며 사용한 이 우물은 비밀 장난감처럼 내게 남아있다. 우리집을 완성시키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장식품 아니, 자연과 엄마의 공동 건축물! 옹달샘이라 해도 좋을 아담한 공간의 물길이 지금도 내 안에서 솟는 듯, 심장으로 간질간질 흘러드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엄마와 식구들의 한 줄기 꿈길이자 핏줄처럼.
그런 우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괴는 걸 보는 일은 재밌었다. 노랑과 갈색이 알맞게 섞인 단단한 돌바닥 어디에서 솟는지 분명하진 않으나 바닥에 고이는 투명한 물질은 참 신기했다. 맑디맑은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걸 볼 때면 엄청난 선물을 몰래 받는 것 같은 비밀스러움으로 가슴 언저리가 콩콩 뛰면서 사르르 따뜻함이 퍼져오곤 했다. 그 선물을 나도 언제 퍼올려 봐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왠지 자꾸 미뤄졌다. 옆에 놓인 바가지만 들면 되는데. 우물에 있는 엄마를 볼 때마다 또는, 들창으로 우물이 보일 때마다 물을 퍼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다.
엄마의 발자국 소리, 뒤란 우물로 향하는 엄마의 소리가 들리면 엎드려서 만화를 보던 나는 발딱 일어나 벽에 난 작은 창문으로 우물을 보았다. 엄마가 나타나 물을 푸는 것을 보고는 얼른 다시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거나 연습장에 만화를 그렸다. 한 번은 엄마가 우물에서 쌀을 씻은 적이 있는데 뽀얀 쌀뜨물과 노란 바가지와 주변의 초록 풀잎들의 어울림, 그 선명한 장면이 꽤 오래 기억되며 떠올랐다. 그런데 엄마는 무슨 옷을 입었던가, 엄마의 색깔만 생각나지 않는 건 참 이상했다. 엄마는 모든 색을 합친 색이어서 그런가, 엄마는 아무 색도 아닌 걸까. 그리고 다시 우물에 앉아 물을 푸는 나를 상상했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엄마보다 더 자주 많은 물을 나는 퍼낸 셈이다. 왜 그랬을까. 실행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뭐가 바가지 드는 내 손목을 붙잡은 걸까. 무엇이 나를 우물가에 앉아만 있게, 방에서 생각만 하게 만들었을까. 왜 내가 하지 못하고 엄마가 하는 걸 보기만 했을까? 나는 물이 무서웠던가. 부드럽고도 맑고 신비로운 물이 좋고도 두려웠던가. 왜 물이 무서웠을까. 보고는 싶으나 닿고 싶지는 않은 물. 움직이지 않는 몸. 우물이 부르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면서도 가지 못하는 동물. 가서는 안 되며 갈 수 없는 장소임을 몸은 알고 있었기 때문임을 몰랐다. 그렇게 많은 것이 내겐 시각으로 존재했다. 움직임은 연기 되었다. 물도 우물도 시각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뱃속에서 시작된 것임이 분명하다. 머리는 몰라도 몸이 아는 것, 내가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지만 몸에 기록되고 각인된 것, 보이지 않는 문자. 이른바 ‘모르는 앎’이다. 내겐 태중에서부터 시작된 것. 나에게 물은 생명이자 곧 죽음이었던 걸 알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4
마침내 결행의 시간이 왔다. 맘이 동한 나는 우물로 갔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우물을 들여다보니 하필이면 물이 바닥만 겨우 가린 정도다. 엄마가 가슴으로 샘을 안은 듯이 가볍게 퍼올리던 우물이지만 내겐 아니다. 나 같은 꼬맹이는 무릎을 꿇고 팔을 길게 뻗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물이 바닥이니 어쩌나. 뭔가 바닥에 검은 것이 움직이고 있다. 거머리다! 아이고, 맑은 물에 거머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 알지만 그렇다고 누가 거머리를 좋아하겠는가.
물도 거의 없는데다 거머리까지 있으니 그냥 다시 방으로 돌아와 만화나 그렸어야 했다. 나는 작은 몸을 숙인 채로 얼어붙어 거머리를 보고 있었다. 무서움도 조금씩 잊혀갔다. 아주 가만가만 차오르며 고이는 맑은 물 위에 구름도 나뭇잎도 색깔 그림자를 드리우고, 비치는 내 얼굴로 가느다란 물살이 작은 주름처럼 어른댔다. 거머리는 어쩌나, 두근두근, 내 팔이 과연 저 바닥에 닿을까. 노란색 계열로 대리석 같은 무늬를 그리는 단단한 돌바닥이 참 예쁘구나. 물은 정말 맑았고 어느 순간 거머리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아~ 나도 모르게 바가지를 꼭 쥐고 팔을 길게 뻗었다.
첫번째는 실패였다. 바가지가 물을 겨우 건드렸다. 조금만 조금만... 몇 번째였을까, 안간힘을 쓰던 나는 그만 꼴아박혔다. 쿵, 철퍽, 엄마야... 엄마도 없는데 큰일 났구나. 거머리가 눈에 들어가면 어떡하나. 코가 따갑고 머리가 찌릿 숨을 쉴 수 없다. 팔다리를 버르적거리며 우물 벽을 더듬지만 과연 누가 나를 도울 것인가...
막 시장에서 돌아오던 엄마는 내 이름을 불렀단다. 엄마는 어디 갔다 오면 마당 들어서면서 꼭 내 이름을 불렀으니 그때도 그랬을 거다.
“경이~~”
이게 우리 엄마가 나를 부르는 방법이다. 경이야~가 아니라 꼭 경이~, 하면서 길게 뺐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겨엉이’~에 가깝게 발음했다. ‘경’의 ‘ㅇ’ 받침까지 힘을 주어 약간 길게 ‘겨엉’하고 분명하게 소리낸 다음 ‘이’자를 정확하게 붙여 불렀는데 나는 그게 정말 좋았다. 엄마가 그렇게 부를 때면 정말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를 가리키는 완벽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가서 고전문학을 배우면서 알았지만 ‘경’의 받침 ‘ㅇ’을 옛날에 쓰이다가 지금은 없어진 꼭지이응 ‘ㆁ’으로 소리냈던 거다. 엄마가 그렇게 부르는 게 나는 참 좋았다. 반박자의 들어올림에 약간의 강조가 더하여 경쾌하고 밝은 경이. 엄마가 그렇게 나를 부르면 언제나 크게 대답하며 달려 나갔다. 만화를 보느라고 곧장 일어나지 못할 때는 으레 대답이 먼저 더 우렁찼다. 그러나 어떤 때는 엄마 발소리를 듣고 먼저 문을 열고 엄마를 맞이하기도 했다. 으스름 저녁 조용할 때라면 더 멀리서부터 엄마 발자국소리를 듣고 나는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기도 했었다. 멀리서부터 가까워지고 커지는 엄마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그날도 그렇게 엄마가 나를 부르자마자 엄마는 내 고함소리를 들었단다. 내 수호천사 우리 엄마. 엄마는 도대체 나를 몇 번이나 구하고 살렸는가. 엄마가 내게 달려왔다는 걸로 내 기억은 끊어진다. 어떻게 일으켜져 우물에서 빠져나왔는지 모른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기억하지 못한다. 이 사건도 봉인되고 다시 열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열릴 때마다 맑은 물과 뒤란 풍경만 남기고 얼른 다시 묻었으리라. 그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로 아무렇지도 않기까지가 참 길었다. 내가 은연중 물을 아주 무서워한다는 걸 깨닫기까지도 그러했다. 생명의 물이 누군가에게는 주로 공포의 근원일 뿐이라는 것을. 누가 무엇을 어떻게 견뎠는가에 따라 같은 대상에 들러붙는 감정이 사람마다 그리도 다르다는 것을.
5
그렇게 위험하고도 그렇게 무사히 새로운 한 단계를 들어올린 나의 1학년이었다. 햇살에 찔린 눈을 가물대며 찡그린 채 눈물을 찍어내야 했던 내 1학년. 한 번은 태양과 맞장뜨리라 생각했던가, 눈알에 힘을 주고 있는 대로 동공을 확장하여 해를 올려다보았을 때 깊숙이 뒤쪽으로 말리는 것만 같던 눈알. 영원히 떼지 못할 듯 들러붙은 까풀, 뒤통수 쪽에서 뭔가 끌어당기는 손이 있는가 싶었다. 정말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줄 알았다. 이래저래 삶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갔던 내 1학년을 도왔던 둘째 언니. 우리 교실 밖 운동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언니는 몇 번 내가 국어책 읽는 소리를 들었더란다. 쪼그만 애가 무슨 목소리가 저리 크냐고, 책을 잘 읽는다고 선생님이 말씀할 때 기분이 아주 좋았단다. 엄행자선생님, 그 이름을 기억한다. 햇빛과 눈과 엄마와 내 1학년은 맑은 우물에 초록색 물줄기를 휘돌아 흐르며 아득히 멀어졌다.
지금도 잠을 청하는 어둠 속에서 엄마의 발자국 울림이 전해오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귓가에 걸리는 소리, ‘경~이~~’. 나는 엄마의 경이驚異, 엄마가 만들어낸 놀라움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기형도의 ‘엄마생각’을 외울 때마다, 그림으로 시를 그리며 생각을 쓰고 토론하게 할 때마다 이 시가 나를 그렇게나 아리도록 끌어당겼던 이유를 몰랐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