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빠지다

놀이 일기

by 박경이

1

“응~ 찬희, 걷고 있구나?” “네~ 호숫가예요.” 찬희랑 통화할 때면 목소리만으로 걷고 있음을 안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대략 알 수 있다. 발자국의 무게만큼의 흔들림으로 말의 높낮이에 실려온다. 가끔은 나도 찬희 옆에서 함께 걷는 것 같다. 찬희가 자전거 타는 재미를 자랑할 때면 나는 나란히 자전거 타는 상상을 했더랬다. 자전거 타기 좋게 만들어 놓았다는 계획도시 세종에 살면서 걷기와 자전거타기를 만끽하는 찬희와 함께 한 번쯤 금강을 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도시를 맘껏 누리는 그가 참 좋아보였고 세종에서 어디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나도 궁금했다. “자전거로 우리집에 올 수 있어?” “천안까지는 자전거길이 없어서 위험해요.” 나도 자전거를 좀 타 볼까.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간다면 우리가 어디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오래전에 꽤 탔으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될 텐데. 몸이 기억한다니까 언제든 가능할 거야. 생각으로 충분히 흐뭇했다.


그런데 내가 세종에 몇 달 살게 되었다. 제자의 친구가 자신의 집을 선뜻 빌려준 덕분이다. 훨훨 떠나고 싶은데 남의 나라에서 몇 달씩 있기는 아직 불편한 때라 우리나라 어디가 좋을까, 하던 차였는데 이런 호의라니! 구례에 사는 후배가 보름 동안 자기 집을 비워주고 이후는 멋진 민박을 아주 저렴하게 구해준다기에 그런 것은 영화에나 나오는 거 아니냐며 꺅꺅 호들갑을 떨던 중이어서 더욱 그랬다. 구례나 담양처럼 언제든 살아보고 싶었던 공간과는 다르지만 갑작스런 드라마적 실현에 따라 그 후배 표현대로 ‘능력자’가 된 나는 세 달 머무를 수 있는 이곳으로 왔다. 하늘님, 선의를 베푼 이들과 이 집을 축복하소서.


2

“저 지금 집 앞에 와 있어요, 내려오세요.” 세종에 온지 나흘 되던 저녁, 막 누울 참에 받은 찬희의 전화. “예? 지금 7시도 안됐는데 주무신다구요? 후후, 산책 좀 하시죠.” 무기력한 몸에 졸음 붙은 눈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싫지가 않다. 게다가 7층 계단을 아주 천천히 걸어 내려간 걸 생각하면 걷고 싶었던가 보다. 그렇게 꼭 집어서 누가 불러내주기를 기다린 것인지도. 혼자 뭘 못하고 누가 권해도 핑계 대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움직이는 비리비리한 사람들의 특성을 나도 가지게 된 걸까.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움직이지 않는 나-동물을 움직이게 하자, 정물에서 동물로 복구하자! 몇 년 동안 생각만으로 걷기를 했으니 진짜 걸을 때가 되었나 보다.


아파트 사이 녹지도 넓으려니와 요리조리 잘 통하게 만들어 놓아 걷기는 아주 좋았다. 작은 공원들을 지나 금강 둑길로 들어서자 9월말의 밤공기는 참으로 상쾌했으니 나오길 잘했다고, 곧 자전거 연습해서 금강변을 달리자고 흥겹게 말했다. 몇 겹 청색의 어둠을 두른 하늘을 배경으로 칸칸 층층이 불빛 담은 아파트들을 강변에서 보노라니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염두에 두고 이 도시를 설계했다던 말, 무감하게 입을 삐죽이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명퇴직후 2010년 이맘 때, 세 달 동안 맨해튼의 모든 거리를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공간에 매료되고 장소들에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내 것에 자부심을 가지려 애썼으나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온 탓이기도 할 터. 그러나 지금, 그 말에 담긴 고민의 무게를 진지하게 인정하고 싶어진다.


되짚어오는 길, 갑자기 다리가 휘청, 부르르 떨리더니 거의 주저앉을 지경이다. 어찔, 태엽이 완전히 풀린 인형처럼 움직일 수가 없다. 이 좋은 밤에 요롷게 스타일을 구기다니 쯧. 카페를 찾아 앉았다. 엄살 섞어 오래오래 아주 천천히 달콤한 걸 마셨다. 고마운 설탕, 눈까풀은 무겁지만 숨쉬기는 좀 편해진다. 찬희, 불러내줘서 고마워, 덕분에 알았네. 이렇게나 체력이 안 좋은 줄은 정말 몰랐어. 놀랐지? 언니가 찌질해서 미안, 그리고 엄청 고맙!


3

너무 하다, 두어 번 흔들리다가 올라탈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번 자빠지면 그냥 굴러갈 줄 알았다. 이럴 수가! 자전거 손잡이를 꽉 붙잡기는 커녕 똑바로 세우기도 어렵다. 이전에 사이클링 했다고 큰소리쳤는데. 며칠 연습해서 금강 따라 같이 달리자고, 찬희가 자전거 앱을 깔아줘서 빌린 건데. 일주일치 대금 결제하고 대여하기, 누르니까 잠금쇠 풀리는 소리가 힘차서 신도 났는데.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끌기조차 힘들다. 찬희가 붙잡아줘도 소용없다. ‘자전거타기처럼 한 번 익히면 몸이 기억하는 어쩌고...’ 몸이 평생 기억하는 운동신경의 대표로 들먹여지는 자전거타기잖아, 왜 이러지? 덤불로 자빠졌다, 손아귀가 덜덜, 손잡이를 틀켜쥘 힘이 없다. 이른바 근력이 뻥이다. 어떡해, 찬희. 오늘은 빌리는 연습을 했다 쳐야겠어. 자전거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반납하기,를 누른다.ㅠㅠ


내일 탈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데 사지 관절이 헐렁헐렁, 형체-몸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몸의 기억 여부가 아니었다. 손잡이를 꽉 붙잡을 힘, 다리를 들어올리는데 필요한 약간의 힘조차 없는 것이다. 자전거의 동력을 일으킬 만큼의 내 동력이 없음. 내 몸이 이렇게나 안좋은가, 저질체력이라고 농담은 했지만 진짜였구나. 그래서 체력과 소화력이 악순환을 보였던 걸까. 요 며칠 걸은 덕분인지 어제부터 눈이 크게 떠지고 힘도 생겨 깜짝 반가웠는데 오늘은 급 좌절. 걷는 것과 어떤 근육을 사용하는 것은 다를 테지만 그래도 너무 하다... 후후, 시간 걸리겠는걸. 그런데 어쩌면 이리도 몰랐을까, 은근 무서워진다. 의기소침. 내일 혼자 연습할 수 있을까. 자전거앱을 사용할 수나 있을까. 넘어질 때는 아픈 줄도 몰랐는데 왼팔 두 군데 까여 쓰리다. 오른 다리의 멍도 대단히 아프다... 망연히 쓰라림을 느끼며 앉아 가만히 내 생각을 살펴본다. 그다지 걱정하고 있지 않다. 내 감정을 잘 읽어본다. 아무렇지도 않다,에 가깝다. 마음은 이미 내일 자전거를 타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 봐라?


4

(1) 9월 30일: 자전거 대여 성공. 끌고 와서 타려고 보니 안장조절기가 고장. 바꾸러 되돌아가기 싫다. 안장이 높으니 연습이랄 것도 없다. 오직 페달과 몸체에 부딪치고 넘어지다가 끝. 손아귀와 발의 무력함보다 나의 미련함이 안쓰럽다. 물땀. 흔들리며 끌려가다 자빠지는, 폼 안 나는 연습을, 남의 동네에서 놀이처럼 할 수 있는 내가 나쁘지 않다. 은근 흐뭇하다.

오후에 안장조절기를 점검하고 다시 빌려 30분 연습. 그늘졌던 빈터에 해가 가득하고 운동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좋다. 몇 바퀴 돌리면서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된다는 확신, 작은 기쁨. 근력이랄 게 너무 없으니 손잡이를 붙잡은 채 흔들리면서 버팅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음을 알겠다. 도구를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고 움직이게 할 상태가 아니었던 거다. 쯧. 물땀과 따가운 볕살도 마다하지 않고 타고 또 탔으니 장하다! 작은 성취감이 크다, 기쁘당. 찬희에게 자랑 문자. 내일이 기대된다, 시월이야.


(2) 10월 1일: 나가고 싶고 타고 싶다. 50미터쯤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굴러가기도 했다! 다리가 본격 아프다. 오후에는 멋모르고 큰 자전거를 빌려서 몹시 고생. 한 순간에 장미덤불로 사정없이 자빠진다, 아이고 아파죽겠네. 너무 버거워서 얼른 반납. "이제 나 한 바퀴 돌았어요~." 할아버지랑 세발자전거 타는 아이 목소리. 참 부럽다, 나도 곧! 생생하고 기분 좋은 피로감과 희망의 기운. 이상한 일이다.


(3) 10월 2일: 오전오후 한 시간쯤.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기운이 간당간당, 헉헉거림으로 아뜩한 순간이어도 두려움이 없다. 신통방통.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보거나말거나 아무렇지도 않다. 놀이가 되고 있다. 나도 할 수 있어~ 소리를 지르며 달리는데 바람이 얼굴을 간지른다, 웃음난다. 같은 지점에서 왼쪽으로 끌려가듯 자꾸만 기울다가 계속 넘어지기에 왜 그러나 했더니 어제 넘어졌던 곳이다. 내가 (긁히고 찍히면서) 분질러놓은 장미그루가 손짓이나 하는 듯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아하, 이런 게 무의식이구나 싶어 거듭 놀란다. 이론보다 몇 배 간단명료하고 현실감 있게 무의식의 의미를 깨우친다. 장미야, 내일은 네 쪽으로 안 갈걸? 자기인식을 제대로 하는 순간부터 부지불식간에 내재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지롱.

그런데 너무 아프다, 촛대뼈. 저린 통증이 가시자 물땀 줄줄. 장기간 지속되어 온 양쪽 옆구리의 냉기가 없어졌음을 문득 발견하다. 지화자! 내일 비온다니 자전거 못탈까 걱정.


(4) 10월 3일: 새벽에 천둥번개 요란, 빗줄기 장하다. 10시에 수건 들고 뛰어나가다. 200미터쯤 달리다, 테니스코트 몇 바퀴 돌다. 편안하게 등뼈 따라 꼬리뼈에 무게를 내려놓고 절로 가는구나 싶은 어느 순간 급히 핸들이 휘며 제어불가, 둥근 기둥에 또 촛대뼈를 깠다. 겨우겨우 일어났지만 못 걷겠네. 어쩌나. 지금이야말로 남의 힘이 필요한 순간인데! 번쩍 자전거에 올라탔다. 오옷, 몹시 아팠지만 동력을 얻었다. 굴러간다. 남의 힘을 빌릴 힘을 스스로 일으켰다, 랄랄라~ 급피로감, 졸음.

오후, 자전거가 자꾸 장미덤불 쪽으로 간다. 그쪽을 피하려 할수록 오른쪽으로 과하게 기울어 경계석에 부딪친다. 자전거 두 대가 지날 넓이인데도 가운데로 달릴 수 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나도 모르게 향하고 기울고 자빠진다. 이놈! 분명히 자각하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면 오래가지 않는다! 맞장뜨기다. 심각한 상황일수록 거듭 직면하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트라우마의 작동법. 감당하기 어려웠던 외부 힘의 강렬함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그 고통이 주는 쾌감을 다시 맛보려 한다. 죽을 곳으로 다시 간다. 남탓하며 끌려가 엎어지기, 책임지기와 홀로서기의 어려움. 힘들어, 그만 할래. 에너지 제로 상태의 평화, 무기물로 돌아가고 싶은 유기체의 원망願望.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죽음충동이다.


(5) 10월 4일: 나가고 싶다, 잘 타고 싶다, 자전거여행 하고 싶다. 일 년 가까이 하고 싶은 일이 없었는데! 아파도 재밌다, 할 거야. 투지? 평생 나랑 관련 있다고 생각한 적 없는 단어 투지! 넘어지지 않고 달린다 싶으면 어느 순간 무너진다. 그러나 장미덤불로 가지도 않고 별로 의식하지도 않는다. 차도와 나란히 가는 자전거도로는 무섭다. 여전히 넘어지고 아프고 억울하다. 그리고 너무 재밌다. 은은한 두통, 몸살. 안 아픈 데가 없다. 단순하고 작은 변화, 적응, 선택과 생존. 비로소 내가 나를 빤히 알면서 내 몸으로 사는 것 같다. 이불 두 장 덮고 뜨겁게 자다.


(6) 10월 5일: 햇빛이 노래하고 바람은 춤춘다. 부드러운 온기가 녹색 사이로 살금살금, 노랑 주황과 함께 흐른다. 봄을 만들고는 배경으로 물러났던 연두색이 새로이 드러난다. 초록 안으로 숨었던 연두가 어느새 갈색과 어울리고 있다. 새로운 하늘에 구름도 날렵하다. 오늘은 넘어지지 않고 꽤 오래 탈 수 있었다. 20도 정도의 비탈길은 속도가 무서워 곧 중단했으니 아깝다 흥, 공짜로 가는 건데.


(7) 10월 6일: 20여분을 흔들흔들 잘 탔지만 대로 근처에 가면 절로 넘어진다. 경사로나 굴곡이 잦은 곳은 끌고 간다. 타기보다 걷기. 걸어도 좋고 타도 좋고. 흔들리는 잎새들 틈으로 기우는 햇살이 참 곱고 맑다. 이 거대한 도시를 그려낸 마음들과 차곡차곡 만들어 낸 손, 손들께 감탄과 감사를. 가슴 벅차게 고마운 삶.


(8) 10월 7일: 마음이 급하다, 빨리 나가고 싶다. 일주일 결제만료, 다시 일주일치 결제시도, 실패 계속. 막막한 순간 2500원 결재한다는 알림이 뜬다. 뭘 건드린 거지? 어쨌든 빌렸고 탔다. 안정감이랄 게 느껴진다. 대로변 자전거도로에서 짧게 계속 타다 내리기를 반복. 부단히 죄어오던 어떤 압력에서 놓여났다고 해도 좋다. 풀림과 고요. 단순함과 명료함을 얻는 순간, 내가 숨을 멈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아~~


(9) 10월 8일: 아파트 외곽으로 돌다. 사람이 나타나면 미리 흔들리고 비켜가지 못할까 걱정. 어린이를 발견하면 내가 미리 넘어져버린다. 에고, 종아리 땡땡 아파 죽겠다.


(10) 10월 9일: 종일 쉼 없는 비. 자전거 못탔다! 그러나 비도 멋졌다. 성미와 함께 점심 먹고 찾은 카페 아래로 자전거도로가 있다. 한 사람이 여유있게 스르릉 타고 간다. “공주로 이어지는 길인가 봐.” 근처에 있던 아저씨 왈, “군산까지 가요. 한 쪽으로는 청주까지 이어지고.” 가고 싶다, 카페에서 쉬어가면서.


(11) 10월 10일: 흐리다가 장대 같은 여우비 몇 번, 드디어 해가 챙챙. 얼른 나갔더니 나가자마자 비. 축구장을 돌면서 몇 분 동안 젖다. 힘찬 바람이 휘리릭~ 하더니 마치 눈송이가 실려올 듯 써늘~, 갈등하는 순간 쨍그랑, 햇살 따끈. 여기저기 통증을 부수며 신나게 달림, 뻘뻘 땀. 엉덩이뼈가 너무 아프다. 이제 드디어 자전거 탓을 할 때가 되었다. 차체가 흔들리고 안장도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 결코 왕초보의 연습용이 아니었다.


5

매일 50분 정도 흔들리면서도 잘 타고 있다. 편안히 올라앉고 사르르 멈출 때가 많다. 비틀비틀 오르락내리락 안 가본 길로 계속 달린다. 차도와도 친해지는 중. 즐거워라~. 애들처럼 자전거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볼 날이 곧 올 거다(불법이라도). 이제 사람도 천천히 비껴갈 수 있다.

오늘 비교적 좁은 길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잘 정지는 했으나 너무 그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고 다시 타려는데 등 뒤로 말이 날아왔다. “안장을 좀 낮춰드릴까요?” “조금씩 올리면서 연습중이예요. 고마워요.” 서로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한 수 가르치려는 남자,가 아니라 도와주려는 사람,의 태도여서 좋았다.


찬란한 가을빛을 타고 나는

자전거 놀이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