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태규 Apr 15. 2024

<서평> 일본 상공을 배회하는 전쟁 기운

<새로운 전전>, 우치다 다쓰루, 시라이 사토시, 일본 지성

갑진년 새해(2024년)가 밝은 지 100일이 훨씬 지났건만, 세계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밝은 곳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이어지고 있고, 중동에서는 이-팔 전쟁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로 중동 전역이 쿨렁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대만, 한반도에서 긴장의 파도가 너울거리고 있다.


물리적 대결이나 충돌만이 아니다. 지구 차원에서 기후 위기, 인구 폭발, 인공지능의 폭주와 함께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위기와 위험이 해결 방안 마련 없이 방치되고 있다. 코로나19 전염병은 한 풀 꺾였지만 언제 이를 능가하는 역병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위험 요소는 셀 수 없이 많은데 어느 하나도 제대도 관리되거나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구체제는  붕괴되고 있는데 이를 대체할 새 체제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위기라고 정의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새로운 전전(戰前)>(아사히신서, 우치다 다쓰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2023년 8월)은 일본이 처해 있는 총체적 위기를 다룬 책이다. 우치다, 시라이 두 저자는 일본에서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지식인이다. 우치다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발언을 하면서 '지의 거장'으로 불리는 74살의 사상가이고, 시라이 교토세이카대학 교수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상을 전공한 47살의 젊은 정치학자다. 두 사람의 저서는 한국에도 많이 번역 출판돼 있으니, 그들의 생각과 주장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그들의 책을 구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2023년 연말에 일본의 지인으로부터 받았다. 다루는 주제가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연말연시 분위기에 맞아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정치·경제·사회 등 많은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읽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니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가 일본 것인지 한국 것인지 착각할 때도 많았다.


'새로운 전전'이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 책은 마치 전쟁을 앞둔 것 같은 불길한 상황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전전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2차대전 전야를 말할 때 쓰는 용어다. 지금이 바로 그때와 비슷하다는 암시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대대적인 군비 확장과 적 기지 공격 능력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염두에 둔 채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본다. 일본의 주체적인 의사라기보다 미국의, 그것도 미국 군부의 뜻에 따라 착착 이뤄지는 행동 태세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미일 안보조약이 일본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 전후 일본 체제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4월 10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의 내용을 보면, 이들이 도사처럼 미리부터 몇 수 앞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경우 미국이 직접 대응하지 않고 일본에 대리전을 시킬 가능성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미국은 직접 참여하거나 일본에 대응을 맡기며 간접 참여하는 복수의 선택지가 있는데, 일본에서 미군 기지를 빼내느냐가 그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즉, 미국이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를 괌 등으로 옮기면 미-중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미국이 후원하는 중일전쟁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고, 옮기지 않으면 미-중 직접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이 미국의 압력을 받으며 중국과 대결하는 '전쟁 가능 국가'로 대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일본으로선 이를 가급적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우치다는 미-중 전쟁과 미군 철수 가능성을 논하면서 윤석열 정권이 역사 갈등에서 일본에 대폭 양보한 것을, 미군 철수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독특하게 해석한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를 화해의 방향으로 틀고 한일관계 회복에 의욕적인 것은, 미국이 몰락하고 중국이 진출하는 지금의 서태평양 정세에서는 일본과 손을 잡고 공동방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국방상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반발하는 국내 여론을 누르면서 일본에 접근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하나의 해석일 수 있겠지만, 과연 윤 정권이 그런 심모원려에서 대일 접근정책을 취했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런 정교한 전략은 아주 실용적인 자세와 치밀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데, 윤 정권의 행태는 그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본 정치를 논하면서, 세습 의원과 '가속주의(accelerationism)'의 문제를 꺼냈다. 세습 의원은 정책에 관심이 없고 당선에만 관심을 갖는 풍토를 강화하면서 일본 정치를 열화하고 있는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 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하는 소선구제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가속주의라는 개념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가속주의란, 예를 들어 말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해 연장시키기보다 오히려 폭주시켜 몰락을 가속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외부로 몰아내는 것 같은 사상을 가리킨다. 우치다는 일본에서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극우 정치세력 유신회가 일본 정치에서 약진하는 현상을 가속주의로 설명한다. 그는 유신회가 코로나 대책도 잘못하고 엑스포 준비도 엉망이고 경제에서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도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더욱 더 성과주의, 부익부 빈익빈 사회를 만듦으로써 이익을 볼 사람은 확실히 이익 보고 손해를 볼 사람은 확실히 손해를 보게 하자는 가속주의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속주의라는 점에서는 한국도 일본에 못지않다면서, 수도권의 인구 집중과 인구의 급속한 감소, 입시와 취직 지옥, 빈부 격차의 심화, 자살 급증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가속주의를 처음 본격적으로 도입한 정치가가 하시모토 도루라면서 그는 '다수결의 원칙'을 마치 유권자 전원이 그들이 내건 정책을 승인한 것으로  간주하며 폭주를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0.7% 차의 승리를 100% 지지로 착각하며 독재적인 정치를 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겹쳤다.


이들은 일본이 당면하고 있는 신문·방송의  역할 부재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디어의 역할은 세상의 움직임을 숙지하고 분석하는 것이 본업인데 방송과 신문이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전혀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한국의 언론 상황을 꼬집는 것 같았다. 특히, 시라이 교수는 대만 위기든 우크라이나 전쟁이든 상대의 생각이나 전략을 전혀 알려고도 취재하려고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한쪽의 생각만 전하며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방위 전문가 인터뷰를 할 때 일본의 미래 전망이나 세계 전망을 묻는데, 이것은 그들이 답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사 전문가의 목소리만 크게 울려 퍼지게 하면서 상황을 왜곡시킨다는 얘기다. 한국의 기자들도 꼭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부러움도 느꼈다. 한 세대의 나이 차가 나는 지식인이 대등한 위치에서 일본이 당면한 주요 문제를 논하며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이런 얘기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서로 출판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은 권위주의적인 지식 풍토도 문제지만 윤석열 정권 들어 '출판의 죽음'이라고 불릴 만큼 출판문화가 궤멸 상태에 몰렸다. 출판의 죽음은 곧 지식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한국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재명 대표 살인 미수범의 끔찍한 '변명문' 전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