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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코로나 펜데믹'에서 인문학의 역할

<아테네 펜데믹>

'코로나 19'가 2년 가까이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다. 이런 강적을 퇴치하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과 사회를 치유하는 데 인문학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도움을 준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깊은 생각 없이 답을 하자면, '할 게 별로 없다'가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도 코로나 펜데믹의 치유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책이 2020년 12월에 출판됐다. 바로 그리스 고전문헌학 전공자인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소 부교수가 쓴 <아테네 펜데믹>(이른비, 13,000원)이다.


 안 교수는 코로나 펜데믹이 '자연 질병'이면서 '사회 질병'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자연과학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 등을 통해 자연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면, 인문학은 사회 질병을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역병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총체적으로 해체하고 파괴하는 측면이 있는데, 역병과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그리스 고전의 탐구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역병에 대처했고 역병 이후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지금의 코로나 펜데믹을 대처하는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고전 탐구를 위해 소환한 책은 투키디데스(기원전 545~399)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소포클레스(기원전 497~406)의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5~406)의 <미친 헤라클레스>, 플라톤(기원전 427~348)의 <국가>,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의 <일리아스>다.


 그는 이들 고전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점검해 나간다. <펠레폰네소스전쟁사>에서는 역병이 확산하면서 개인, 가족, 신전, 국가공동체게 깡끄리 해체되는 상황을 살펴본다. 역병이 단지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명사적 전환의 계기가 된다는 점을, 이를 통해 보여준다. 실제로, 기원후 169년의 '안토니우스 역병'은 그리스도교가 확산하는 계기가 됐고,기원후 541년의 '유스티아누스 역병'은 비잔티움 제국의 쇠퇴와 이슬람 세력의 흥기를 불러왔다.


 두 번째 고전 여행인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역병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하다면 책임지는 지도자"의 자세를 찾아낸다.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신이 역병의 원인임이 밝혀지자, 스스로 눈을 찌르고 추방을 선택했다.이것은 "역병의 관점에서 당시 아테네 시민들이 바라던 지도자" 상이었다고, 안 교수는 설명한다.


 세 번째 <미친 헤라클레스>에서는 역병을 대하는 지도자 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탐색한다. 헤라클레스가 외부의 적과 하는 전쟁에서는 증오를 무기로 큰 성과를 올린다. 하지만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증오가 광기로 변하면서 오히려 사회를 파괴한다. 즉, 역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애친증적인 정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네 번째 <국가>에서 플라톤은 "친구를 사랑하고 적을 미워하라"는 배제주의 정의관과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현실추수주의의 기존 가치가 역병과 전쟁으로 붕괴한 아테네를 재건하는 데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한다. 그리고 기존 정의관을 대체할  새로운 정의관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플라톤은 인간 본성과, 개인간 또는 개인과 사회간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통해 두 개의 기존 가치를 없애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 한다. 그리고 좋은 국가를 만들려면 좋은 시민이 필요하고 좋은 시민을 길러내려면 교육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안 교수가 살펴본 고전은 <일리아스>다. 그런데 저술 시대 순으로 보면, <일리아스>가 가장 먼저다. 이제까지 시간 순서에 따른 고전 여행이 갑자기 마지막에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왜 이런 도치가 일어났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이런 도치가 결국 펜데믹 극복과 치유의 답은 '사람'에 달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가장 사랑 사람인 파트로클로스를 전쟁에서 잃은 아킬레우스는 적인 헥토로에게 복수를 한 뒤, 헥토로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와 가장 사랑하는 자를 잃은 사람끼리 화해한다. 안 교수는 이것을 "가장 비참한 처지의 존재이기에 서로 화해할 수 있다"는 호메로스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나가는 말'에서, 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 사태는 모든 인간이 벌거벗은 존재이고, 서로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점을 깨닫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하나이고, 본성적으로 서로 친구이며 또 친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쩌면 21세기의 스핑크스인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리라."(174페이지) 


 이 책은 170여 페이지의 아주 얇은 책이지만,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매우 묵중하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인문학의 존재 의의'를 발견했다고 하면 좀 과장된 것일까. 안재원 교수를 포함한 한국 인문학자들의 계속적인 분투와 성취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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