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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한국 생태주의와 환경주의의 선구자

<녹색평론선집>에 푹 빠지다

지금 세계가 위기다. 전쟁이 나서 사람이 죽는 위기가 아니고, 생태가 파괴되고 환경이 교란되면서 사람뿐 아니라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절멸의 위기에 있다. 2년 전부터 세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19가 그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독한 바이러스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이 자연을 구석구석까지 파헤쳐 개발하지 않고 친환경, 친자연적인 생활을 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금처럼 창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일부 학자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질대인 신생대 제4기 완신세에서 새로운 지층대를  떼어내어, '인신세' 또는 '인류세'라는 이름의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겠는가. 그만큼 인류가 화석연료와 핵 등을 남용함으로써 지구의 지질층까지 바뀌게 됐다는 문제의식이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사이토 고헤이(오사카시립대 대학원 경제연구과 준교수)는 <인신세의 자본론>(집영사)이란 책에서 마르크스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한 것에 빗대어, 유엔이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를 아편이라고 규탄해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지속가능한 발전목표가 오히려 빈사 직전에 있는 지구를 마치 인류의 노력으로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안으로 '윤택한 탈성장경제'로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한계가 있는 자연을 무한히 착취하면서 성장만 추구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이다. 


   이런 탈성장과 공유를 중심으로 한 문제제기는 코로나의 창궐을 계기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주장을 선구적으로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대학교수를 때려치고 생태, 환경 문제 중심의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하고 이끌어온 고 김종철 교수(1947~2020)다. 고도경제 성장주의에 이런 문제의식이 매우 희미했던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1991년에 생태, 환경을 중시하는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잡지 발행 등을 통해 이런 생각을 확산하는 데 온 생을 바쳤으니, 확실히 선각자이고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이전에 김종철 교수가 쓰는 칼럼도 읽고 때때로 <녹색평론>을 봤지만,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상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삶 자체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김종철 교수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귀국해 격리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을 이용해, <녹색평론선집> 1, 2, 3권을 주문해 읽었다. 이 책은 녹색평론이 그동안 발행한 잡지의 글 중에서 편집인인 김 교수가 골라서 편집한 것이다. 짐작하건대 이 잡지에 나온 글 중에서 그래도 꼭 읽어봤으면 하는 글을 나처럼 게으른 사람들에게 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창간호(1991년 11월~12월호)부터 제46호(1999년 5~6월호)까지의 잡지에 나온 글만 골라 3권으로 펴냈다. 검색을 해보니, 현재 <녹색평론>은 제180호(2021년 9~10월호)까지 발행되어 있다. 1권은 창간호부터 제6호(1992년 9~10월호), 2권은 제7호(1992년 11~12월호)부터 제26호(1996년 1~2월호), 3권은 제27호(1996년 3~4월호)에서 제46호까지에서 고른 글을 모았다. 20년 전에 선집 발간이 멈춰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환경과 생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이 늘어 굳이 선집을 발간할 필요가 없어졌거나, 또는 선집을 낼 만한 사정이 여의치 않았을까 짐작한다. 생태와 한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늘어 선집 발간 필요성이 없어졌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최근의 부동산, 증권 열기에서 보듯 우리네 생활방식이 성장지상주의에서 그리 바뀐 것 같지 않아 맘이 불편하다.


 나는 세 권을 책이 30년 전 또는 20년 전에 쓰여진 글로 되어 있지만, 전혀 글의 내용과 주장이 시대에 뒤지거나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그  글들이 우리의 일상보다 앞서 있다고 본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들었다.


 김 교수는 <선집 1>의 '책 머리에' 글에서"지금은 엄청난 생명파괴의 문명이 비인간화와 구조화,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생명파괴의 문명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 추세가 시급히 꺾여지지 않으면 결국은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이 조만간 엄청난 재앙에 직면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 "경쟁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우리의 사회적 삶뿐 아니라 생명공동체 전체 속에서 확보하고, 넓혀가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고 말했다. 아마 이 주장이 선집뿐 아니라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는 <녹색평론>을 관통하는 흐름이자 정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최근 한국의 정치판, 또는 언론판에서 사용되는 말의 허접함에 너무 실망해서 그런지, <선집 1>의 <자연과 리얼리즘>(구중서)에서 나온 대목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체코의 극작가로서 대통령이 되기도 한 바쓸라프 하벨은 '말'의 위력을 믿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에 그는 '말에 관한 말'이란 제목으로 연설을 하였다. 그는 "몇 마디의 말이 10개 사단의 병력보다도 더 강력하다"고 하였다." 이른바 말과 글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경청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또 선집에 나온 글 전체가 마치 영양실조 상태에서 맞는 영양주사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한 환경폐해의 심각성,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모두 기술성장주의를 기본으로 하기는 한가지라는 인식, 환경보전을 위한 순환농업의 중요성 등등, 이 선집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위기의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많이 빨리 이런 주장에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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