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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Oct 01. 2021

'20세기 인문학 흐름 한눈에

<비판 인문학 100년사>

영국의 저명한 마르크시스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1917~2012)은 장기 19세기를 다룬 시대 3부작, 즉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로 유명하다.  그를 저명한 역사학자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한 출세작이다.


 그는 1914년 제1차 대전 발발부터 소련이 붕괴된 1991년까지의 단기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명명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다시 세 시기로 세분해, 제1차세계대전 발발(1917)부터  제2차세계대전 종전까지를 '파국의 시대', 전쟁 뒤 경제 부흥의 시기인 1945년에서 오일쇼크가 일어난 1973년까지를 '부흥의 시대', 1973년부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균형이 깨지고 공산체제가 붕괴한 1991년까지를 '산사태의 시기'로 불렀다. 그야말로 20세기는 두 번의 세계대전부터 공전의 경제 부흥, 그리고 세계를 양분했던 세력의 하나인 공산체제의 붕괴까지 인류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험을 한 극단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홈스봄과 시기 구분은 좀 다르지만, 1900년부터 2000년까지 20세기 100년의 역사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살펴본 책이 나왔다. 2008년부터 프랑스의 월간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을 발행해온 성일권 발행인 겸 편집인이 쓴 <비판 인문학 100년사>(르몽드+, 2020년, 16,000원)다. 성 발행인이 2016년 2월부터 12월까지 한국판에 기고한 글을 묶고 보완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11개월치의 기고를 토대로 해 엮었기 때문인지, 기고했을 때처럼 시기를 10년 단위로 끊어 서술하고 있다. 이런 탓에 시대 구분이 작위적인 면이 있으나, 오히려 그 시대 구분이 세밀해지면서 그 시대의 단면을 더욱 선명하게  살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매 장마다 맨 앞에 '시대배경' 란을 두어 10년 동안 일어난 국제환경과 정치, 경제, 문화의 변화를 요약해 설명하고 있다. 또 독자가 궁금해할 대목이나 주요 내용을  가급적 많이 칼럼으로 처리한 친절한 배려도 눈에 띈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20세기 100년의 변화를 인문학의 틀을 통해 통시적으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 시대에 그런 학문이 나타났는지를, 오랜 기간 저널리스트로서 단련된 필치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 30년대 독일 나치의 집권과 함께 미국과 영국 등으로 떠난 유대인 학자들이 다방면에 걸친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든지, 80년대 들어 오일쇼크 이후 효용성을 상실한 케인즈주의를 대신해 신자유주의가 주도권을 잡아가는 모습 등이 잘 그려져 있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지식과 상식이 크게 늘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학자들의 이름이 장마다 종회무진으로 튀어나온다. 때문에 "내가 이 정도로 무식한가"하고 분발심을 갖게 하는 면도 있다. 물론 100년을 한 권의 책에 담는 한계 때문인지, 시대의 획을 긋는 학자와 그렇지 않은 학자 사이의 서술이 질과 양에서 평준화돼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는 2000년대 이후를 다룬 마지막 장(11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테크놀로지 패권이 격화하는 속에서 우리나라는 예기치 않은 여러 도전을 맞고 있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패러다임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인문학 100년사를 정리하는 데 프랑스 등 적지 않은 국내외 도서와 매거진, 학술지 등을 참고했으나, 현대 인문학사에 치중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서양 인문학사 중심의 글이 되고 말았다"고 한계를 밝혔다. '동양까지 아우르는 온전한 인문학사'를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독서목록을 스스로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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