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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Nov 11. 2021

가족사진을 통해 보는 재일 소수자 여성의 삶

<보통이 아닌 날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 여성들은 이중의 차별을 받는다.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마이노리티)인 재일동포로서 차별을 받고, 또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는다. 이를 이중 차별, 복합 차별이라고도 부른다.


 일본 사회에는 재일동포 외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다양한 소수자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백정'에 해당하는 비차별부락민, 아이누족, 오키나와 사람, 기타 동남아 출신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들에 속한 여성들도 재일동포 여성들 못지 않게 이중 차별, 복합 차별 속에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 일본 내 소수자 여성들이 가족사진을 통해 그들을 옥죄고 있는 팍팍한 삶을 서로 털어놓고 얘기하며 차별구조를 바꿔나가는 힘을 만들어 가자는 움직임이, 2000년대 초부터 재일동포 여성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런 기록을 담은 책이 <보통이 아닌 날들>(사계절, 2019년, `미리내 엮음)이다. 2016년 일본에서 출판된 <가족사진을 둘러싼 우리들의 역사>(오차노미즈쇼보)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을 엮은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재일동포 여성들이, 함께 모여 행동하는 일이 은하수처럼 빛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단체의 이름이다. 1991년에 결성된 '종군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 이 단체가 중심이 되어 2001년 처음 캐나다 밴쿠버에서 <'자이니치' 가족 사진전>을 연 것이 계기가 되어 다른 일본 내 소수자 여성들도 참여하게 되고, 이런 얘기를 모아 책까지 출판하게 됐다.


 이 책에서 재일동포 여성 8명, 피차별부락 여성 8명,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 6명 등 모두 22명이 가족사진을 매개로 자신의 얘기, 가족의 얘기를 하고 있다. 연령은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다. 


 글의 형식은 가족사진 한 장을 글 앞에 제시한 뒤 사진을 설명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사진 얘기를 넘어 그 배후에 있는 가족사, 소수민족사 속으로 들어간다. 소수자라고 모두 같은 처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한글판에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조경희(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의 말처럼, 읽다 보면 소수자의 특성에 따라 '이질적인 냄새'가 풍긴다. "재일조선인들의 사진에서는 김치나 참기름 냄새가, 피차별부락 출신자들의 사진에서는 소고기나 가죽냄새"가 난다. 소수자라고 다 같은 처지일 것 같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그 가족 이야기는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울퉁불퉁"하다. 차별이라는 큰 틀에서는 같지만, 처한 상황은 제 각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해소하는 운동도 "같이, 그리고 따로'의 조합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 즉 글쓰기와 말하기가 '치유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매개로 이야기하면서(글을 쓰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주변에 가졌던 편견이나 증오를 떨쳐냈다거나 자신의 삶을 구조적으로 보는 눈을 얻게 됐음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각성된 의식은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책을 만드는 데 주역 노릇을 한 사람들이 재일동포 여성이라는 점에 더 주목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본에서 '소수자의 다수자'라고 할 수 있는 재일동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기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는 일본 사회에서 가장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온 대표적인 소수자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픔도 컸지만,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강했다. 이런 과정에서 단련된 정신과 성과를 다른 소수자에게 나눠주는 것이야말로 재일동포 존재의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책을 만나니 매우 기뻤다.


 특히, 이 책을 펴내는 데 가장 큰 힘을 썼던 황보강자씨와 이 책에 등장하는 양천하자씨는 오사카지역에서 민족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다. 민족교육과관련한 일로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애기가 담긴 이 책에 더욱 정감이 갔다. 한글 책도 어느 날 황보강자 선생님한테 직접 받았다. 이번에 귀국해 다시 책을 읽어 보니, 오사카와 인연이 있는 인물들이 두 사람 이외에도 꽤 있었다. 이 책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소수자 여성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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