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지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은 마음 사이.
그 거리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더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
엄마와 마트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두리안을 고르려던 내게 엄마가 말했다.
“그건 비싸. 딸기나 사. 냄새도 지독하고….”
“그냥 사. 이 정도는 먹고살아도 돼.”
“아껴. 어차피 과일은 다 똑같아.”
기어이 엄마는 두리안을 내려놓고 딸기를 집었다.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장바구니를 밀었다.
차 안에서 괜히 눈이 시큰해졌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항상 나쁘진 않다.
어떤 날은 괜찮다.
함께 장을 보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엄마가 웃을 때면 나도 웃는다.
그런데 어떤 날은 다르다.
작은 말 한마디에 마음이 얼어붙는다.
어느새 말이 줄고, 어깨가 굳고,
내 마음은 시베리아가 된다.
그땐 익숙한 말로 자리를 도망친다.
“엄마, 나 일 있던 거 깜빡했네. 먼저 갈게요.”
한때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도 왜 이렇게 피곤한지.'
'엄마인데, 왜 자꾸 숨이 막히는 건지.'
지금은 안다.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내가 덜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사이엔,
그저 ‘안전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는 긴 시간 함께하지 않기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로 했다.
상담실에서 만난 정현 씨도 그랬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함께 있으면 좋은데 시간이 늘어날수록 피곤해진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꾸 눈치를 보고,
기분을 맞추려 애쓰다
자기감정이 지쳐버리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남편과 더 잘 지내게 됐어요.
내 감정이 숨 쉴 수 있으니까,
그제야 진짜 대화가 되더라고요.”
지선 씨는 중학생 딸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요즘엔 무슨 말을 해도 딸이 문을 ‘쾅’ 닫아요.”
처음엔 지선 씨도 어떻게든 문을 열어 대화를 더 시도했다.
조언하고, 다정하게 말 걸고, 함께 뭔가를 하려 했다.
하지만 갈수록 딸은 더 멀어졌다.
결국 지선 씨는
딸 옆에 가만히 머무는 연습을 시작했다.
말을 건네지 않고,
그저 하루에 10분 조용히 곁에 있어 보기
며칠 뒤, 딸이 말했다.
“요즘 엄마 좀 달라졌어. 근데… 지금 엄마가 더 좋아.”
그녀는 그날,
‘우리가 다시 괜찮아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사랑은 가까이 있어야 유지되고,
말을 많이 해야 진심이 닿는다고.
하지만
때로는 거리가, 사랑을 더 오래 숨 쉬게 한다.
안전거리는 회피가 아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한,
꼭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인데,
말수가 줄고,
숨이 막히고,
먼저 자리를 털고 나가고 싶었던 날.
그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마음이,
너무 오래 참아왔기 때문에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호예요.
가끔은 거리를 두는 용기가
관계를 더 끈끈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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