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랑받고 싶은데 벗어나고도 싶어

1부. 그림자 안에 사는 나를 만나다

by 한아름

오늘도 나는 엄마 집 문 앞에서 망설인다. 보고 싶고 궁금하기도 한데 피곤하고 힘들 것 같기도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오래 함께 있고 싶지는 않다.

보고 싶다가도 몇 시간만 함께 있으면 몸부터 먼저 피로해진다.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어느 순간부터 입이 마르고 어깨가 뻣뻣해진다.

말은 목구멍에서 맴돌다, 다시 안으로 사라진다.

할 말은 많았는데,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음이 먼저 검열한다.

“이건 지금 꺼내면 안 돼.”

“괜히 말 꺼냈다가 분위기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그 순간,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을 꾹 누르고 그냥 웃는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랬듯이.


그때, 엄마는 늘 바빴고, 피곤했고, 예민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차분히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붙이면

“지금은 좀 조용히 해”

“나중에 얘기하자”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점점 타이밍을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중엔, 그냥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괜찮은 아이’처럼 행동하는 게 사랑받는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니, 그게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상담을 공부하기 전까진,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으니까




소영 씨도 그랬다.

그녀는 결혼을 꿈꾸지만, 동시에 포기하려 한다.

“처음엔 좋아요. 그런데 감정 표현이 어려워요. 상대가 표현해주지 않으면 점점 멀어져요. 근데 또, 상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갑자기 불편해지고 밀어내요.”


메시지를 주고받고, 함께 밥을 먹는 일상은 좋다.

하지만 조금만 가까워지면 마음이 작아지고 경계심이 앞선다.

그가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소영 씨는 “응, 그래.” 짧게, 건조하게 대답한다.


"그 마음이 변하면 어떡해요. 진심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상대가 다정하게 다가올수록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한다.

‘이 사람이 실망하면 어쩌지?’ ‘내가 이런 대우받을 만한 사람일까?’

그런 생각이 시작되면, 메시지 회신은 늦어지고, 말수는 줄고,

어느 순간, 소영 씨가 먼저 멀어진다.


'그럴 줄 알았어. 사람은 믿으면 안 돼.'

그리고 그녀는 본인이 먼저 연락을 끊는다.


그 모습은 친구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모임 속에서, 소영 씨는 문득, 자신이 말이 줄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머릿속에는

“요즘 좀 힘들어”라는 말이 맴도는데, 입은 그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친구가 말했다.

“너도 이야기 좀 해봐. 어떻게 지내?”

소영 씨는 웃으며 말한다. “그냥 똑같지 뭐.”


소영 씨는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답이 정해진 얘기엔 목소리를 높일 수 있지만, 자기감정이 들어간 이야기엔 입이 무거워진다.

‘내 얘기를 꺼내면 분위기를 망칠까 봐.’ 익숙한 자기 검열이 먼저 앞선다.


얼마 전 생일날도 그랬다.

단톡방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그냥 조용히 지나갔다.

‘말하면 부담 줄까 봐.’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더 서운할 테니까.’


하지만, 누구보다도 축하받고 싶었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연락은 없었다. 그날, 케이크 하나를 들고 혼자 집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역시, 아무한테도 말 안 하길 잘했어. 괜히 기대해서 실망하는 일은 없잖아.’




민서 씨도 그랬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람이 가까워지면 자꾸 귀찮아져요.”

그 귀찮음의 끝엔, 오래된 서운함이 있었다.


"초등학교 발표회 날이었어요. 엄마가 꼭 온다고 했는데, 결국 안 오셨어요. 친구들이 부모님과 사진을 찍을 때, 저는 무대 뒤에 혼자 앉아 있었어요."


그녀는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연애도, 친구 관계도 자주 불편했고 항상 거리 두기를 하게 되었다. 기대하는 마음이 없으니, 서운해서 슬프지는 않지만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외로움이 커질 때면, 그녀는 먼저 맞춰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이 시작되면,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건 민서 씨가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렇게라도 민서 씨는 자기 마음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그 순간, 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외로웠을지 알 것 같았다.




심리학자 존 볼비는 이런 양가감정을 ‘혼란 애착’이라 설명했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 사랑이 상처로 돌아올까 봐, 마음이 동시에 두 방향으로 반응하는 것.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이 무서운 기억이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사람을 더 조심스러워하게 된다.


요즘 소영 씨와 민서 씨는 ' 그때의 ‘작은 나’를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나는 외로웠어.” “나는 사랑받고 싶었어.” 지금 그 아이 옆에 조용히 앉아, 말없이 손을 잡는다.

“그때 너는 잘못한 게 아니야. 그저 기다리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야.”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지금도 말이 줄어드는 순간이 있다. 말하려다 꺼내지 못하고 웃고만 있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 안의 작은 내가 묻는다.


‘지금 말해도 괜찮을까?’

나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해준다.

“괜찮아. 말해도, 이제는 괜찮을 거야.”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가까운 사람인데, 함께 있을수록 숨이 막혔던 적.

사랑하고 싶은데, 괜히 차갑게 굴었던 순간.

밥을 먹다 말이 줄고, 손끝에 식은땀이 맺히던 기억.


떠오르나요? 그 마음은, 당신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상대에게 집중하다 보니 생긴 마음일 거예요.


이제는 당신이 먼저 그 마음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조용히 말해주세요.

“말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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