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상처받은 나와 마주하다
1부. 그림자 안에 사는 나를 만나다
가끔, 별일 아닌 상황에서 이유 없이 피곤해질 때가 있다.
가까운 사람과 식사를 하다가 말이 줄어들고, 괜히 눈이 시큰 해지고, 혼자 있고 싶어지는 날.
예전엔 그 감정을 알지 못하고 누군가 내 마음을 눈치채고 불편하냐고 물으면 아니라며 부인했던 내 마음이 있었다.
"왜 나는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데도 마음이 답답할까?"
지금은 안다.
그때, 마음 한구석엔 말없이 웅크리고 있는 ‘작은 나’가 있었다.
그 아이는 늘 참아왔고, 기대를 접어왔고, 표현을 멈춰왔다.
지금도 사람 앞에서 말수가 줄어드는 건, 아직도 그 아이가 내 안에 숨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말수가 줄어든 건 단순한 성격 탓이 아니었다.
엄마가 피곤해 보일 때마다 나는 알아서 말을 줄였고,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도 ‘지금은 안 돼’란 눈치를 먼저 살폈다.
그러다 결국, 그냥 꼭 필요한 말이거나 맞는 말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아이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이거 갖고 싶어.”
“오늘 좀 슬펐어.”
“엄마, 나 좀 안아줘.”
하지만 그 말을 꺼낼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그건 필요 없는 거야.”
“그런 걸로 왜 울어.”
“엄마 지금 바빠.”
결국 그 아이는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말하면 실망만 남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하지 말자.’
그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표현하지 않는 연습을 오래 해온 어른.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어른.
사실은 마음이 부서져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어른.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상담실에 찾아온 내담자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기대하면 상처받을까 봐 기대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다정하면, 그게 더 무서워져요.”
“사랑받고 싶은데, 가까워질수록 피하고 싶어요.”
"싫어도 웃으면서 해요."
어릴 적, 사랑이 조건적이었거나, 예측 불가능했거나,
혹은 아예 결핍되었을 때, 마음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배운다.
‘사랑받고 싶다’와 ‘사랑이 무섭다’는 감정이 동시에 작동한다.
심리학자 존 볼비는 이를 “혼란 애착”이라 불렀다.
다가가서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지만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그러다 상대가 다가오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무서워서 붙잡고 싶어지는 아픈 사랑의 모습.....
나는 상담을 통해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불편했고, 애써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아니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내가 불쌍해질까 봐 "난 사랑받았어. 난 소중해!"라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당당하게 인정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셨지만 일관성 있는 사랑을 주지 못하셨고 그것은 내가 소중하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분의 삶이 고단해서 였단을 것을"
'사랑받고 싶은 아이'와 '사랑이 무서운 그 아이'를 둘 다 인정해 주고 만나려 한다. 그 아이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내 마음에 살아왔다.
그 아이가 받고 싶었던 사랑을 이제 내가 주려고 한다.
어떤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편안하고 안전하며 일관성 있게 반응해 주는 사랑을.....
나는 가끔, 그 아이에게 말해준다.
“그때 너는 잘못한 게 아니야. 그냥 너무 오래 혼자 있었던 거야.”
“지금부터는 내가 네 곁에 있을게.”
“말해도 괜찮아. 기대해도 괜찮아. 네가 표현해도, 이젠 괜찮아.”
그림자 속에서 혼자 울던 나.
상처받을까 봐 미리 거리를 두던 나.
말하면 외면당할까 봐 침묵하던 나.
이제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 시간이다.
내 마음 안의 그림자 속에서 손을 내밀고 있는 그 아이를 향해.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한 발걸음으로.
그 아이를 외면하지 않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된다.
그림자 안에 숨어 있던 ‘나’를 만나게 된다.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혹시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날.
사랑하고 싶었지만, 가까워질수록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괜찮다고 말했지만, 돌아서서 울고 싶었던 밤.
그건 당신이 약하거나 예민해서가 아닙니다.
당신 안에도 그때의 ‘작은 나’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일 거예요.
이제는,
당신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안전하다고, 함께 있어주겠다고 해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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