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 감정의 주인은 누구인가?

2부 존중받지 못한 감정들 그림자가 되다.

by 한아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해맑은 친구는 연락새가 되어 주변 이야기를 나르곤 한다. 난 그 이야기가 때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의 없이 하는 행동인 것을 알기에 그냥 조용히 들어주고 때로는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그 친구에게만 했던 내 근황이야기가 다른 친구를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었다. 난 불편해서 그 친구에게 '서운하고 불편하다'라고 표현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왈 "뭐~ 그런 거 가지고 서운해! 다 친군데...." 난 화가 났다.


'내가 서운하고 내가 불편한데 내 감정을 왜 네가 정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난 불편하고 서운해. 그리고 내 감정은 내가 정할게!!"라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했지만 뾰족한 내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 후로 난 그 친구에게 깊은 마음속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피로감을 줄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회자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 친구 또한 조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는 말이 점점 줄어들고 나를 찾아오는 횟수도 줄어들고 있다.




“왜 울어? 울지 마”

“왜 그렇게 예민해?”

“뭐 그런 걸로 삐져.”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은 말들이다. 엄마는 바빴고 감정을 어떻게 들어줘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내가 감정을 내보일 때마다 별거 아니라는 듯 감정을 정해주고 평가 판단하곤 했다.

엄마의 그 말들은 맨홀 뚜껑처럼 내 마음을 덮었다. 난 불편하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뚜껑을 열고 맨홀로 밀어 넣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감정은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숨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서운해해~ 다 친군데!"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왜 발끈했을까? 그 근원은 어린 날, 엄마의 이야기에 "내 감정은 내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상처받은 나의 감정이 함께 드러난 것이다. 본능적으로 난 친구 눈치를 봤지만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눈물을 참아야 했던 주희 씨, 감정이 마비된 어른이 되다.

“우는 건 약한 거야.” “너 그러면 아빠 실망해.” 어릴 적 주희 씨는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다. 눈물이 날 때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고, 어쩔 수 없이 흐르면 화장실로 달려가 조용히 울어야 했다. 거울 앞에서 빨개진 눈을 닦고, 아무 일 없는 얼굴로 식탁에 나가야 했다. 그때 마음속에는 하나의 믿음이 자리 잡았다. ‘나는 슬퍼도 표현하면 안 돼.’ ‘감정은 숨겨야 사랑받는다.’


그렇게 어린 주희의 감정은 조금씩 무감각으로 굳어갔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어느 순간 진짜 감정이 뭔지도 헷갈리게 되었다.


지금의 주희 씨는 밝고 쾌활하다. “괜찮아, 나야 뭐 늘 그렇지.” 주변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긍정적인 감정은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하지만 속상함이나 서운함, 외로움 같은 감정은 느끼는 것조차 어렵다.


“사실 누군가가 우는 걸 보면 저게 정말 울 일인가 싶어요. 그러다 보면 피곤해지고 자리를 피하고 싶어 져요.” 그녀는 감정의 거리 두기가 몸에 밴 사람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어렵다.



항상 ‘착한 아이’였던 진욱 씨, 거절을 못하는 어른이 되다.

진욱 씨는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말썽 안 부리고, 참 착하네.”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동생도 잘 챙기고.”

하지만 그 칭찬은 언제나 진욱 씨의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대가였다. 친구가 숙제를 대신해 달라고 해도 “응, 그래.”, 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엄마가 하라는 걸 먼저 해야지.”

자신의 욕구보다는 타인의 기대를 우선으로 여기며 자란 그는 지금도 ‘착해야 사랑받는다’는 믿음 속에 살아간다.

지금 진욱 씨는 회사에서도 늘 ‘예스맨’이다. “이거 좀 부탁해도 될까?”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가 할게요.”라고 답한다.

몸이 지쳐도, 일이 몰려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자동처럼 나온다. 그렇게 그의 마음은 늘 후순위가 된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내가 착하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내 감정보다 타인의 기대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죠.” 그런데 지쳐서 이제 회사도 그만 다니고 싶고 숨고 싶다. 진욱 씨는 착한 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아직도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진욱 씨의 몸과 마음은 물에 젖은 솜이 되어간다.



감정은 그 사람에게는 신호였다. 다만 그 신호를 존중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리의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도, 그리고 주희 씨와 진욱 씨도 마음이 보낸 신호를 반복해서 무시당하고, 평가받고, 억압해 왔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그 순간 사랑받기 위해 그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서 우리를 지켰을 뿐인데 그 방법이 지금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럼 우리를 지키는 방법을 바꾸면 된다.


‘기분이 이상하다’는 감정은 내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화가 난다’는 감정은, 소중한 가치를 침범당했다는 마음의 외침일 수 있다. ‘슬프다’는 감정은, 기대와 바람이 있었는데 무너졌음을 증명하는 마음의 기록이다.


이처럼 감정은 ‘틀림’이 아니라 ‘신호’다. 우리가 몰랐던 건 그 감정을 들어주지 않은 어른들과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을 무시당한 채 살아온 시간은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림자를 남긴다. 그 그림자는 때로 사람을 피하게 만들고, 때로는 자신조차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감정은 문제가 아니라, 나를 알려주는 중요한 나침반이다. 그 감정의 주인은 누구도 아닌 나다.


이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무서워.’ ‘나는 지금 서운해.’ ‘나는 이해받고 싶어.’

감정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림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나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혹시 당신도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적 있나요? 말하고 싶었지만 삼켰던 순간, 울고 싶었지만 눈치 보다 이불속으로 숨었던 밤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지나친 마음들......

그 감정이 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제, 그 감정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그 마음은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저 오랫동안, 들어줄 사람을 기다려왔던 것뿐입니다.



#감정의 주인은 나 #나를 지키는 감정 #감정억압의 그림자 #감정회복에세이 #나도 그랬어 #감정은정보다 #기분이 아닌 신호 #표현하지 못한 감정 #감정을 존중받고 싶었다 #그림자 속감정들



이 글에 나오는 사례는 창작되었습니다

월, 화, 수 연재
이전 06화5화 상처받은 나와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