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서영 Oct 22. 2023

연명치료거부 신청 동의서

남순은 평소에 입버릇처럼 ‘인공호흡기 절대 달지 말거라'했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1년이고 2년이고 의미 없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다고 했다. 그 말을 평생 동안 들은 혜순은 남순에게 ‘연명치료거부 신청 동의서'를 가져갔다. 그 순간이 오면 ‘어머님께서 평소에 인공호흡기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셨어요' 따위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혜순은 모르지 않았다.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남순은 콧줄로 들어가는 영양식으로 인해 보름 만에 피부가 탱탱해지도록 살이 올라있었다. 


“아이고, 할머니 피부 너무 고으시다. 새색시 같으세요.”


마치 남순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듯 그의 눈을 쳐다보며 간병인이 말했다. 사람이 죽어갈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은 청각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보이진 않아도 들리긴 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일 자로 곧게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초점 없는 남순은 몸에 갇힌 것 같았다. 답답해 죽겠으니까 뭐라도 좀 해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일렀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고 나를 혼내고 있는 것 같았다. 건강했던 남순이 직접 사인한 동의서를 들고 담당의사를 찾아갔다.


“선생님, 이 남순 환자 연명치료 이제 안 하겠습니다.”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뭐가 옳은 지 알 수 없었지만 남순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라고 믿었다. 확고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가 늘어난 비닐 테이프처럼 엉망진창으로 떨렸다. 담당의사는 아무리 사전 동의서가 있다고 해도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 흡기 착용 같은 의학적 시술만 해당되며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는 영양식 투여를 그만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걸 원하면 집으로 모셔가야 한다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고 진료실에서 나온 후 혜순과 나는 남순의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해 공기 좋은 시골에 있는 임종 전문가를 찾았다. 콧줄과 링거에서 해방된 남순은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기분 탓인지 나를 향해 눈동자를 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 밖에 없었다. 기다린다는 표현은 이상하지만 나는 남순이 더 이상 몸에 갇혀 답답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보소. 할매, 내 말 맞쟤? 콱 죽어뿌는 것도 내가 안 쉽다 캤쟤?”


병원에서 벗어나 앰뷸런스에서 처음으로 남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차가운 남순의 손은 내가 아무리 세게 잡아도 반응이 없었다. 보름 전 남순이 들어 올린 손을 잡았다면 내 손을 꽉 맞잡아주었을까. 


5년 전 새벽마다 나한테 전화를 걸어 남순은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로 나를 괴롭게 했다.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의지할 데는 없는데 온몸은 너무 아프고, 외롭고 괴로워서 죽고 싶다고, 그래서 매일 아파트 베란다를 내려다본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 물었다. 


“확 뛰 내려 죽어뿌까.”


손녀한테 할 질문은 아니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결코 하면 안 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따, 할매요. 7층에서 뛰 내려보소. 딸깍 죽는다카면 차라리 다행이지. 죽지도 않고 괜히 혼수상태 되고 이러면 윽쑤로 곤란하데이. 한 20층에서 뛰 내림 모르까. 7층은 애매해서 이도저도 안된다카이.”


너스레로 받아쳤다. 이에는 이, 협박에는 협박 아니겠나. 남순이 제일 두려워하는 인공호흡기를 달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섣부른 행동을 막겠다는 내 최선이었다. 남순의 자살 타령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협박은 아니었다. 쓸 곳도 없는 고농축 농약을 베란다에서 발견했다고 혜순이 전한 적이 있었다.


“사는 것도 어렵지만 죽는 것도 안 쉽습니데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그게.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말고 맛있는 거나 챙겨 잡숫고 하이소. 새벽 4시다 여기. 난 좀 잘란다. 또 전화하께.”


담담하고 차분한 척 남순을 달래고 전화를 끊으면 울음이 터졌다. 남순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만에 하나 그럴까 봐 무서웠다. 캐나다에 있는 손녀에게 전화해 매일같이 죽고 싶다고, 뛰어내리겠다고 하는 할머니라니. 남순과 나는 전생에 무슨 관계였길래 이토록 복잡할까. 차라리 그냥 밉기만 하다면 증오하기만 하다면 덜 힘들 것 같았다. 남순의 새벽 전화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내가 화를 낸 후 그가 내 전화를 거부한 5년 동안 내 밤은 하루도 편한 적이 없었다. 


할매, 내가 그때 전화로 모진 말 해서 미안하데이. 속으로 용서를 구하며 치약을 묻힌 물수건으로 남순의 입 안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어째서인지 입 안에서 시커먼 오물이 묻어 나왔다. 평소 깔끔했던 성격의 남순이  답답하고 찝찝했겠다 싶었다.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을 거쳐 임종 전문가에게 오기까지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아무도 닦아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엔 병원은 너무 바쁘니까.


‘역시 손녀 밖에 없쟤? 양치질도 해주고?’


‘그래, 역시 우리 손녀 밖에 없네.’


‘아빠보다 낫쟤? 아빠가 할매 양치해 준 적은 없을 거 아이가.’


‘하모. 아들보다 손녀가 낫다.’


평생 한번쯤 듣고 싶었던 말, 빈말으로라도 듣고 싶었던 말을 듣는 상상을 했다. 내가 닦아주는 대로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는 남순의 눈을 보며 상상 속의 그 말을 나에게 지금 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이전 20화 마지막은 복병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