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19화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문득 눈이 떠졌고 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정쩡하게 삐딱하고 허연 천정이 새삼 낯설었다. 60년이 넘은 오래된 구축 하우스에 욱여넣다시피 만들어 넣은 개조된 다락방의 천정은 정수리가 닿을 것처럼 낮았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25도쯤 기울어져 있었다. 잠에서 막 깬 후 시야에 들어온 천정이 가까운 만큼 현실은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캐나다에서 산지 9년이나 됐는데 내가 캐나다에 있다는 사실이 삐뚤어진 천정처럼 낯설었다. 이젠 익숙해진 길을 걷다가도,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다가도, 3년째 아침마다 먹어온 물에 불린 귀리를 씹으면서도 문득 '아, 나 캐나다에 있구나'하고 갑작스럽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런 각성 자체가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의식과 무의식이 오 대 오 쯤 섞인 잠에서 깬 직후다.
캐나다에서는 자주 백수가 되곤 했는데 그래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자주 납치를 당했다. 마취약에 당하거나 둔기로 후두부를 맞고 의식을 잃는 영화 속 인물들의 시점처럼 느리게 열렸다 닫히는 눈꺼풀 사이로 흐릿한 장면이 들어온다. 초점이 맞춰질수록 눈앞에 펼쳐진 생경한 광경에 혼란스러워하는 납치를 당한 영화 속 주인공이 의식을 차리듯 잠에서 깼다. 그 누구도 나를 강제로 납치하지 않았고, 그 무엇도 나에게 이곳에 있으라고 강요한 적 없는데도 나는 과거의 나에게 납치를 당한 것 같고, 원초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강요당하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백수의 유일한 혜택인 한가한 아침을 맞을 때마다 '난 지금 어디?'에서 시작된 질문은 '근데 도대체 왜 난 여기서?'로 이어진다.
의식이 무의식의 비율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물음표를 해소시켜 줄 답을 찾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이불속에서 나올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왜 나는 나고 자란 내 나라에서 이 만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건지, 기껏 이 멀리까지 떠나 와 놓고 왜 이렇게 누워만 있는 건지, 명분은커녕 핑계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답을 찾아야만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날 의욕이 생길 것 같다.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면 내 나라를 구하러 왔거나, 내 인생을 구원하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한 것 같다며 신세 한탄을 할 친구라도 만들어 뒀거나, 또 그것도 아니면 혼자 로컬 바(Bar)라도 가서 하룻밤 말동무를 돈 주고 살(팁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텐더들은 최선을 다해 내 말동무가 되어줄 것이므로) 여유로운 경제력이나 행동력 있는 호방함이라도 가졌어야 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나는 내가 여기서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좀 대단한 일을 해낼 줄 알았다. 그건 마치 어른이 되면 꽤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에 가졌던 착각의 성인용 버전 같은 거였다. 그걸 깨달은 지는 꽤 됐으나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인지했다고 해서 인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인정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음을 뜻하는데 그 진실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운 걸 보니 여전히 인정하지 못했다는 뜻 같았다. 그냥 다 놓아 버리고 한국으로 갈까? 허리가 슬슬 아파온다. 허벅다리로 서늘한 면 이불을 휘감아 모로 누우며 생각한다. 되돌아간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경력이라는 것이 없어 '경력단절'이라는 말조차 허용되지 않는 처지에, 지긋지긋하도록 나이를 따지는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편의점 알바나 장사 밖에 없을 것이다. 장사라...... 온라인으로 팬티를 몇 장 팔아보겠다고 설치다 초기 투자금만 깔끔하게 말아먹은 경험이 전부인 내가 무얼 팔 수나 있을까? 사업으로 치면 손맛은 꽤 괜찮은 편이니 붕어빵 장사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아, 근데 붕어빵이 안 팔리는 여름에는 어쩌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명치가 답답하고 관자놀이 쿡쿡 쑤시기 시작한다.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찾아 유튜브를 켜고 '명상'이라고 검색한 후 가장 괜찮아 보이는 영상을 클릭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와 함께 다시 크게 숨을 내뱉습니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유튜버의 경건한 목소리 뒤에 깔리는 파도소리. 어느새 심호흡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 다 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 듯 씻기워 간다
일말의 눈부심이 가라앉고
밀물의 움직임 속에
물결도 제각기 누워 잠잔다
마음은 물결처럼 흘러만 간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살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딥디리 딥딥 디리 디리 딥
딥딥딥 디리 딥딥딥디리
딥딥디리 딥딥디리 딥
딥딥딥 디리 딥딥딥디리
딥딥디리 딥딥디리 딥
-높은 음자리 <바다에 누워>-
노래가 한 바퀴 끝나고 더 이상 이불속에 있을 이유를 찾는데 실패한 나는 노래를 한 바퀴 더 돌리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가진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이불속에 누워
해가 중천까지 떠오를 동안
버석해진 눈알을 아무리 굴려봐도
눈물도 나지 않는 안구건조증
허리가 아프면 그만 일어날 일이지
뒤집어 누웠다 모로 누웠다
생산성 1도 없는 쓸데없는 잡생각들은
끝을 모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 바닥에 누워 외로운 이민자 된다
이국의 땅 위에서 이 불안한 마음 속을 사람들은 알까
이 바닥에 누워 외로운 이방인 되어
딥디리 딥딥 디리 디리 딥
딥딥딥 디리...딥딥딥 디리...
......
흥얼거림은 어느새 열창이 되고, 결국 사레가 든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안압은 치솟고 얼굴이 벌게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다. 물컵에 물을 받으며 나의 하루는 겨우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들여 자주 고민해 보아도 내가 존재하는 곳과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지금 목으로 넘어가는 미지근한 물의 온도만큼이나 여전히 어정쩡하고 애매모호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들 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첫 잔의 물을 삼키는 일이라고 믿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도대체 왜 여기에 있든, 어쨌든 나는 '있고', 어쨌거나 물은 마셔야 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