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로보다 이유 - 사주 이야기 1

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0화

by 황서영

내가 나고 자란 대구는 대한민국에서 꽤 큰 도시에 속하지만 다른 도시들에 비해 번화가가 하나에 집중된 도시다. 강남역 일대, 홍대 앞, 명동, 신촌, 종로, 이태원...... 서울은 물론이거니와 서면, 광안리, 해운대를 가진 부산, 충장로, 상무지구, 양림동을 가진 광주와 달리 대구는 동성로,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라테' 그랬다는 것이고 지금은 수성못(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 일대가 꽤 번화해 사람들이 모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대구의 시내(다운타운)는 누가 뭐래도 동성로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시내'라고 하면 다 통했다. 내가 중학교 때 유행했던 것 중 하나가 타로점이었다. 동성로 'XX극장' 앞 3번 아줌마가 용하다느니, 4번 아줌마가 기가 막히다느니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 그날은 중간고사(혹은 기말고사였을 수도 있다)가 끝나는 날이었고 일찍 마친 기념으로 반 친구 몇 명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고 시내에 나갔다. 영화관 매표소 앞에는 알록달록한 천막이 줄지어 서 있었다. 타로점을 봐주는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천막이었다. 0.5인용 정도 되는 텐트 사이즈의 천막 입구마다 번호가 붙어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여러 개의 천막 중에서 유독 4번 천막 앞에만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영화 시각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며 친구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줄이 너무 긴 '4번 아줌마'를 아쉬운 표정으로 포기하던 친구는 때마침 사람이 나오는 2번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날 내가 뽑은 카드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얼마나 감탄을, 혹은 냉소를 했는지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기억이 완전히 잊혔다는 것은 기억한다.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사주명리학에 빠지기 전까지 말이다.


신점이니 사주팔자니 타로니 하는 것들이 널리고 널린 한국에 있을 때는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대해 공부한 적도 아는 것도 많지 않은 주제에 '그런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무시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덜 괴로워 그랬구나 싶었다. 사주팔자에 첫눈을 뜨게 된 건 캐나다에 온 지 5년쯤 됐을 때였고, 한 번 빠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캐나다와 운세학, 이 오묘한 조합이라니...... 캐나다에서 왜 갑자기 관심이 생겼냐 물으신다면, 그 이유야 뻔하지 않겠습니까요,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나란 인간은 환경에 크게 동요되지 않으나 내 안에서 기어 나온 생각에는 지나치게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나도 안다. 이런 성향은 1퍼센트의 장점과 99퍼센트의 단점으로 발현된다는 것을. 어쨌거나 한국에서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사주 이야기나 신년 운세 이야기를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내가 캐나다에서 찾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그건 바로 지푸라기를 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듯(은희경의 소설책 제목) 행복한 사람은 점술이나 운세 따위에 관심이 없는 법이다. 캐나다에 온 지 몇 년쯤 됐을 때였는데, 당시 나는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인생 최대 시련을 겪고 있었다. 기댈 곳이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내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이유였다. 정말 찾고 싶었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말해 내가 지금 이렇게 별로여야 하는 이유를...... 턱 끝까지 차오른 절망의 물속에서 겨우 손을 뻗어 손에 닿는 아무것이나 움켜쥐었다.


무기력과 불안감으로 똘똘 뭉친 내 자아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불속에서 그저 은신하라고 나에게 강요하는 와중이라 나는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성실히 좌뇌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가로로 누워만 있기가 너무 찌뿌둥 해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 폰을 들었다. '정처 없이 다닌다'는 건 가상 세계에서도 가능했다. 유튜브에 들어간 나는 평소와 다르게 말 그대로 '정처 없이' 어슬렁댔다. 평소에 즐겨 보던 재테크나 세계 경제 같은 주제의 영상들은 꼴도 보기 싫었고 외면하고 싶었다. 클릭은 하지 않고 스크롤만 내렸다 올렸다 했다. 그때 어떤 사주 유튜브가 라이브를 하는 영상이 나왔는데 나는 홀린 듯 입장했다. 댓글창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청취자가 많았다. 그 채널은 대기업을 목전에 앞둔 유튜버 계의 잘 나가는 중소기업쯤 되어 보였다. 마침 라이브에 참여한 청취자들의 사주를 짧게나마 봐주는 이벤트 중인 것 같았다. 확실히 상황 파악이 되기도 전에 나는 생년월일시와 성별을 채팅방에 던졌다. 그 행동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이나 평생 가져왔던 사주명리학에 대한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과장을 좀 보태 12번째 말하는 것 같지만 그건 내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거였기 때문이다.



수 백 명이 동시에 듣고 있던 라이브 방송에서 내 닉네임이 불린 것은 복권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실 그때만 해도 사주팔자니, 명리학이니 하는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운 좋게 내가 당첨되었다는 사실에 기쁨도 환희도 딱히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일단 큰 행운을 얻은 것이니 어떤 말이라도 들어보고 싶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웬걸, 덕분에 익사를 제대로 면했다. 그 사주 유튜버는 내 사주풀이의 포문을 이렇게 열었다. '유년기가 참 힘드셨네요'. 이름도 성도 얼굴도 신분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느 한 유튜버의 그 한 마디를 듣고 난 후 6초쯤 흘렀을까 나는 입을 틀어막고 (일방향 라이브 방송이라 굳이 틀어막을 필요도 없었지만) 엉엉 울었다. 정말 6살 아이처럼 울었다. 그리고 최근 3년 간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채 유독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말도 했다. 바넘 효과(대중적인 맥락에서, 점성술이나 운세처럼 심리적 기법이 활용될 때 모호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자신과 관련 있는 것처럼 느끼는 심리적 현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90년 대를 어린이로 살아온 사람 중에 그리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최근에 마음이 힘들었으니 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상식 수준의 유추만 할 수 있어도 쉽게 펼 칠 수 있는 일반적인 '풀이(?)'였으나 13번 째로 말하건대 나는 내가 잡은 지푸라기가 동아줄이라고 믿었다(믿고 싶었다). 그 이후에 그가 나에게 해 준 나의 대운 해석은 희망적이었다.


(사주 이야기 2,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