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1화
(사주 이야기 1편에 이어)
그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2021년이 가을 혹은 겨울쯤 되었을 것이다. 사주 유튜버가 내 유년기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악바리 쳤겠다'라고 하자마자 나는 여윳돈만 있다면 구글 주식을 백 주 아니 천 주쯤 사고 싶었다. 유튜브로 사주팔자도 보고 세상 참 좋아졌구나. 내 사주를 봐주던 유튜버도, 라이브 방송에 참여하고 있던 사람들도 내가 그 한 마디에 울어재끼는 걸 볼 수 없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느끼며 익명성에 기대 실컷 청승을 떨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나는 '청승맞아 보이는 게' 세상에서 6번째 정도로 싫은 사람이다. 나의 '악바리 친 내 유년기'를 알아주는 사람은 그때까지 세상에 없었다. 사실 알아줄 수도 없었다. 나는 무식상 팔자로 표현력이 '무'다. 표현을 안 하는, 아니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무식상이란 식신과 상관이 없는 명조를 뜻하며 창의력, 표현력, 재능, 감성, 활동성뿐 아니라 감정 자체를 표현하는 기운이 없는 팔자다. 어렸을 때 나를 길러준 할머니가 친척분들을 만날 때마다 하시던 말씀이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도 어렸을 때 어떤 본능이나 욕구(배고프다거나 아프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거나)를 따라 의사표현(발언하거나 울거나 떼쓰거나)을 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할머니가 '그런 것(?)'으로라도 손주 자랑을 하기 위해 딱히 부풀려 말씀하신 건 아닌 것 같았다. 날카로운 주사 바늘이 팔뚝을 관통해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울지 않았던 아이는 자라서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어른이 되었다. 어렸을 때야 보채지 않고 잘 울지도 않는 성격이 기특함과 의젓함으로 포장될 수 있었으나 성인에게 큰 매리트가 되지 못했다.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게 정상이었고 갖고 싶음 게 생겨도 바닥에 드러눕지 않는 게 당연하니 그저 표현력이 부족하고 말수가 없어 속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어른이 되었을 뿐이었다.
무식상 외에 또 다른 내 사주의 큰 특징은 현침살과 화개살이 많다는 점이다. 현침살은 '매달린 바늘'이라는 뜻으로 날카로운 성향을 뜻한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며 무엇보다 예민하고 언행이 날카롭다. 글자 그대로 혓바닥에 침을 꽂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화개살은 '화려한 덮개'라는 뜻으로 스스로 나를 바깥세상과 차단하고 숨으려 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나는 이 두 가지 신살에 대한 해석을 읽고 나서 수 십 년 동안 혼자 고민했던 것이 한 번에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사주풀이는 내 취미가 되었다. 나는 다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평생 들어온 말은 '너는 상처되는 말을 너무 많이 해', '넌 왜 자꾸 도망가는 거야?'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되려 화를 냈다. 내가 언제 말을 세게 했다고 그래.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나는 도망간 적 없어. 날 겁쟁이로 매도하지 마. 내가 얼마나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엄마도 내 말투가 너무 강하고 날카롭다고 했을 정도니 사주를 공부하고 현침살의 존재를 알기 전에도, '내가 정말 말을 모질게 하나?'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되돌아보긴 했다. 현침살은 그렇다 쳐도 화개살의 존재는 내게 꽤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꽤 외향적이고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관종(관심종자)라고 느꼈는데...... 화려함을 스스로 덮는다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이불 덮는 걸 너무 좋아하긴 하지. 얼마나 좋아하면 가만히 누워있어도 땀이 가슴골을 타고 흐르는 한 여름 무더위에도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야 잠이 들었고 아침이 되어도 이불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쉬지 않고 윗몸일으키기 60개를 하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졌다. 화개살은 옛날 방식으로 풀이하면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팔자라고 했다. 난 두상이 그렇게 예쁜 편이 아니라 그것 만큼은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세상과의 연이 없고 스스로 고독함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가진 여덟 장의 패와 대운과 세운을 조합해 '그게 그런 식으로 된 거구나'하고 끼워 맞추는 퍼즐일 뿐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대강 그런 흐름이 있으니 알아서 대비하고 지혜롭게 활용할 계획을 세우자, 정도다. 신년 운세도 딱 그 정도로만 여긴다. 2021년 내 사주를 봐준 사주 유튜버는 당시 기준으로 신년에는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물의 기운' 그것도 '큰 물' 즉 '임수'가 들어올 거라며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뭐든 해보라고 했다. 나는 2022년 인생 최초로 내 이름으로 된 단행본을 출간하는 기회를 얻었다. 출판은커녕 18살 이후로 일기조차 쓰지 않던 나였지만 좋은 말을 들었으니 용기를 내어 투고를 열심히 한 결과였다.
수년 전 나는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게 말했다. 사주 핑계 대지 말라고, 그건 네가 선택한 일이라고. 순간 단단하고 날카로운 금속 같은 것이 전두엽의 아래쪽 안와전두 피질을 뚫고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나는 그때 진심으로 뉘우쳤다. 사주를 공부하고 나서 좋은 점은 과거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태어나면서 들고 있는 패와 매해 들어오는 새로운 패를 조합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주어진 패를 쓸지는 내 선택이지만 내게 왜 그런 기회가 왔고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는 일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준다. 나에게 사주 공부란 무책임하게 핑계를 대거나 허황된 희망회로를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이유를 찾고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다. 똑같이 넘어져도 매끈한 땅바닥을 바라보며 제 발에 걸려 넘어진 똥멍충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보다 거기 돌부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나 자신이 덜 한심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러면 똑같이 피가 철철 나고 흉하게 찢어진 무르팍도 왠지 좀 덜 아픈 것 같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