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2화
나의 2025년 새해 다짐은 좀 달랐다. 나는 왜 신년에 다짐한 것들을 한 번도 지켜내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문제는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목표를 잡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발상을 전환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해진 나의 2025년 새해 다짐은 '새해 다짐을 하찮게 세팅하기'가 되었다. 대단한 아웃풋이나 변화를 목표로 하지 않고 내가 한 결심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진짜 루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 아니고서야 이건 안 지키는 게 더 어렵겠다 싶을 정도로.
매년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새 노트를 다이어리로 세팅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의식 같은 연례행사다. 혼자 조용히 책상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1월 달력과 일주일 단위 계획을 할 수 있는 칸을 그린다. 그리고 노트 가장 첫 페이지에는 한 해의 가장 굵직한 목표나 다짐을 적는다. 그중 10년 간 변함없이 꾸준히 적혔던 목표 중 하나는 '체중감량'이었다. 어떤 해는 12킬로그램, 어떤 해는 6킬로그램, 또 어떤 해는 체지방 8퍼센트와 같이 조금씩 변주는 있었으나 결국 살 좀 빼자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게 적어야 했다. 최대한 하찮게 세팅한 후 무조건 지킬 수밖에 없게 만들기로 했으니까. 2025년 새 다이어리 첫 페이지는 이렇게 적혔다. '매일 운동실 바닥 밟고 오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에는 건물 주민들을 위해 몇 가지 운동 기구를 겸비한 공용공간이 있는데 내가 이 집을 선택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성격 상 사람들이 많은 피트니스 센터를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가서 하려니 더욱 운동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런 내게 소박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중요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운동실 바닥을 밟고 오기만 해도 나는 그날의 루틴을 해낸 것으로 여길 참이었다. 덕분에 작년보다는 운동 루틴 트래커에 체크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실제로 바닥만 밟고 와도 뿌듯함과 보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을 마음껏 느낄 작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운동실 바닥을 밟고 뒤돌아서면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오게 됐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 조상들의 표현력에, 그리고 작심삼일이 특기이자 약한 의지력이 취미인 사람에게는 목표가 초라할수록 성공률이 좋다는 진리에, 동시에 감동을 느끼고 있던 요즘이었다. 그 덕분에 2025년이 2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벌써 6킬로그램 감량과 체지방 8퍼센트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로 이야기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너무 좋겠지만 10년 동안 못 한 걸 2달 만에 해낼 리가...... 아무래도 나란 인간은 어떻게든 성공보다 실패를 강구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나는 또 합리적인(?) 핑계를 찾아 버렸다.
운동실 바닥만 밟고 돌아서는 것이 심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바닥만 밟고 온다'는 결심이 결국 운동까지 이어진다는 걸 무의식 중에 알게 되어 이젠 그 마음을 먹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김연아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스트레칭할 때 어떤 생각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했다는데 나는 운동을 하러 가는 것에 대한 생각('바닥만 밟고 오자')에 대한 생각('바닥만 밟으러 가도 결국 운동을 하게 되겠지')에 대한 생각('난 역시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까지 하고 앉았으니 도저히 순조로울 수 없는 것이다. 양손을 뻗고 다리를 펼치는 단순한 스트레칭 동작이 '다양한 스트레칭 기법이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따위의 주제로 논문을 쓰는 것 같은 과업처럼 느껴졌다.
결국 운동 루틴 포도알에 색을 채우지 못한 채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한 알의 포도알도 채우지 못한 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끊임없이 가기 싫은 이유를 꾸며대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생각을 털어버리고 오랜만에 운동실로 향했다. 서늘한 실외복에 팔다리를 끼어 넣을 때 한 번,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한 번,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건물 사람과 마주쳤을 때 또 한 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포도알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갈 수 있어.' 마음이 내게 외치는 고함을 겨우 무시하며 1층 운동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드디어 바닥을 밟았다. 운동이라고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이미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피곤했다(물론 마라톤을 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내면의 목소리와 싸우며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하나 하고 가야지. 근력 운동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그나마 힘이 덜 드는 트레드밀에 올랐다.
처음엔 가볍게 뛰어 보려 시도했으나 그것도 힘들어 빨리 걷기로 바꿨다. 내일 89번 째쯤 되는 생일을 기다리는 할머니도 뛸 수 있는 속도였으나 그래도 뛰다가 걸으니 난이도가 갑자기 확 내려갔다. 피곤하기도 했고 난이도도 훌쩍 내려가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존 것은 절대 아니고 눈이 건조해 잠깐 감았다 뜨려고 했다(진짜다). 그런데 막상 감아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바로 뜨지 않고 계속 감고 걸어보았다. 할만했다. 어차피 길거리도 아니고 트래드밀 위라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을 테니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내 균형감각을 과대평가한 실수였다는 것을 6초 후쯤 깨달았다. 아니 0.6초였을까. 어쨌든 매우 짧은 시간이었는데 내 몸은 크게 휘청했고 그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떴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내 가슴팍 바로 앞에 있던(그리고 있어야 할) 트레드밀 제어판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돌아가는 벨트 위에서 떨어지기 일보직전라는 걸.
어렸을 때 나는 거의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괴물이나 귀신 따위에 쫓기는 꿈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꿈에 더 이상 괴물이나 귀신 따위가 나오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쫓기는 건 여전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질 때쯤 눈앞에 거울이 나타났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28살 때부터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89번째 생일을 막 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를 쫓으며 내 등을 떠밀던 존재가 시간이었다는 깨달았다. 거울 건너편에는 더 이상 달릴 길이 남아있지 않았다. 균형을 잃으며 벨트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의 공포와 비슷했다. 악몽에서 깨듯 트레드 밀 손잡이를 잡았다.
양팔을 급히 뻗어 가까스로 손잡이를 잡아 큰 낭패를 겨우 면하긴 했다. 0.1초만 늦었어도 움직이는 벨트는 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을 것이었다. 골절까진 모르겠으나 최소 벨트에 얼굴을 시원하게 갈아먹었을 건 자명했다. 아찔했다. 사실 얼굴을 갈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보다 아찔했던 건 근처에서 맨손 체조를 하고 계시던, 같은 건물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존재였다. 이용자가 많지 않은 곳이라 평소에도 동시 시용자는 많아야 셋 아니면 넷이었는데 그날은 아저씨와 나 둘 뿐이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채운 거울을 통해 서로의 어색한 반사 기운이 느껴졌다. 서로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각자의 운동에 집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아저씨도 내향인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걷고 있던 사람이 움직이는 기구 위에서 균형을 잃고 갑자기 퍼덕대자 당황했을 거였다. 휘청하며 눈을 뜬 순간 시야에 들어온 거울 속의 아저씨는 큰 낭패를 겪기 직전인 유일한 운동 메이트에게 지금 응급상황이 발생했음을 깨닫고 나를 향해 달려오기 직전이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같은 표정으로. 다행히 가까스로 몸을 추스른 내가 벨트 위에 다시 안착하자 아저씨는 나에게 뻗었던 팔을 거두고 다시 맨손 체조에 집중하셨고 나도 트레드 밀을 좀 더 걸었다. 바로 내려오기는 민망하니까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잠시 눈을 감았다 떠야지 했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끝자락에 와 있었다. 눈을 감고 걸었던 6초 정도의 시간보다 휘청이며 떨어지는 걸 깨달은 0.5초의 찰나가 훨씬 길게 느껴졌다. 이건 마치 임사체험(臨死體驗) 같았다. 죽음의 순간은 생보다 길게 느껴지는 걸까. 등 뒤에서 맹렬하게 쫓아오는 세월은 내 등을 사정없이 떠밀었다. 숨이 차도록 달렸으나 어느 순간 더 이상 떠밀려 갈 곳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속절없이 벨트 위에서 곤두박질치고 마는 것처럼. 세상에,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끝'이라니, 이것보다 무서운 악몽이 있을까. 그런데 돌아보면 다 그랬다. 지난 세월은 1년이든 10년이든 혹은 평생이든 '이미 지났기 때문에' '잠깐 한눈 판 사이'처럼 찰나로 느껴진다. 미래 일은 모른다지만 이런 식이라면 20년, 30년, 40년도 금방일 거라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차라리 모른다면 더 나을까.
나는 새 다이어리 가장 앞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새해 다짐을 하찮게 세팅하기'라고 적힌 글자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웬만하면 어영부영 살지 않을 것' 그리고
'절대 트레드 밀 위에서 눈을 감지 않을 것'
아무리 성실히 산다고 해도 세월이 나를 편애할 리 없고, 돌아가는 벨트는 떨어지는 나를 위해 멈춰주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