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혼자의 무거움, 그 23화
난 여전히 내가 낯설다. 그러니까 나(나로 인식되는 나)와 나(나를 인식하는 나)는 데면데면하고 여전히 서먹한 사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느낌을 연속적으로 느끼는 건 아니라는 점인데 이건 딱히 친해지거나 가까워질 때가 있어서라기보다 현실의 잡다한 것들에 매몰되다 보면 나와의 관계를 인지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멀어지는 탓이다. 왜 직장에서도 그렇지 않나. 화장실에서 마주치기 싫어 오줌도 참을 만큼 싫어하는 직장 동료지만 팀 전체의 일이 급해지면 그런 건 생각나지도 않는 상태. 아무튼 언제 그런 느낌이 드냐 하면 또 딱히 이렇다 할 고정된 상황은 없다. 눈을 내리깔면 보이는 내 콧등과 입술이 낯설다거나 세수를 한 뒤 얼굴을 닦을 때 거울 속에 내 얼굴이, 혹은 걸어갈 때 왼쪽 오른쪽 번갈아 보이는 내 무릎이 낯설다거나 하는 식이다. 삼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봤으면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게임을 하던 중 총을 든 내 두 팔이 화면 양 옆으로 나타날 때처럼 내 삶의 플레이어가 1인칭이라는 게 좀처럼 당연해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내(인식당하는 나)가 어색한 순간은 마치 어렸을 때 베프(베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내가 아닌 다른 친구를 베프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애초에 가진 적 없는 베프를 빼앗긴 기분이 자주 들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땐 감기에 걸려 주사를 맞으러 가면 무조건 엉덩이를 깠다. 바지와 팬티를 엉거주춤 내리고 침대에 엎드리면 간호사 언니나 이모가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찰싹찰싹 몇 번 때린 후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먼저 들어온 비슷한 종류의 감각 신호가 뒤따라 오는 주사 바늘의 통증을 확실히 지연시켜 주긴 했지만 어렸을 때는 그게 좀 이상했다. 주사 바늘이 들어오는 통증을 덜 느끼는 건 맞지만 간호사의 찰진 손바닥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3 빼기 1을 해서 2로 만드는 것과 원래 2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어차피 둘 다 2인데 굳이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건 분명 의미 있는 셈이었다. 비슷한 종류이긴 했으나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이 찌르는 서늘한 이물감보다는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 손바닥과의 마찰이 훨씬 덜 불편한 감각인 건 확실했으니까.
'경쟁적 감각 입력'에 의한 둔화랄까. 나는 나와의 어색한 감각을 잊기 위해 더 생경한 환경에 나를 밀어 넣곤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아갔다.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아서,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색한 사이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직감하고 먼 이국땅으로 나를 피신시킨 지도 모른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외부환경은 간호사의 손바닥처럼 꽤 참을 만했다. 사실 때때로 꿈꾸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환경이 주는 이질적 감각에 모종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혹시 특수 성향의 변탠가 싶었으나 이미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인식당하는) 나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하나 더 더해졌다 한들 '데면데면 스코어'에 큰 변동은 없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캐나다에 9년째 살고 있지만 나는 이곳을 여전히 '이국적'이라고 느낀다. 뭐, 당연하다. 평생을 함께한 나도 그러한데 고작 9년 살았다고 이국적인 느낌이 자국적으로 쉽게 바뀔 리가 없다. 어제는 여름이면 자주 걷거나 뛰던 집 근처 산책로에 오랜만에 나갔다. 겨울이면 날이 차기도 하고 비도 자주 오는 동네라 산책을 위한 산책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날이 너무 어둡기 전에 나가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창밖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는 걸 보고 외투를 팔을 끼어 넣으며 급히 나섰으나 산책로에 도착할 때쯤 되자 하늘엔 이미 별이 떴다. 여름엔 낮이 길어 저녁을 먹고 여유롭게 나서도 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밤이 긴 겨울이라 저녁 식사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여름에는 매일 같이 걷거나 뛰었던 길이었는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다. 산책로의 길 왼편은 인간들의 주거지이고, 오른편은 토끼나 청설모 같은 작은 야생 동물들의 주거지인 숲이다. 인간의 주거 공간에서 새어 나오는 조명과 며칠 전 폭설 때 내린 아직 녹지 않은 눈의 하얀 색감이 유일한 빛이었고, 쌓인 눈 길에 내 발이 푹푹 빠지는 소리가 유일한 소리였다. 가로등 하나 없는 한 밤의 산책은 판타지 소설에서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고 마는 숲처럼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숲이 깊어지자 바닥에 쌓인 눈은 얼음으로 변했고 경사도 가팔라졌다.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직 한 바퀴를 돌려면 한참 더 가야 하는데...... 내리막을 무서워하는, 특히 미끄러운 내리막에는 쥐약인 나로서 되돌아 내려가는 게 더 막막했기에 느리더라도 가던 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속도가 느려진 김에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캐나다를 상징하는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이 빽빽한 숲과 눈 쌓인 하얀 바닥,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의 별들...... 낯선 나를 잊기에 충분히 이국적이고 생경한 기분. 무섭다는 생각 대신 어쩌다 내가 지금 여기 이런 곳에 있게 된 건지, 문득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애초에 나는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을까. 그 순간 숲 속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나서 움찔했다. 그래봤자 토끼나 청설모 정도일 테지만 난생처음 만나는 어두운 길 위에서 유일하게 나와 함께한 나 스스로에게 전우애(?) 비슷한 걸 느꼈고 집을 나서기 전보다는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식은 스스로를 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가 된다'는 헤겔의 말보다 오히려 위로가 되었던 건 어느 불교의 사상 관련 글에서 읽은 한 구절이었다. '그 둘 다 네가 아니니, 동전의 앞뒤면처럼 너를 이루는 것일 뿐이라네'. 무아 사상이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달이 아니고, 파도는 바다가 아니듯 '나'를 가리키는 나는 내가 아니며 시시때때로 변하고 사라졌다 나타나는 파도 또한 바다의 본질이 될 수 없다. 동전의 앞면이 체험하는 나라면, 동전의 뒷면은 그걸 관찰하고 느끼는 나다. 애초에 '나'라는 건 없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만 존재할 뿐. 동전의 뒷면이 앞면을 바라보며 낯설고 불편하게 느끼는 건, 고작 동전의 앞면이 동전 자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가 익숙해지지 않았던 건 내 모습이 아니라 매일 달라지는 '나'였다. 탱탱했던 피부나 빵빵했던 엉덩이(현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상대적으로!)를 들먹이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으니 우선 제쳐두자. 그 외에도 식성, 말투, 버릇, 생각이나 신념 같은 것도 예전과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어떤 것은 아주 조금 어떤 것은 완전히 달라졌다. 파도처럼 매번 같은 적 없는 내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앞으로도 나는 체험하는 내(인식당하는 나)가 관찰하는 나에게 익숙해질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동전의 앞면과 동전의 뒷면이 분리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그것이 진리인 만큼 앞으로도 그 간극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사 바늘이 무서워 무모하게 싸대기를 청하진 않겠지만 나는 새로운 환경에 나를 끊임없이 밀어 넣으며 관찰되는 나와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로움과 도전을 통해 느꼈던 전우애...... 그거 생각보다 꽤 근사한 기분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