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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0.5배속 오은영

[엄마의 쉼표6] 성격급한 엄마의 미운네살 쌍둥이 훈육법

by 삐와이


사람은 태어날 때 저마다 다른 재능을 안고 온다.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잘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을 요리를 기가 막히게 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애매하게 이것저것 조금씩 할 줄 아는’ 쪽이다. 뭐 하나 못한다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잘하는 것도 없는.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체 능력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때가 초등학교 시절 체력장 기간이었다. 멀리 뛰기도, 40m 달리기도, 철봉 매달리기도 줄줄이 낙제. 특히 철봉은 0초라는 굴욕을 내게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기엔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체력장 일정이 뜨면 며칠 전부터 혼자 윗몸일으키기 연습을 하고 달리기 특훈을 했다. 그 결과 장거리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만큼은 반 1등까지 해본 적도 있었다. 내가 '노력'의 힘을 믿기 시작한건 아마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부족한 재능은 노력으로 메울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노력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분야는 단연 육아다.
그중에서도 ‘훈육’.

미운 네살 쌍둥이와 함께하는 하루 하루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다. 아무 일 없는 듯 평화롭던 아침이 단 몇 분 만에 울음과 고함, 바닥에 드러눕기, 심지어 주먹질까지 이어지는 전쟁터로 바뀌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닮고 싶었던 훈육의 표본, '오은영 박사님'을 떠올린다.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의 감정에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대응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

TV로 볼 땐 "오케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싶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절.대. 말처럼 안된다."


특히 파워J에 성격까지 급한 내게 오은영 박사님 되기란 이번 생엔 글렀다 싶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오은영이 되기를 포기하고, 대신 ‘0.5배속 오은영’이 되기로 했다.

0.5배속 오은영은 이런 식이다.

아이들끼리 장난감을 두고 싸우다가 폭력 사태로 번지면,

일단은 “그만! 당장 엄마 앞으로 와!!” 샤우팅부터 날린다. 그 순간 나는 오은영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울면서 내 앞에 앉은 뒤 부터는, 숨을 한번 고르고 가능한 한 빠르게 평정심을 회복하려 애쓴다. 눈앞의 상황을 파악하고, 아이들의 감정을 하나씩 짚어 준 뒤 서로의 입장을 대변해준다.

“보아는 혼자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아진이가 뺏어서 화가 난거구나.”
“아진이는 같이 놀면 재밌을 것 같아서 얘기했는데 보아가 혼자 논다고 하니까 속상했구나”
"화가 날 수는 있지만 때리면 안되는거야. 말로 표현하거나 어른한테 도와주세요. 요청해보자."
"속상할 수 있지만 무작정 다른 사람이 가진 물건을 뺏으면 안되는거야. 그럴땐 숫자 몇까지 기다리면 될까? 물어보자."

물론 0.5배속 오은영밖에 되지 못한 평범한 엄마인 나자신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시간을 갖는다.

“엄마가 아까 소리 지른 건 미안했어. 우리 다시는 때리지 말자.”

마무리는 꼭 셋이 함께 포옹.




완벽하지 않지만, 매번 실수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달래가며 나는 오늘도 0.5배속의 훈육을 이어간다.

언젠가는 0.6배속, 0.7배속… 그렇게 느려도 조금씩 성장해갈 수 있을까.
먼 훗날 다 자란 아이들이 지금의 나를 '그저 무서운 엄마'가 아니라

'0.1배속이라도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던 엄마'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도 나 자신에게 초보엄마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줄 수 있을 것 같다.



2025.07.21

요즘 육아 어렵다, 힘들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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