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쉼표5] 수석과 반려돌
영화 <기생충>을 보다 보면 평범한 돌덩이 하나가 ‘수석’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아마 최소 60년대생 아버지를 둔 자녀일 확률이 높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아버지도 수석을 모았다. 전문가라기보다는, 산행 중 돌 하나를 집어 들고는 “이 안엔 산맥이 살아 있는 거 같지 않아?”라며 거실 한켠에 전시하셨다. 한없이 평범한데 또 어떻게 보면 바람 맞고 비에 씻긴 흔적 덕분에 제법 위엄이 느껴지던 돌들. 그 돌은 거실 한켠에서 무언가를 지키듯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고, 나는 어린 마음으로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지 알 수 없어 고개만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수석을 신주단지 모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기우네 가족이 삶의 구석을 버텨내기 위해 수석을 손에 꼭 쥐고 있던 장면과 겹쳤다. 그래서일까, 그 장면이 어쩐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돌’이 다시 내 삶에 들어온 건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간 어느 하원길, 쌍둥이들은 종이 가방을 자랑스럽게 흔들며 내게 말했다. “엄마. 이거, 내가 만든 반려돌이에요!” 내 눈앞에는 눈알 스티커와 매직으로 머리칼을 칠한 작고 투박한 돌덩이가 놓여있었다. 나는 반려돌이라는 의외의 단어가 낯설어서 한 번, 돌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서 흰머리가 절반이 넘은 우리 아빠의 모습이 보여서 또 한 번 웃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가벼운 반응에 개의치 않고 진지하게 각자 자기의 반려돌을 손에 들고 이름과 성격을 하나하나 소개하기 시작했다.
“얘는 착해서 친구들한테 물건을 잘 빌려줘요.”
“얘는 조금 무서운데, 밥먹으면 괜찮아져요.”
반려돌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며칠 동안 아이들은 반려돌을 데리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산책까지 시키려 했다. 그러다 관심이 살짝 식으니 반려돌은 찬장 한켠으로 밀려났다. 신기하게도 그 자리는, 예전에 우리 아버지의 수석이 놓여 있던 자리였다.
같은 돌인데,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이름과 존재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버지의 수석은 침묵 속에서 깊이를 뿜어내던 존재였다면, 아이들의 반려돌은 오늘 하루의 기분을 나누고 이름을 불러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돌이 바뀐 걸까(수석에서 반려돌로?), 우리가 바뀐 걸까.(할아버지에서 손자손녀로?)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돌은 수석이 되기도하고, 반려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네 하루도 그렇다.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 의미를 얻는 하루. 누가 봐도 평범한 월요일, 지루한 수요일, 피곤한 금요일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모든 날을 수석처럼 거창하고 위엄 있게 꾸밀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땐 이름을 붙여주고, 기분 따라 장난감 모자 하나 씌워주고, 귀엽다 말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여유조차 없을 땐, 그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도 괜찮다.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반짝임이 깃든다는 걸 안다면, 오늘 하루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불러볼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반려날’.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하루의 친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잘 부탁해. 나의 반려날.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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