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쉼표 4 ] 성과 없는 세계에서 나를 지키는 법
돌이켜보면 나는 늘 뭔가를 해내며 살아온 것 같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첫걸음마를 떼고, 처음 “엄마”를 내뱉고,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을 어른들 앞에서 떨지 않고 해내고, 반에서 1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증을 받아내는 일까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 내 몫의 성과를 내며 나를 증명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성과를 내는 사람을 길러내는 구조였고, 회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성과 없는 세계에 내가 떨어질 거라고 상상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육아가 어려웠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명백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영역이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노력이 무색하게 ‘결과’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에이~ 육아가 그런 게 어딨어. 그저 건강하고 밝게 잘 키우면 되지."
그 말은 어느 날엔 위로였고, 어느 날엔 비수였다.
“애가 너무 자주 아픈데, 옷을 좀 더 따뜻하게 입히지 그랬니?”
“왜 저렇게 낯가려? 좀 인사도 하고 안기고 그래야지.”
엄마의 돌봄은 아이의 상태로 환산되고, 아이의 감정과 기질은 그대로 엄마를 향한 평가로 연결된다. 그러면서도 말한다.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니까, 아이의 성과에 몰입하지 마세요.”
참 이상하지.
모든 게 엄마의 탓처럼 연결되는데, 아이의 성과는 곧 엄마의 성과가 아니니 조심하라는 이 세계. 이 아이러니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할까.
나는 그 균형을 소위 말하는 ‘정신 승리’라는 방식으로 찾았다.
종교도 없고,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감사하는 삶’ 같은 건 사실 낯간지러워하던 나였지만 육아의 영역에 발을 담근 뒤 나를 붙잡아준 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바로 그 ‘정신 승리’의 기술이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무력감과 죄책감이 나를 집어삼키는 육퇴 후 시간.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켜 오늘 찍은 아이들의 사진을 천천히 넘겨본다. 그러고 나서 묻는다.
‘오늘, 무엇이 나를 버티게 했지?’
1시간 넘게 울며 떼를 쓰던 딸을 진이 빠지도록 안아주고, 달래고, 붙들다가 결국 내 품에서 숨을 고르며 “엄마, 잘자요. 내일 또 만나요.” 하고 잠든 어느 날.
나는 그날의 고달픔을
‘그래도 네게 결국은 진정을 되찾아준 나’,
‘그래도 스스로를 추스르고 내일을 기약한 너’로 남겼다.
육아는 성과가 아니라 흔적이다.
말 대신 눈빛으로, 기록 대신 체온으로 남는 작은 흔적들. 그날의 무너짐조차 오늘의 우리를 이뤄준다는 믿음 하나로, 나는 매일 이 불확실한 세계를 조금씩 걸어간다.
결국, 엄마로 살아내는 것. 그게 오늘 내가 해낸 가장 조용한 승리다.
2025.07.01
요즘 육아 어렵다, 힘들다고 하죠.
힘들다고만 하기엔 너무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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