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쉼표 3 : 생각은 대신해줘도, 포옹은 안되잖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나는
생전 해보지 않은 HRD라는 낯선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아, 물론 그것만 하는 건 아니다.
회사에선 나를 네 조각으로 쪼개어, 0.25명이 회사 전체 HRD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새로운 일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공부도 싫지 않았고, 업무가 몰리지 않는 틈을 타 HRD 관련 교육을 신청해 들을 수 있었다.
이번 교육은 실습 위주였다.
가상의 기업 사례를 받고, 그에 맞는 교육 과정을 직접 기획하는 것.
1년 차 이상 HRD 실무자 넷이 조를 이루었지만, 첫 5분간 다들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이거 ChatGPT한테 시키면 진짜 금방인데.’
요즘 웬만한 일잘러들은 다 챗GPT를 비서 삼아 기획하고, 정리하고, 심지어 말까지 다듬는다.
어떤 날을 고민 상담을, 어떤 날은 보고서 작성을, 어떤 날은 생각 정리까지 해주는 AI라니.
이쯤 되면 적어도 사람보다 더 유용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겐
오랫동안 하나의 일을 붙잡고 끙끙대며 고민하는 능력,
그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
그렇게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능력은 점점 퇴화하는 느낌이다.
특히 나같이, 결과보다 ‘속도’에 익숙해져버린 사람일수록 더.
그런데 문득 이런 세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ChatGPT가 가장 무력한 세계,
바로 ‘육아의 세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 또 저래…’ 이유도 없이 짜증 부리고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
수백만 “그건 안돼”를 반복해도 다시 제자리 걸음인 아이.
이런 존재를 이해하고 돌보는 일에, AI를 대신 들인다는 건 선뜻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신생아 엄마들의 염원
‘아기 트름 시켜주는 기계’가 아직 나오지 못한건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마음에 ‘참을 인’(忍)을 새기고,
아침부터 사소한 다툼 끝에 울어버린 너희를 달래고,
온몸에 너희의 체온을 느끼며 무겁고 따스한 포옹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앞에서, 뒤에서 내 몸에 온전히 기대어 오는 이 온기.
차갑고 효율적인 세상 속에서
여전히 나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건,
이 무겁고 따스한 포옹이다.
ChatGPT는 나 대신 보고서를 써줄 수는 있어도,
나의 육아 고민을 지치지 않고 들어줄 수는 있어도
나 대신 엄마가 되지 않아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육아는 여전히 나를 가장 많이 흔들고,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내가 나를 가장 많이 돌아보게 하고,
가장 많이 고민하게 하고, 가장 많이 성장시킨다.
ChatGPT가 아무리 똑똑해도
‘엄마’라는 자리는 내가 채워야만 완성되는 곳.
오늘만큼은,
이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너희가 있어 그저 고맙다.
2025.06.30
요즘 육아 어렵다, 힘들다고 하죠.
힘들다고만 하기엔 너무 행복한
행복하다고만 하기엔 너무 벅찬 일상의 순간 숨을 불어넣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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