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B 이야기 - 배란일 임신법
“언제 숙제 받으셨어요? 저 숙제 잘한 걸까요?”
이 메시지가 어울릴 곳은 어디일까.
초등학교 3학년 교실? 그러기엔 말투가 너무 공손한가? 그럼 연령을 좀 높여서 고등학생 스터디 단톡방? 하하. 정답은 의외의 곳에 있다. 이 메시지는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찾는 카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미 다들 예측하다시피 여기서 ‘숙제’는 흔히 ‘관계, 사랑, 혹은 달린다’ 등으로 표현되는 부부관계를 뜻한다. 대학 졸업 후 숙제라는 단어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숙제는 또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숙제의 과정을 좀 더 풀어보면 이렇다.
1. 생리 후 두세 번 정도 산부인과에 방문하여 배란 초음파를 본다.
2. 초음파로 난포의 성장 속도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부부관계를 하기 좋은 날짜를 정해준다.
3. 그 날짜에 맞춰 반드시 부부관계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반드시’에 있다.)
4. 이후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올법한 날을 하루하루 기다린다.
5. 숙제의 채점결과를 테스트기로 확인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나는 한 줄짜리 채점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점점 더 숙제에 집착하게 되었다. 물고기를 낚지 못하는 낚시꾼이 장비 탓을 하는 것처럼 배란 초음파도 믿지 못하고 싸제 장비를 사들이기에 이른다. 병원도 다니고 시중에 판매 중인 배란테스트기도 2~3종류를 함께 사용하면서 ‘혹시 숙제 날짜가 틀린 건 아닐까?’ 보충 시험까지 자진해서 치르며 채점지에서 두 줄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날이 이어졌다.
당연히 그 초조함은 나의 일상에도 스며들었다. 새벽 5시만 되어도 배란 테스트기 혹은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 부부의 푸짐한 아침 식탁은 어느새 토스트 한쪽으로 대체되었다. 회사에서도 잔뜩 날이 서서는 상대의 별 것 아닌 질문에 쏘아붙이며 전화를 끊기도 하고, 뜬금없이 혼자 한숨을 푹푹 쉬기 일쑤였다. 친구들도 회사 동료들도 하다못해 신랑도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네 학원에 다니면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자녀를 둔 부모가 대치동 일타 강사를 찾아가는 것처럼 나는 이제 전국구로 유명한 난임 전문병원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몇 날 며칠 ‘난임병원’을 검색했고 병원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에서 후기를 검색하며 어떤 선생님이 유명한지 어떤 병원에 가야 성공률이 높을지를 검색했다. 물론 직장을 다니며 임신 준비를 해야 하기에 진료시간, 병원의 위치가 가장 큰 고려대상이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진료를 볼 수 있고 집, 회사와의 거리도 적당한 M병원을 최종 후보로 선택해 초진 예약을 했다.
M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오전 7시 30분으로 예약을 접수한 뒤 ‘이 정도면 지각없이 출근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예약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왠지 모르게 긴장된 마음에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그동안의 다양한 검사 기록지들을 정리한 파일도 두세 번 훑어보며 7시 10분에 병원으로 들어섰다.
‘여기…. 산부인과 맞아?’
나름대로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병원 내에는 대기 중인 환자와 보호자들이 꽤 있었다. 접수 데스크 따로, 진료 대기실 따로, 상담실 따로.
복잡한 미로 같이 느껴질 정도로 큰 병원의 규모와 7시 30분도 되지 않아 그곳을 지키고 있는 환자들을 보며 괜히 주눅이 드는 느낌도 들었다. 초진 상담실에서 상담하며 담당의 배정을 마친 뒤 담당 선생님의 진료실 앞으로 안내받았다.
진료 중인 선생님은 5분이나 계셨지만, 선생님 별로 대기 중인 환자는 4~5명, 많으면 8명까지 있었다. 상담 후 출근해도 늦지 않겠다는 나의 계산은 처음부터 틀렸다. 급하게 팀장님께 전화를 걸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들렀다 출근하겠다’라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양해를 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내 순서를 기다렸다.
1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나는 담당 선생님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간의 검사결과지를 가져간 덕분에 일부 검사는 생략 가능했고 ‘채혈을 통해 몇몇 호르몬 검사만 다시 하면 될 것 같다’를 비롯하여 그간의 임신 시도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눈 뒤 진료실을 나왔다. 1시간 30분의 기다림 끝에 10분의 진료시간.
내가 나오기 무섭게 다음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가는 걸 보니 ‘그 10분의 시간조차도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면 긴 시간이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어닥치는 환자들을 접수하고 수납하는 데스크 직원도, 진료실에서 나온 환자들에게 다음 일정을 설명하고 있는 진료실 앞 간호사도, 딩동딩동 다음 환자를 부르는 벨이 쉴 새 없이 울리는 채혈실도, 그리고 행여 지각하지는 않을까 발을 동동 구르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직장인 환자들의 초조함도 더해진 M병원의 아침. 그 곳은 그 어느 직장보다 바빴고, 또 치열했다.
더 늦으면 큰일이겠다 싶은 마음에 허둥지둥 택시를 잡아타고 신랑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 오빠 여기 장난 아니야. 미쳤나 봐’
이 말이 문제였을까. 이후 M병원에서의 우리는 정말 장난 아닌 삶을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