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Y 이야기 - 배란일 임신법
“그래서 오빠, 이날은 꼭 해야 하는 거야.”
난임 검사 이후 우리 집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많아졌다. 아내는 매달 몇 번씩 산부인과에 방문해서 배란일 전후로 소위 말하는 ‘숙제’를 받아왔다. 물론 병원에서 ‘숙제입니다.’ 하고 배란일은 준건 아니지만, 이쪽 업계(?)에서는 임신 가능성이 큰 날 부부관계를 하는 것을 숙제라고 하는 것 같다.
하고 많은 좋은 말 중에 ‘숙제’가 웬 말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 병원에 다니게 하는 일이 많았기에 나로서는 그저 아내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랑’을 ‘숙제’로 하자니 썩 내키지는 않은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숙제라는 녀석은 여간 고약한 게 아니어서 기가 막히게 힘이 넘쳐나는 날은 쏙 빼고 ‘장거리 출장을 다녀온 날’, ‘갑자기 일이 몰려 야근하는 날’만 골라서 동그라미를 쳐댔다. ‘오늘은 좀 쉴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날도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심기일전(?)하여 열심히 숙제를 해냈다.
나는 숙제를 잘 해냈다는 생각만으로도 한시름 놓는 타입이라면 아내는 달랐다. 애타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숙제 일로부터 일주일쯤 지나면 아내는 새벽마다 침대를 비웠다. 때로는 방문 너머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아내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참다 못해 아내에게 어차피 얼리 테스트기는 정확하지 않으니 앞으론 2주 지난 시점이 되어서 임신테스트를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내 제안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뭘 그렇게 초조해하냐는 내 말이 아내로서는 서운하게 들렸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 임신 테스트기에 집착하는 아내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임신은 부부가 함께 겪는 일’이라는 내 생각은 이때부터 틀렸던 것 같다. 우리의 임신에서 나는 당사자인 동시에 당사자가 아니었다.
숙제 후 일주일이 지난다고 내 몸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내는 ‘어쩐지 속이 좀 메슥거리는 것 같아. 열이 좀 나는 것 같은데’ 등의 심리적 육체적 반응을 겪고 또 예민해 했으니까 말이다. 아내는 내색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 날이 되면 한참은 운 듯 아침마다 눈이 부어있는 모습을 보였다. 숙제는 같이했지만, 성적표는 아내 혼자 받는, 불공정한 시험을 친 느낌이랄까. 몇 개월이 지나자 나는 아내의 표정을 통해 한 줄인 지 두 줄인 지 알아내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그렇게 산부인과에서 받아오는 배란일 ‘숙제’ 시도는 결국 아내의 얼굴에서 두 줄을 드러내지 못했다.
어느 날 아내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난임 전문병원인 M병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나는 ‘숙제’라는 이름으로 임신 시도를 하는 것도 어색했기 때문에 난임병원을 통해 시술하는 것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차라리 우리 좀 쉬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듭된 한 줄은 아내를 벼랑 끝으로 내몬듯했다. 정자검사 결과와 아내의 잠 못 이루는 새벽이 떠올랐고, 나는 난임 전문병원이 우리 부부의 새벽을 찾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게 어떻냐는 본심은 감추고 아내가 한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는 척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말해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M병원에 가기로 한 날. 출근 시간이 빨라 늘 내가 먼저 집을 나섰지만, 이날은 병원을 가기 위해 아내가 나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출근 후 오전 회의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아내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아…. 오빠 여기 장난 아니야. 미쳤나 봐’
새벽같이 병원에 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서 진료 후 급하게 택시를 잡아 회사에 도착했다, 앞으로 진료일에는 더 일찍 병원에 방문해야겠다’라는 아내의 메시지가 의아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단 한 사람도 아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대기가 그렇게 많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말에 아내를 따라 M병원을 처음 찾은 날이 되어서야 나는 아내가 한 메신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처음에 놀랐던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병원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접수 및 수납을 담당하는 간호사분들도 많고 의사분들도 정말 많았다. 그러나 그런 간호사, 의사조차 정신이 없을 만큼 내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훨씬 많았다. 기존에 아내와 함께 갔던 산부인과들과는 다른 알 수 없는 긴장감도 느껴졌다.
난임병원엔 정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부부, 훨씬 더 어려 보이는 부부, 심지어 외국인까지. 소파에 앉아 아내의 진료를 기다리면서 이 사람들은 어떤 상황일지 상상해봤다. 우리처럼 방문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슨 시술을 한 것인지 몸이 불편해 보이는 분도 보였다. M병원의 규모, 대단한 의료진, TV 화면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최첨단 시술법을 쓴다는 병원홍보 동영상을 보면 한편으로는 믿음이 갔지만, 이곳이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숙제를 내주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반쯤은 놀라고 반쯤은 기대와 걱정으로 나의 M병원 첫 방문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