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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09. 2021

생리도 했는데 두 줄? 나 임신이라고?

아내, B 이야기 - 자궁외임신


   가을은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서로에게 설렘을 느낀 계절이자 결혼기념일이 있는 계절이기도 하고, 날씨도 무진장 좋은 데다, 또 아빠 생일을 핑계로 친정에서만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혹독한 겨울이 닥칠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했던 가을날, 그간 참아았다가 다시마신 디카페인이 아닌 커피는 정말이지 천국의 맛이었다.


   결혼 후 이상하게 애틋해진 친정 식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며 행복한 주말을 보낸 뒤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 나는 그간 임신을 위해 마시지 않았던 커피를 마셨다. 그것도 아이스크림까지 잔뜩 추가한 라지사이즈로. 차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엔 구름 한 점이 없었고 읽고 싶었던 책도 E-BOOK으로 바로 출시되어 서점에 갈 필요 없이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좋은 일이 이어질 때는 한 번쯤 의심해봐야 했다. 이게 태풍이 오기 전 내리깔리는 고요함은 아닐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풍은 일기예보조차 없이 우리 부부를 들이닥쳤다.

   



   지난 방문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큰마음 먹고 오전 반차를 낸 뒤 M병원을 다시 찾았다. 난임검사 중 유일하게 받아보지 않은 나팔관 조영술을 받기 위해서다. 자궁은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양쪽으로 쭈욱 뻗어있는 나팔관들이 하나씩 총 2개가 있다. 그 나팔관이 막혀있으면 난자가 생성되도 자궁으로 이동하지 못해 임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궁 내부로 조영제를 투입해 나팔관이 정상적으로 뚫려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가 필요한데, 이 검사는 생리가 끝난 직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난번 병원을 나설 때 생리가 시작하면 전화로 예약을 하라는 안내를 받은 터라 이번에는 한 달에 한 번 복통과 함께 찾아오는 생리도 불청객으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날이 오자 나는 바로 전화로 나팔관 조영술 예약을 잡았다. 임신 카페를 미리 검색해서 사람에 따라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진통제를 한 시간 전에 먹고 가는 게 좋다는 조언과 혹시 나팔관이 막혀있었더라도 조영제가 들어가면서 뚫리는 경우도 생겨서 나팔관 조영술을 하고 나면 임신 확률도 높아진다는 정보도 미리 예습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전 반차까지 썼다. 그럼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셈이다. 나는 이번에는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진료실 앞에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B님’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간호사 선생님께 다가갔다. 뜻밖에 내게 쥐어진 것은 임신 테스트기.

‘나는 오늘 조영술을 하러 온 거지 임신 확인을 하러 온 게 아닌데…….’

쭈뼛거리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절차라며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 테스트기검사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장실로 가서 익숙하게 테스트를 하고 어차피 한 줄일 테스트기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바로 간호사 선생님께 제출한 뒤 다시 대기 의자로 향했다.


그.런.데     


‘B님!’     

몸을 돌리자마자 들려오는 간호사 선생님의 다급한 소리. 내가 뭔가 실수를 한 건가 싶어 다시 뒤돌아보니 간호사 선생님은 내 눈앞에 소변 반응을 일으킨 테스트기를 들이밀었다.    

  

“두 줄이에요!”
‘응? 두 줄? 내가 두 줄? 나 임신이라고?’  
   
조금 흐려도 명백히 두줄이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놀란 나는 출근길에 다시 테스트기를 사서 시도해봤지만 반전은 없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배가 아프다고 칭얼댔던 내가 아니던가. 신파극을 보면 아기가 바뀌는 상황이 연출되던데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의 테스트기와 바뀐 건 아닐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수만 가지 생각을 뒤로하고 나는 조영술 검사실이 아니라 다시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고, 이번 주기의 생리 상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조영술이 아니라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이틀 간격으로 계속.

    



   이날 받은 두 줄짜리 임신 테스트기는 마치 복권 같았다.

대신 엄청 까다로운 복권이었다. 이틀마다 피검사를 통해 복권을 긁어야 하고, 총 4번은 긁어야 당첨인지 꽝인지 알 수 있다.

당첨일 경우 생리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는 부정 출혈인 거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뒤늦게 착상에 성공한 아기가 조금 늦게 자라고 있는 거다.

꽝일 경우는 자궁 내벽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 착상이 된 경우로 정상 임신으로 발달할 수 없는 자궁외임신인 상황이다.

     

   그렇게 나는 총 24일 동안 당첨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M병원을 방문했다.

첫째 날 피검사 결과 임신 수치는 16, 정상 임신이라면 앞으로 이 수치는 이틀에 2배 넘게 뛰어올라야 한다. 이틀 뒤 수치는 37. 아슬아슬하게 두 배가 안 된다. 또 이틀 뒤 수치는 78.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두 배가 넘는다. 숫자로 표현하면 정말 왜 이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두 배가 되었을까 되지 않았을까’ 기다리는 이 일주일은 내게 일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틈이 날 때마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 기사, 유튜브 등 찾아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자궁외임신 정상일 가능성’, ‘생리했는데 테스트기 두 줄’을 검색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바쁘게 움직이고 머리를 팽팽 돌려도 시곗바늘은 그만큼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2주 차 병원 방문 때 의사 선생님은 더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상 임신이라면 이미 100, 200, 300은 훨씬 넘어야 했다며 최악의 상황에는 나팔관 난관 파열 등의 응급상황도 벌어질 수 있으므로 빠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최종 진단을 내리셨다. 샀는지 사지 않았는지도 모르게 내게 주어진 복권은 결국 그렇게 꽝으로 끝이 났다. 그날 오후 임신 종결을 위해 나는 강제로 임신 수치를 줄이는 MTX 주사를 맞게 되었다. 이번에는 4일 간격으로 주사를 맞고 피검사를 해서 수치가 정상적으로 떨어지는지 확인한 뒤 다시 주사를 맞는 일이 반복되었다.

      



   마지막 병원 방문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무슨 선물을 받을까 설레서 잠을 설쳤던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으로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녘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진료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전 7시에 병원에 도착해도 대기인원은 벌써 스무 명이 넘었다. 한 달 전 이 모든 상황이 어색했던 나는 이미 N차 시술을 하기라도 한 듯 무덤덤하게 대기 의자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다.

      

   내 순서가 되자 진료실로 들어가 초음파로 자궁 내부에 문제(유착 등)는 없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오늘 검사 결과 임신 수치가 완전히 떨어지면 주사를 더 맞을 필요가 없지만 MTX 주사는 항암 치료 때도 쓰이는 독한 성분이라 체내에 남은 상태에서 다시 임신하는 것을 권장하진 않는다고 한다. 최소 3개월은 피임을 하며 푹 쉬고 다시 나팔관 조영술을 시도해보자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 마는 듯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김없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B님, M병원이에요. 수치 0.1로 잘 떨어졌어요. 이제 더는 병원에 오실 필요 없으시세요. 3개월 뒤 생리 시작하면 전화로 예약잡으세요.”     


   생일 축하 메시지라도 되는 것처럼 어쩐지 0.1이라는 피검사 수치를 전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두 줄이에요’를 말할 때보다 밝게 느껴졌다. 더 M병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기였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게 수치로만 내게 인사를 건넸던 첫 임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극도의 우울감이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수십 년 전 내가 태어난 그 날에 맞춰 나의 첫 임신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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