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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10. 2021

두 줄이면 마냥 좋을 줄 알았지….

남편, Y 이야기 - 자궁외임신


지금쯤이면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무슨 일이 있나…….


지난번이 예고편이었다면 오늘은 본편 시작되는 날. 아내는 오늘 오전 반차를 쓰고 M병원에서 자궁 관련 검사를 한다고 했다. 피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검사는 많이 해봤지만 이런 검사는 정말 처음이라며 ‘아프다던데 괜찮을까?’ 걱정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가 연락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지난번처럼 진료를 본 뒤 회사로 정신없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회사에 도착해서 밀린 일 처리를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잠자코 아내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도 한참이 지난 뒤 ‘잘 다녀왔어? 괜찮아?’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뭔가 이상해. 나…. 두 줄이래


   ‘두 줄’이라는 단어도 ‘숙제’처럼 내가 모르는 이쪽 세계만의 또 다른 뜻이라도 있는 걸까. 두 줄이라는 아내의 메시지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내가 생리통이 심한 편이라 나는 끙끙대는 아내를 통해 그날인지 아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아내는 분명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두 줄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생리 끝났는데 어떻게 두 줄이 나와?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묻는 내 질문에 아내는 본인도 잘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 가능성은 두 가지라고 한다. 착상이 늦었거나 비정상 임신이거나. 오후에 피검사가 나오면 병원에서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니 그때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아내의 메시지는 끝이 났다.     

천성이 긍정적인 편이라 그런지 어리둥절함이 지나고 나자 순진하게도 나는 이 상황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 보이던 두 줄인데, 두 줄이면 당연히 임신이지! 설마 일이 그렇게 나쁜 쪽으로 풀리겠어. 난임병원이 효과가 좋긴 좋네! 검사도 받기 전에 임신이 딱 되고 말이야.’      


   오후 3시쯤 아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피검사 결과 나왔어. 16이라네’

피검사 결과는 두 줄이라는 단어처럼 직관적으로 내 머리를 때리진 못했다.

‘16? 그게 좋은 거야?’

‘글쎄…. 일단 계속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이틀 뒤에 다시 진료 보러 가기로 했어.’

메시지를 통해 전해지는 아내의 기분은 나와는 온도가 사뭇 달랐다. 뭔가 상황이 잘못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팀장님의 개인 호출이라도 받은 듯 온몸에 긴장이 쫙 도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게 바쁜 하루를 보낸 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야 아침에 아내가 말했던 나쁜 가능성에 대해 검색해볼 시간이 났다. 겨우 찾아낸 퇴근길 지하철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휴대폰으로 ‘자궁외임신’을 검색해보았다.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수정란이 정상적인 위치인 자궁 몸통의 내강에 착상되지 않고 다른 곳에 착상되는 임신’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 착상됐다가 자궁으로 나중에 이동할 수도 있지 않나…. 이틀 뒤면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겠는데?’ 특유의 긍정 유전자가 이번에도 힘을 발휘하여 희망적인 방향으로 글을 읽어내려가던 중 나를 두렵게 만든 문장이 등장했다.

      

자궁 내 착상이 되지 못한 자궁 외 임신의 문제점은 점점 자라는 태아로 인해서 자궁 외 임신이 된 부위(특히 난관)가 태아의 크기를 견디지 못해서 파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양의 출혈이 발생해 산모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아니! 아무리 본편이라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비극이었다. 순간 임신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이런 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후 집에서 만난 아내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마친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나보다 훨씬 불안해하는 아내를 좋은 방향으로 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내가 생각해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긍정적인 이론들을 늘어놓으며 괜찮을 거라는 말만 계속 되뇌었고, 우리는 결국 시간에 운명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병원에 가겠다는 아내의 말은 계속 반복되었다. 월요일에 병원에서 아리송한 피검사 수치를 받아든 아내는 수요일에 병원에 가서 또 애매한 수치를 받아왔고 그로부터 이틀 뒤 또 병원을 찾았다. 그 일주일은 우리 부부에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었다. 피검사 수치가 아주 애매하게 더블링을 했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 착상이 늦은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착상이 아내의 건강에도 좋은 것일까. 나는 뱃속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아기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묘한 긴장감 속에서 주말을 보내고 2주 차 다시 찾은 병원에서 아내는 최종 판결문을 받아왔다.      


‘피고는 자궁외임신이므로 MTX주사 2회분을 맞아야 한다. 땅·땅·땅.’     


   사실 아내나 나나 주말을 보내면서 이미 오늘의 결과를 예상했던 것 같다. 이 소식을 전하는 아내의 말투도 매우 차분했고, 나는 한편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임신을 종결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긍정적인 반응은 아내에게 먹히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속으로 밀어 넣고 ‘그렇구나’ 의미 없는 리액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판결이 내려지자 MTX주사 처방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아내는 그날 오후 4시까지 병원으로 다시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휴……. 또 반차쓰거나 조퇴하거나…. 해야겠지”

한숨 섞인 아내의 말을 들으니 임신은 하는 것만 힘든 게 아니라 제대로 끝내는 것도 여러 가지로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흔히 맞는 주사로 생각했던 MTX주사는 찾아보니 세포 분열을 억제하는 약한 버전의 항암 주사였다. 그래서 매슥거림이나 아픔의 강도도 일반 주사보다 훨씬 센 것 같았다. 메시지로 괜찮다고 말했던 아내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이미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자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무력감이 다시 온몸으로 올라왔다.     


우울한 아내를 위해 서프라이즈로 준비해간 작은 선물.


   깊은 잠에 빠진 건 아니었는지 뒤늦게 일어난 아내는 거실로 나왔다.

밥생각이 없다는 아내에게 나는 퇴근길에 사 온 뚱뚱한 마카롱을 건넸다. 당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뜸 들이던 나는 오늘 이렇게 주사를 맞지 않았더라도 그 아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거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음을 기약하자고 말했다.

내 마음이 아내에게 닿았을까?


   아내는 모처럼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내 손바닥 위에 마카롱을 올리더니 ‘말 안 해도 이런걸 사 오는 날도 있고 웬일이냐’며 사진을 찍었다. ‘마카롱으로 아내의 기분이 풀어질 수만 있다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질릴 때까지 사 와야지.’ 하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기분도 서서히 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새벽 나는 등 뒤에서 나는 훌쩍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통했다고 생각했던 나의 위로는 결국 아내에게 닿지 못했던 것 같다. 아내는 모든 것이 마치 본인의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고 슬퍼했다.


‘두 줄이면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나는 특정 신을 믿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겪게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내는 몰라도 어쩌면 나는 아직 아버지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상하는 임신은 그저 테스트기에 두 줄이 보이는 그 과정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힘찬 울음을 내뱉기까지의 그 과정에 어떤 고단함이 숨어있을지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몰래 울고 있는 아내의 훌쩍임을 들으며 부모가 된다는 것의 무게감을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봤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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