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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1. 2021
인공수정이면 수정은 된거지?
아내, B 이야기 - 인공수정
“B야. 그래서 인공수정이면 수정은 된 거지?”
인공수정을 시작해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나는 회사에도 난임으로 인해 병원에 다니고 있음을 밝히게 되었다. 한 번씩 결재를 받으러 팀장실을 찾을 때마다 팀장님은 나를 위로하면서 내가 진행하는 시술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곤 하셨다.
인공수정이면 수정은 된 거냐고? 나는 알 수 없다. 의사 선생님은 알까? 아니 의사 선생님도 모른다. 삼신할머니만 알고 우리 모두 모르는 깜깜이 시도라는 점에서 인공수정은 자연임신과 큰 차이가 없다. 임신이 큰 공터 어딘가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야 성공하는 게임이라고 가정해보자. 인공수정은 그 공터 어딘가에 보물을 1~2개 더 추가해주고, 대한민국만큼 컸던 공터를 서울로 줄여주고 손으로 땅을 파던 참가자들에게 삽을 쥐여주는 정도의 어드벤티지를 제공해주는 게 전부다. 그 공터 안에서 보물을 찾는 건 여전히 참가자들의 몫 그리고 운에 맡겨진다.
이제 게임의 규칙은 다 설명했으니까 실제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설명해보겠다.
나의 생리 주기는 일정한 편이었기에 배란 시기 즈음해서 병원에 방문에 초음파를 확인했다. 이후 배란일로 추정되는 날짜가 나오면 그 전날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게 된다. 난포 터지는 주사가 하는 역할은 배란 시간을 좀 더 정확하게 해주는 것이다. 대망의 인공수정 날. 신랑과 함께 오후 반차를 쓰고 병원에 도착했다. M병원에 다닌 뒤 처음으로 신랑과 함께 반차를 쓰고 병원을 찾은 터라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졌다. 신랑이 정자채취를 하는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처럼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서 초음파를 보았다.
“배란상태가 좋네요. 잘 될 거에요. 좀 있다 뵈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이 한마디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며 신랑과 함께 인공수정 시술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내 순서가 되기를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나자 시술준비가 끝난 듯 내 이름이 불렸다.
놀이공원 입장 때처럼 내 손목에 채워진 핑크색팔찌. 내이름, 남편의 이름, 의사선생님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다.내 이름을 부른 간호사는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같은 핑크색 팔찌를 손목에 채워주셨다. 핑크색 팔찌에는 나와 신랑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고, 암호화된 QR코드도 인쇄되어 있었다. 진짜 무슨 게임의 참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입장 전 나는 핑크색 팔찌의 QR코드를 리더기에 인식하고, 특수 장치로 손등 혈관 인식도 거친 뒤 드디어 인공수정실로 입장했다.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뒤를 힐끔 돌아보니 남편이 내 쪽을 보고 입 모양으로 ‘잘하고 와!’를 외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핑크색 팔찌, 신랑의 응원을 부적 삼아 한 발짝씩 앞으로 발길을 내디뎠다.
M병원의 인공수정실 내부에는 한쪽 벽을 따라 간이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말 그대로 간이침대라서 커튼으로 칸칸이 구분되어있었고 침대 옆에 고무줄 치마로 갈아입을 수 있게 준비된 작은 옷장이 있었다. 하의 탈의 후 고무줄 치마로 갈아입고 천장을 보고 누워있으면 의사 선생님들이 차례로 인공수정실을 방문해서 환자들에게 시술을 해주신다고 한다.
다행히 내부가 과하게 밝진 않아서 눈을 감고 있어도 따갑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서 심호흡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으니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내 차례인가?’ 심호흡도 소용없이 다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옆 침대의 환자에게 찾아온 다른 의사 선생님이었고 커튼을 뚫고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OOO님, 남편분 성함은 OOO님 맞으시죠? 이번이 3번째이시죠? 정자 상태는 지난번이랑 비슷하네요. 이번 시술에서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시험관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어요.
자, 아래쪽으로 쭈욱 내려오시고요.
끝났습니다. 2주 뒤 피검사 하러 오세요"
10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 뚜벅뚜벅 발소리가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시술은 간단한 듯했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길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시술인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나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이 도착해 내 차례가 되었다. 앞 순서와 동일하게 본인, 남편의 이름을 구두 상으로, 그리고 핑크색 팔찌로 확인한 뒤 시술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우리 팀의 정자처리 결과 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예상했던 것처럼 시술도 그다지 아프지 않게 끝이 났다.
“다 끝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정자처리 결과지만 남겨둔 채 금방 진료실로 떠나셨고 나는 그 침대에서 15분쯤 안정을 취한 뒤 일어나 대기실로 나갈 수 있었다. 시술 전에는 나오는지도 몰랐던 클래식 음악이 귓가에 꽂혔다. 다 끝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내 안에 뿌리를 내려서 정말 다 끝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5분을 보내고 문밖으로 나왔다.
“어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