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생장 - 론세스바예스 24.2km
알베르게 문 밖을 보니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린다. 빗방울은 멈출 줄 몰랐다. 짐을 부랴부랴 쌌다. 어제 산 조가비도 가방에 달아주고 순례길 떠날 채비를 마쳤다.
침구를 정리하고 올라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내 앞에 한 브라질 아주머니가 앉아계셨다. 이름은 바흐레이. 나에게 오늘 비가 오는데 같이 걸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나는 좋다고 말했다.
어제 만났던 한국인 선생님 한 분. 바흐레이 그리고 나.
오늘의 일행은 총 세 명이 되었다.
어제 산 조가비 가방에 달고 출발
아침을 챙겨 먹은 후 나는 우비를 사러 잡화점에 갔다. 비닐우비와 판초를 팔고 있었는데 판초는 좀 가격대가 나갔다. 판초대신 5유로짜리 비닐우비를 샀다. 비닐우비도 꽤 비싼 편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생장으로부터 24.km 떨어져 있는 Roncesvalles이다. 가는 도중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신발은 이미 다 젖었다. 순례길을 12번 오신 분이 있는데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순례길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걸었을까 계속 오르막길인 데다 비까지 와서 너무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녹초가 될 때 즈음 첫 마을 오리손이 나왔다. 아마 생장에서 출발하는 모든 순례자들이 쉬고 가는 곳 아닐까? 생각이 든다.
비 오는 오늘은 꼭 쉬어가야 했다. 신발은 당연히 젖었을 뿐더러 머리도 자켓도 다 젖었다. 도착하자마자 걸음을 멈추니 추워졌다. 이러다 저체온증 걸리는 거 아닌가 할 정도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젖은 옷을 벗고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갓 짜낸 오렌지 주스와 커피 그리고 샌드위치
나는 오렌지 주스를 원래 좋아하는데 갓 짜낸 건 향부터가 달랐다.새콤달콤의 끝판왕이랄까? 따뜻한 커피는 한 입에 나의 추운 몸을 녹여주었고 투박한 바게트에 치즈와 하몽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비를 쫄딱 맞으며 '내가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도 함께 산 위로 올라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산 아래로 펼쳐진 광활하고 위대한 자연을 보았다.
그 순간 그 풍경으로 내가 걷고 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대장 양 한 마리가 선두에 서서 가면 그 뒤로 수 백 마리가 따라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풍경을 보고 시편 23편이 생각났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산을 계속 넘으며 새로운 순례자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었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예약은 미리 해 놓는 게 좋은 것 같다. 같이 걸었던 바흐레이는 결국 다른 곳으로 갔다. 흰머리가 희끗한 자원봉사자분들이 우릴 안내해 주셨는데 그분들은 순례길을 걷고 자원봉사에 지원하여 순례객들을 도와주고 계신 것이었다. 안내를 받고 들어가 체크인을 한 후 도장(Selloe'세요')을 받았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깔끔했다. 약간 수련회 온 것 같은 느낌? 한 공간에 몇 십 명의 순례자들이 같이 배치된다. 그래서 코 고는 소리는 더욱이 피할 수 없었다. 우리가 좀 늦게 도착했는지 빨래는 예약이 다 차서 못했다. 내일은 꼭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저녁은 그저 그랬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신청했는데 입맛에 그리 맞진 않았다. 그나마 로스트치킨이 나았다. 만약 여기 묵게 된다면 생선보단 닭고기를 추천한다.
저녁을 먹고 나왔는데 해가 밝게 비추며 넘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며 '순례길이구나..'새삼 느꼈던 산책시간이다.
순례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절대 비 오는 날 우비만 입고 나가지 않았을 거다. 아니 나가지도 않았을 것 같다. 순례길을 걷기로 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고 걸었고 힘든 만큼 도착해서 여기까지 왔음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