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7 시행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부랴부랴 가방에 짐을 넣고 메는데 너무 무거웠다. 가방엔 노트북이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보내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져왔는데 앞으로 계속 가지고 다녀야 한다니.. 애물단지다.
숙소를 나서는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빗방울이 거세졌다. 한숨이 나왔다. '왜 이동 첫날부터 비야..'
하지만 이내 '이것도 순례의 한 과정이다'라고 생각을 고쳤다.
전날 밤 찾아놓은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구글맵이랑 내 위치랑 맞지 않아서 제자리를 계속 서성거렸다.
가까스로 입구를 찾은 후 지하철을 타러 들어갔다.
역 안으로 들어와 한숨 고르기 위해 벤치에 앉아서 물을 먹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아침 6시. 지하철 안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차 있었다. 한국에서 아침 지하철을 타본 지 꽤 시간이 흘러 그 느낌을 잊고 살았는데, 파리 아침 지하철을 타는 순간 다시 머릿속에 한국 지하철이 떠오르며 오버랩됐다.
지하철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 덕분에 지하철을 제대로 갈아탈 수 있었다. 허겁지겁 정신없던 터라 하마터면 전 정거장에서 내릴 뻔해서 바욘행 기차를 놓칠 뻔했다. 그 아주머니도 마침 기차를 타셔서 나를 기차역 중앙까지 안내해 주셨다. 너무 친절했던 아주머니께 감사를! Merci
기차를 타고 나는 뒤척이며 슬며시 눈을 붙였다.
바욘역에 도착해서 가방을 챙기는데 뭔가 하나가 부족하다. 새로 산 등산스틱이 없어졌다. 분명 아침에 비 맞으며 챙겨 온 건 분명한데.
기억을 되짚어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물 먹을 때 지하철역 의자에 그냥 두고 온 것 같다. 물건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에게 한숨이 나왔지만 바로 어쩌겠어
It is what it is...
하지만 계속 스틱 생각이 났다.
바욘 역 바로 앞 카페에 갔다.
카페 내부는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그 자유로움 속에 질서 있는 느낌이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생장행 기차를 탔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들뜬 마음으로 생장행 기차에 타고 있었다. 영어, 한국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많은 언어가 내 귀에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순례가 시작되는 마을, 생장에 도착했다.
'나 여기 왔네..'
내렸는데 어디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안내소가 눈에 띄어 책자를 받았다.
그리고 그냥 앞사람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우중충한 생장 날씨
마을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큰 성벽이 나왔다. 그 벽엔 조그마한 문이 뚫려 있는데 그 안으로 순례자들이 들어가서 나도 들어갔다. 한 걸음 내딛자마자 동화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 성벽을 기준으로 안과 밖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성벽 안은 알베르게, 레스토랑, 기념품샵 순례길 느낌 가득한 곳이다.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았다.
순례용품 파는 곳에서 새로운 스틱도 구입했다.
좀 비싼 감이 있었지만 앞으로 순례길에서 나의 발이 되어줄 스틱에게 투자하기로 했다.
생장 사무소에서 만난 한국인 선생님 두 분과 식사를 했다.
선생님들께 감사하게도 순례길 정보를 많이 얻었다. 사실 나는 순례길을 깊게 알아보지 않고 왔다.
미국에서 귀국준비를 하느라 순례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딱 표 끊고 가방만 챙겼지 순례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엇을 유의하며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마음 한편에 '순례길 걸을 준비가 안된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그 대신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일을 처리하는데 능숙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서로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흐리멍텅했던 나의 순례길 이미지에 조금 더 윤곽이 잡힌 순례길을 상상하게 되었다.
잠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걸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더 나아가 인생의 변화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저녁으로 성벽 밖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별로였다. 요리사가 나와 식사하는 손님들 앞에서 담배를 피운 게 좀 충격이다.
날씨를 확인하는데 내일 비가 온단다. 그래서 마켓에 가서 우비를 사려고 했더니 8시에 이미 마켓 문을 닫았다. 다시 한번 '아, 나 유럽에 있지'
할 수 없이 내일 일찍 순례용품점에서 사기로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오늘 묵는 숙소는 '55번 공립 알베르게'
선착순으로 침대를 얻을 수 있었다.
첫 알베르게. 솔직히 편하진 않았지만 순례길의 기운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던 곳이다.
순례길 주의사항도 듣고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기다리고, 나누고, 서로 배려하며 지내는 시간
순례자들이 처음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눈 마주치면 인사하고 다들 자기소개하기 바빴던 것 같다.
나 순례 시작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