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이 돈으로 가족들하고 여행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계속 눈물이 나...'
LA를 떠나던 날, 날 아껴주시던 교회 집사님, 그리고 아끼던 동생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했다.
평소 표현을 하지 않았던 동생이 '누나 갑자기 왜 이렇게 슬프지'라고 말해주는데 순간 울컥했다.
'다시 볼 때까지 잘 있어'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헤어짐은 언제나 어렵다.
그렇게 나에게 확고한 결정이었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가슴 한편에 응어리가 진 것 같다. 또 이곳에서 나의 삶 속에 하나, 둘 들어왔던 정든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첫 날 만났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한 동생이 나에게 쓴 편지 중,
'I'm so grateful that our paths crossed in LA and I hope they will cross again.'
우리의 삶이 겹쳐서 너무 고맙고, 다시 겹치길 바란다는 이 문장이 나에겐 너무 따뜻했다.
편지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새삼 너무 감사했다.
그리피스에서 바라본 LA의 첫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바둑판으로 그려진 예쁜 야경을 비행기에서 다시 볼 때 '정말 가는구나' 생각했다.
모든 건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떠나고 있었다.
LA에서 파리행 비행기.
돈 아낀다고 가장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구했다. 그런데 기내식이 포함 안된 지는 몰랐지..
11시간 비행 중 물만 두세 컵 마셨다.
배고픈지도 모르고 벽에 기댄 나의 얼굴을 따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울고 싶지 않았다. 왜 흘리는지 모르는 눈물이다.
삶에서 꽤 중요한 결정을 한 것 같은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인생이 바뀌는 걸까 봐 겁이 난 것일까.
파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유심칩이 말썽이다.
순례길을 걸어야 해서 미국에서 유럽 eSim을 신청했는데
그 eSim은 아무리 해도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급하게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해 한국에서도 eSim을 받고 아주 혼자 생쇼를 한 것 같다.
한쪽은 한국에 받은 eSim 또 다른 한쪽은 미국에서 시도한 eSim.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한쪽에 쪼그려 한 시간 반 정도 이것저것 시도 해 보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울화통이 터졌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항 와이파이를 이용해 지도를 캡처하고 그냥 숙소까지 인터넷 없이 가기로 했다. 인터넷 없이 갈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물어물어 도착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파리 역무원에게 다시 한번 내릴 곳을 확인한 후 지하철을 탔다. 그제야 새삼 '나 파리네..' 느꼈다.
파리 지하철을 보니 독일에서의 삶도 살짝 스쳐 지나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가을로 넘어가는 파리의 날씨는 우중충했다.
구름이 가득 낀 날씨.
날씨가 나를 더 쳐지게 하는 것 같다. 캘리포니아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하나는 끝내줬는데..
어찌어찌해서 숙소에 도착했는데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나의 실수를 발견했다.
나의 계획은 파리 도착 후 2일을 파리에서 쉬며 머물고 3일째 순례길을 출발하는 생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LA는 파리보다 9시간 늦다. 11시간 비행을 하면 하루 뒤에 도착한다. 그런데 시차를 생각하지 않고 숙소 예약을 할 때
LA에서 출발하는 날짜로 숙소를 예약했다.
파리 도착 하루 전날부터 숙소에 2박 묵는 걸로 예약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파리에 도착했을 땐 나에겐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거기서 멘붕이 왔다. 아니 사실 멘붕이라기보단 그런 걸 확인 안 한 내가 너무 우습고 짜증이 났다.
순례길을 걸을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도 확신이 안 서는 마당에 그런 실수를 하고 돈을 날린 내가 싫었다. 그리고 하루 묵고 바로 내일 생장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니 그 일정도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하루다.
밤에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계속 눈물이 났다. 억지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계속 흘렀다. 그리고 내가 이 순례길을 걷는 게 맞는 건지 계속 되물었다.
갑자기 서러움과 외로움이 뒤섞이며 순례길을 포기하고 싶어서 한국을 가려고 티켓도 알아봤다. 두 시간 몸을 뒤척이고 핸드폰으로 비행기표를 알아보다가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평소 엄마에게 걱정시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데 오늘은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마음속에 있던 것들을 처음으로 깊게 토해낸 것 같다.
LA를 떠날 때 존경하던 한 어른께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미국에 왔는데 왜 포기를 하냐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 어딘가 정착을 해야 하지 않냐고. 한국 가면 돌아오고 싶을 거라고.
아마 나를 붙잡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모은 돈을 순례길에 다 쓸 거냐는 식으로도 말씀하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LA를 떠나는 것이 삶을 포기한 건지 선택한 건지? 흔들렸다.
그 어른의 말씀과 파리에서의 첫날 예상치 못하게 뒤엉켜버린 스케줄이 겹쳐 나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엄마, 이게 정말 맞는 걸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내가 후회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순례길 걸을 이 돈으로 가족들하고 여행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 그냥 순례길 걷지 않고 한국 가고 싶어. 계속 눈물이 나...'
외롭고 불안했다. 내가 틀렸을까 봐.
엄마는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이 인생에서 다음 단계로 가고 있는 성장통이라고, 필요한 시간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리고 '순례길 안 걷고 그냥 와도 좋아. 오고 싶으면 그냥 와. 근데 후회 안 하겠어?‘라는 엄마의 질문에 '아니 나 후회할 것 같아'라는 답변이 마음속에서 들려왔다.
”돈 날린 거 아까워하지 말고 그냥 하루 더 연장하고 푹 쉬어, 환경이 한 번에 다 바뀌어서 그래. 맛있는 거 먹고, 좀 돌아다녀 봐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
이 말에 왜 그렇게 힘이 났는지 모른다.
누가 나에게 ‘괜찮아 ‘라는 말을 해주길 기다린 것 같다.
나는 내가 강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힘들게 외로웠던 마음이 엄마와의 통화에서 눈물과 함께 녹아내렸다.
그렇게 하루 숙박비와 기차 티켓 비용을 날렸다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하고 생장행 티켓도 다시 예약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온전히 내가 겪어야 할 시간인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