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폰페라다 - 빌라프란카 23.6km
비가 한두 방울씩 추적추적 내린다.
우비와 모자가 오늘 나의 비가리개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새벽길
가로등이 환하게 길을 비춰주어 길이 잘 보인다.
나만 잘 가면 된다.
앞의 순례자들을 보고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물론 중간중간 확인은 필수
오늘은 구름이 가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는 계속 내리는 중
한번 늘어난 내 우비는 쏟아지는 비에 더 늘어져가고 우비 안으로 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형제인가 보다. 내 앞을 얼쩡거렸다. 이쁘게도 생겼네
시야가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려 카페로 피신했다.
이미 다 안 젖기는 포기한 지 오래고, 이 정도면 엄청 큰 파라솔 우산이 필요한데...
카페 온 김에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이제 빗물에 세수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걷기 바쁜 오늘
마을 '카카벨로스'에 도착
이름이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 같아서 계속 생각난다.
다행히 건물 밑 공간이 있어 잠시 비를 피하며 갔다.
길을 잘못 들었다... 분명 지도보고 잘 온 것 같은데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게 나지...... 이러면서 다음 길을 찾는 중이다.
어디로 가야 하지 길을 찾는 와중 할머니 세 분이서 츄로스 각자 한 접시씩 초콜릿에 찍어드시는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순간 무엇에 홀린 듯 할머니께 맛있냐고 여쭤봤다.
맛있다고 먹으라고 하는 소리에 나도 자리에 앉았다.
주방에선 츄로스를 갓 튀겨내고 있었다.
따끈한 츄로스 한 개를 초콜릿에 푹 찍어 먹는 순간 그 달달함과 따뜻함에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 비에 홀딱 젖어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다.
'길 잘못들길 잘했네, 덕분에 츄로스도 먹고' 마치 이걸 먹기 위해 이 길에 온 것 같다.
있는 자리에서 좋은 것들을 찾아내면 된다.
이제 똑바로 찾아가자
다시 거세지는 비와 바람
우리는 비 와서 불편하지만 너네는 좋겠다
구름 속에 숨어있던 마을이 보인다.
빨리 씻고 싶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의 숙소는 이 마을에서 순례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숙소이다.
들어가자마자 아늑함에 와- 감탄사가 나온다.
순례길 숙소 중 이곳이 제일 좋았다.
쏟아지는 비에 마을구경은 포기
마트 가는 중
이곳에서 한국박스들을 보다니
반갑기도 하고 안 어울리기도 하고
오렌지 주스와 간식거리를 샀다.
저녁식사를 같이 한 친구는 아이다라는 친구이다. 캐나다에서 왔고 그저께 폰세바돈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같이 식사하기로 했다.
이 친구는 회사 휴가가 순례길을 한 번에 완주하기에 짧아서 구간을 세 개로 쪼개어 3년에 걸쳐 걷고 있다고 했다. 대단하다... 3년에 걸친 대 프로젝트를 이번에 마무리한다.
아이다와 이야기하며 캐나다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이야기 나눌 때에 웃음소리가 너무 유쾌해 나도 덩달아 웃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다.
내 눈에 아이다 옷이 들어왔다. 아이다는 '파타고니아'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라 너무 반가웠다.
아이다는 기능성옷으로 편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외에도 그 브랜드 철학에 반해 충성도를 가지게 된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 파타고니아의 철학이 담긴 책 ‘파타고니아'를 읽고 참 멋진 브랜드라고 생각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이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며,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자연과 공존하는 기업가로 알려져 있다.
암벽등반을 즐기며 직접 장비를 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파타고니아를 설립, '필요 없으면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 캠페인처럼 소비자들에게 환경 보호를 강조했다.
제품을 판매하면서 사지 말라니.. 마케팅의 한 종류인지 정말 진심인지 모르겠으나 그 이후 파타고니아의 제품은 더 많이, 멀리 팔려나갔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환경 운동을 지원하며, 중고 제품 사용을 장려하는 등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최근에는 4조 원이 넘는 자산을 환경 보호를 위해 기부하며 지구를 유일한 주주로 삼는다는 철학을 실천했다. 지금도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의류 회사를 넘어 환경 보호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배경 실루엣의 피츠로이 산은 남미 파타고니아 지방(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에 실제로 존재하는 웅장한 산이다.
이 산은 등반가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고,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가 사랑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파란색, 자주색, 주황색 계열의 자연을 닮은 색감은 일출 또는 석양을 연상케 한다.
목표: 환경 위기를 막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한 제품과 활동
파타고니아는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닌, “지구를 구하는 비즈니스”를 실천하는 기업
제품을 팔기보다 소비를 줄이고, 수선해서 오래 쓰자는 메시지를 강조
파타고니아의 미션 문구
"우리는 이 세상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윤리적 생산, 친환경 원단 사용
- 기업 이익보다 지구의 건강을 우선하는 경영
- 2022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회사를 매각하지 않고 ‘지구’에게 기부
→ 소유권은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로 이전됨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
— 파타고니아 공식 발표 (2022)
참 멋있다.
한 사람의 신념이 전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이 순례길에 참 잘 어울리는 브랜드이다. 나도 이 브랜드의 가방을 사서 오래 쓰다 보니 구멍이 뚫릴 때까지 사용하고 있다. 옷과 패션 유행을 공부했지만 공부를 하면서 인간의 눈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것이면서도 한편으론 인간과 자연사이에서 회의감이 들기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더욱이 이러한 기업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소비자들도 똑똑해지고 건강한 소비를 해야 한다.
오늘 저녁메뉴는
파스타 샐러드
소고기 구이와 감자튀김
푸딩
아이다와 이야기 꽃 피우며 즐겁게 식사했다.
비, 우연한 길, 츄로스, 파타고니아까지
종 잡을 수 없는 순례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