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폰세바돈 - 폰페라다 26.7km
한밤중이라고 해도 믿을 깜깜한 새벽에 출발했다.
오늘 가는 길엔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 구간이 있다.
해발 약 1,500m 높이의 몬테 이라고(Monte Irago) 정상에 세워진 십자가가 꽂힌 돌무더기를 말한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가져온 작은 돌멩이나 물건을 십자가 아래에 놓고 가는 전통이 있다.
나는 그냥 앞에서 몇 분 쳐다본 것 같다. 구름이 아득하여 약간 스산한 기분도 있었지만 이 높은 산에서 이 여정을 시작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음에 대한 감사를 했다.
동이 트고 있다.
오늘은 구불구불한 산악구간이다.
돌길이 나와서 몸이 살짝 긴장한 채로 걸었다.
구름이 자욱해서 신비한 느낌
평지 걷는 것에 비해 좀 힘은 들지만 매력있다.
제법 높게 올라왔다.
산 위에 위치한 쉼터인데 구름에 휩싸여 무척 신비로워보였다.
순례자들의 흔적도 보이고
주인이 소들에게 밥을 주러왔나보다.
그 어떤 소들보다 자연을 누비며 자라는 것 같다.
평소에 상상으로만 했던 풍경들,
쉽게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고 나는 잠시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을 받았다.
마을이 나왔는데 내려가야 한다. 경사가 가팔라서 무릎에 약간 부담이 갔다. 내 등산스틱이 제 3의 발이 되어주었다. 잃어버렸다고 안샀으면 큰일날뻔했다.
이 마을에서 카페에 들러 잠시 쉬었다.
다시 산행 시작
마치 새로운 땅을 찾으러가는 탐험가 같은 느낌....
산아래로 쭉 걷다보니 마을이 나왔다.
꽃들이 활짝 폈다.
말도 보고,
오늘은 동물 농장 특집
어제부터 돌담집들이 계속 보인다.
이 마을 걸으면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생각났다.
구석구석 잘 보다 갑니다!
색 바랜 태극기에 한 번 눈인사 건네고 다시 걷는다.
다시 다음 마을로 향해 걷기
위에 있으니 산 아래쪽에 있는 마을들이 훤히 잘 보인다.
산을 타고 쭉 내려와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산 속에 숨겨진 마을 같다.
박쥐인가 새인가... 암튼 나에겐 징그러웠다.
산 속에 이렇게 예쁜 마을이 있다니
게다가 길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었다.
어제 아침에 봤던 엄마와 아들 둘이 쉬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돌다리도 건너고
카페 앉아있는 커플이 인사를 건네 나도 인사를 한다.
바흐레이에게 배운 '보니따'를 써 먹었다.
마을 끝자락 벤치에 앉아 초콜렛으로 당충전을 하고 다시 떠난다.
알록달록 모여있는 집들
(옆집 소음은 안들려나..)
처마 밑 고양이는 지나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떨어져 우비 입고 모자를 썼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창문을 통해 보는 사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표정이 아주 진지했다.
비가 멈췄다가 내렸다가..
우비도 벗기 귀찮아졌다.
마을은 아까부터 보였는데 걸어도 걸어도 나오지 않는다. 뺑뺑 돌아 마을로 들어가는 길
드디어 도착
스페인 특유의 따뜻한 골목길이 마을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폰페라다는 중세 기사단 성이 있는 꽤 큰 도시이다.
이 성은 12세기경, 템플 기사단이 순례자 보호를 위해 건설했다.
중세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잘 어우러진 곳이며 중심가는 산책하기 좋고, 바와 카페가 즐비하다.
피노키오 보니 동화생각이 난다.
동화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계속 필요하다.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아무렇지 않게 꾸며내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이 결국 그 거짓의 무게만큼이나 쓰디쓴 대가를 치르는 모습도 보았다. 당장의 눈가림을 위한 말 한마디가, 시간이 흘러 화살이 되어 다시 자신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들.
그리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지치고 상처받는지도.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는 “거짓말하면 안 돼”라고 습관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어른인 우리는 아무런 찔림 없이 진실을 피해 가고, 때론 외면하며 살아가곤 한다.
진실된 사람이 좋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사소해 보이는 풍경과 만남들 속에서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기도 하고, 또 전혀 새로운 생각들이 문득 찾아오기도 한다.
산타고 도착한 도시라 그런지 평지가 너무 반갑다.
오늘 알베르게는 꽤 좋은 편이다.
오늘의 침대
갈증이 나서 오자마자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손빨래 타임
오늘은 구름이 껴서 잘 마르지 않을 것 같다.
씻고 재정비를 하고 저녁시간이 되어 나왔다.
저렴하면서 맛있는 음식점을 구글에서 찾아서 가려고 한다.
갑자기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더니
빗방울이 점점 더 거세진다.
비상.
아파트 입구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는데 그럴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레스토랑을 포기하고 가까운 마트에 갔다.
이미 머리는 비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늘 저녁은 샐러드 너로 정했다.
자두가 싱싱해서 한 두개 고르고
빵도 맛있어 보인다. 역시 배고플 때 마트에 오면 안된다.
이것저것 사서 숙소로 후다닥 돌아왔다.
나홀로 저녁 식사 중
야채스프, 닭가슴살바질파스타, 오렌지주스, 올리브
나름대로 잘 챙겨 먹었다.
숙소에 들어오니 괜히 비가 잦아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일찍 들어와서 잘 쉬고 있다.
그나저나 빨래가 잘 말라야 할 텐데...